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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화 Sep 06. 2022

디자이너의 연봉은 왜 낮을까...?

정부지원사업에 기생하는 슬픈 에이전시의 현실

지금 주변을 둘러보라. 얼마나 수많은 제품들이 주변에 존재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모든 제품들은 저마다의 탄생 비화가 숨겨져있겠지만, 오늘은 약간 씁쓸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는 디자인,제조 관련하여 정부지원사업이 꽤나 많이 있는 편이다. 산업디자인 전문회사들 중 상당수가 국가사업에만 의존하여 세금으로 연명하는 기업들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실제로 내가 겪은 회사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몇년에 몇억.. 1년에 얼마.. 이런 형태의 정부 제조 지원 사업도 있고, 제조업이 디자인 회사와 함께 '컨소시엄' 이라는 공동체 형태로 사업을 따내는 일도 있다. 디자인회사의 지출의 대부분은 인건비와 목업, 연구 개발 비용이기 때문에 디자인 업무는 흔히 '용역 서비스'라고 보아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디자인 업계가 왜 연봉이 낮은지 어느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디자인 업계의 연봉이 낮은 이유를 찾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서비스의 대부분이 '디자인 업무'로 이루어진 용역 서비스이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일수록 회사의 이익이 늘어나는 기행을 띄는 것이 그 이유다. 요즘에는 디자인 전문회사에서 자신들의 노하우를 이용하여 자체 제품을 제조하거나, 본인들의 브랜드를 런칭하는 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도전을 하고 있는데, 굉장히 바람직한 행보라고 생각한다.


메이저 에이전시처럼  프로젝트당 수천~수억원의 비용을 벌어들일  있는 대형 프로젝트를 매번 진행할  없는 일반 디자인 전문회사들은 건당 적게는 100만원에서 5~600만원 하는 작은 사업들을 여러개 쳐내듯이 해내는 회사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회사의 대표는 실무보다는 영업 위주로, 후배 디자이너들은 그저 디자인회사 대표의 손가락 역할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곤 한다. 정규직으로 고용한 디자이너를 단순히 지시한대로 디자인 해주는 용도로만 사용한다면,  디자이너는 크몽의 그것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러니 더더욱 디자인 산업의 성장은 더뎌지고, 선배가 후배를 피빨아먹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두 번째 이유는, 수요 대비 넘쳐나는 공급(?)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터넷에 HRD-net 을 검색하여 나오는 국비지원 사업이나, 학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국비지원으로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원들을 엄청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국비지원이나 학원 출신의 디자이너들을 비하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지만, 6개월~1년 간 학원에서 배운 디자인 툴과 파편적인 스킬을 갖고 하나의 브랜드를 깊게 파고들면서 유지보수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전공 지식을 4년간 공부하는 학생들도 브랜드라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하다가 6개월~1년 정도 학원에서 배웠다고 하면 거의 오퍼레이터(Operator:기계,컴퓨터를 조작하는 사람, 일러스트&포토샵을 이용해서 '기계적으로 시각물을 만들기만' 하는 사람을 뜻한다.)로써 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네이버에서 광고중인 수많은 국비지원 교육들

모두 다 생존을 위해 저마다의 미래 계획이 있겠지만, 마음 한 켠에는 '왜 하필 디자인 일까.'  라는 생각이 종종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항상 '디자이너' 직무는 돈을 보고 충분히 메리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직종이 아니라고 습관처럼 이야기 하곤 한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위해 일한다면, 디자인은 최선이 아닌 최악의 직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하다보면 정말 현타(?)가 많이 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정말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서 매일 밤을 새워 나오는 조그마한 단상자 디자인 시안 하나를 내고 있는 반면, 다른 디자이너는 그 작업물을 보고 1%의 무언가를 가미하여 더 나은 것처럼 포장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기도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이유는,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너무나도 '주관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자인 트렌드' 라는 것은 매년 바뀌기도 하는데, 대다수가 선호하는 형태의 디자인 트렌드들이 생겨나고, 없어지고 하는 형태를 반복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 전에 실제와 같은 형태의 아이콘을 디자인하는 '스큐어모피즘' 트렌드가 유행했다면, 그다음에는 미니멀리즘을 반영한 '플랫디자인'이 트렌드로 자리잡게 되고, 단순한 디자인에 싫증을 느낀 소비자들은 약간의 실재감이 더해진 '뉴모피즘' 형태의 디자인 트렌드를 선호하게 된다. 최근에는 아이폰 슬라이드 창 등에서 볼 수 있는 불투명한 유리가 씌워진 형태의 '글래스모피즘'과 3D를 이용한 입체적인 디자인 트렌드가 유행하고 있는 추세이다.

스큐어모피즘과 플랫디자인의 변화 (출처 : https://blog.naver.com/shiikong/221355468387)


건축, 회계, 수학 등과 다르게 디자인은 대다수의 선호도를 반영하려는 경향이 있다. 진리로 정해져 있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물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이다. 그렇기에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성과 역시 주관적인 성향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 굉장히 훌륭한 디자인인데도 불구하고 판매나 성과가 저조하다거나, 단시간에 대충 작업한 작업물이 성과가 좋은 경우가 그런 예이다. 모든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디자인으로 종결시킬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인은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영향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매스마켓을 타겟으로 하는 제품들은 전체적인 표본에서 중간에 위치한 평균값을 타겟으로 제품을 개발해야 많이 팔리기 때문에 대다수가 선호하는 디자인, 형태, 성향의 제품들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그래서 작은 브랜드들, 중소기업 브랜드들에게 항상 틈새 시장과 명확한 타겟을 겨냥한 작은 시장을 타겟으로 브랜딩을 하라고 하는 이유이다.


'눈만 달려있으면 모두가 디자인 디렉터다.' 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로 디자인 평가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평가 기준이 높은데, 개인의 평가 기준은 개인이 만든 주관적인 기준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만큼 디자이너가 뚜렷한 주관과 논리를 가지고 항상 소비자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게 디자이너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여러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디자이너 면허'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사, 회계사, 변호사, 흔히들 말하는 '전문직'이라는 직종에는 항상 업무가 가능한 라이센스가 부여된다. 건축사사무소를 차리려면 '건축사' 면허가 있어야 하고, 부동산을 차리려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세무,회계,변리사들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나 디자인은 기업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 역량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라이센싱 기반의 전문직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제품디자인산업기사, 제품디자인기사' 자격증이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전문 면허증을 갖는 자격을 '배타적 권리'라고 하는데, 만약 디자인 업종에서 이 면허증이 나온다면, 디자이너로써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디자이너 직종에 대한 전문성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을 '배타적 권리'로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범위를 규정짓는것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네에 작은 음식점 배너를 디자인 할 때에도 '배타적 권리'를 내세울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게 된다면 불법으로 디자인 작업을 진행한 셈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디자인을 전문 면허증으로 구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어느정도 합리적으로 설득이 된다. 결국 디자이너로써 성공하려면 지금은 각자도생하여 열심히 포트폴리오와 경험을 쌓는 방법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


글을 쓰고 보니, 너무 디자이너에 대한 씁쓸한 이야기들만 작성했지만 디자인을 하면서 연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람차고 재밌는 일들이 많이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만든 작업물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직업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디자이너가 연봉이 적어도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버팀목은 바로 이런 뿌듯함과 더 나은 세상을 디자인으로 풀어내겠다는 나름의 사명감(?)이 버텨주고 있지 않나 싶다.




제가 쓰는 모든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제가 쓰는 글에 대해 반박하실 경우, 당신의 말이 100% 맞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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