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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 Jun 01. 2021

가끔, 따라쟁이가 되자

MBTI로 보는 '자유인' 탐구

우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이 시대의 진정한 자유인', '자유롭게 살다 간 사람'과 같은 표현을 가끔 접한다. 나는 검색창에 위의 표현들을 쳐보며 실존 인물들을 탐구해 보고 싶었다. 몇몇 분들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표가 너무 갈려서 특정인이 지목되지는 않았다. 또한 대중들은 대체로 그 사람들을 호감으로 대하지는 않는 듯했다. 신성일 배우, 조영남 가수, 홍상수 감독 같은 분들이 거기에 해당되는데 그들만 등장하면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가상 인물까지 범위를 넓혀 보면 자유의 상징으로는 독보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인 '조르바'이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면 조르바가 실존 인물로 우리나라 방송에 등장한다면 앞서 말한 세 분과 비슷한 이유로 비호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알아차리면서도 다른 사람의 욕망은 불편해한다.

 

우리의 대체 '자유인'을 어떤 범주로 묶고 있는 것일까? 왜 그런 불편함이 생기는 것일까?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자가 자유인이라면, 사람들은 자유인의 등장을 원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이 진정한 자유인은 아니지 않을까? 왜냐하면 진정한 자유는 나와 타인을 모두 기쁘게 하는 것이니까.


나는 조르바 대신 그의 MBTI를 해보기로 했다. 십 년 전에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는 도그지어(dog's ear)를 수도 없이 접어 놓은 책이라 나는 MBTI 검사지가 없어도, 조르바가 ESFP 유형임을 확신했다.

MBTI : ESFP 유형의 선호 지표 (나무위키)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두목, 내 대가리 가죽은 몹시 두꺼워요. 그래 가지고는 뭐가 뭔지 대가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 당신이 춤으로 방금 말한 걸 표현할 수만 있다면 나도 알아들을 텐데.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이 시대 자유인으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인물은 ESFP 유형에 가깝다. 카잔차키스는 니체의 '초인' 모델을 조르바에 투영했다. 니체의 자유인은 고대 그리스인에 가깝다. (참고자료) 그리스인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뭔가 이어진다. 니체와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되어 20세기 전반의 문학과 예술을 지배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은 '근대화(모더니즘)'를 이루어낸 효율성, 합리성, 절대성, 동일성, 획일화 등을 포함한 권위주의를 격렬히 비판하고 탈이성, 탈권위, 다양성을 지향한다.


MBTI의 8가지 지표 중 N(직관), T(사고), J(판단)은 이성의 영역으로 근대화를 이룬 인간의 주 기능이다. 권력은 불안을 자극하여 군중의 이성을 설득했고, 군중은 안정을 위해 권력에 자유를 헌납했다. 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인간이 안정을 추구하고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자아를 버리고 자신의 목줄을 기꺼이 사회라는 끈으로 묶는, 자유를 회피하는 행위를 꿰뚫어 봤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 시각으로 보면 20세기의 자유인은 MBTI 지표 중 탈이성적인 것들인 S(감각), F(감정), P(인식)을 선호하며 E(외향) 발산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근대성이라는 이성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자유를 행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관점은 근대와 현대의 수많은 문학,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깊숙이 들어와 있다.


철학과 과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만들어낸 위인들은 매우 높은 확률로 N(직관)을 가지고 있다. 렇다면 흥미롭게도 니체와 프로이트를 비롯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N을 필수로 하며, 특히 INTJ나 INTP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부류인 ESFP를 동경한 것 같다. 그들은 이성의 부작용 행태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유만 신경 쓴 것 아닐까?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된 내용은 INTJ를 향한 ESFP 팩폭이자, INTJ의 ESFP 찬양가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계승한 그것이 현재 사람들이 '자유인'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자유인' 이미지는 고대, 중세, 근대 시대별로 문화권별로 달랐을 것이다. 현대의 자유인 이미지는 20세기 서구 문화에 머물러 있으며, 요즘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의 자유인을 내로남불의 이중적 시선으로 보는 듯하다.


나는 <자유의 성숙단계>라는 글을 통해 나의 '자유론'을 밝혔다. 인간은 제한적인 자유만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냈는데, MBTI의 16가지 유형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자유인은 8가지 지표를 모두 가진 EISNTFJP 라는 유형의 인간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야기를 이어 본다.


MBTI는 한 인간의 태도와 기능에 관한 '선호'에 대한 지표이다. 국어 시간보다 수학 시간을 선호한다는 것이지, 수학을 좋아하거나 잘하는 사람으로 묶을 수는 없다. MBTI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좋은 도구이지만, 나와 타인을 규정짓는 것에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군다나 MBTI는 과대평가된 도구이며, 학계에서는 잘 인정되지 않는다. 이어질 서술은 나를 포함하여 MBTI에 과몰입된 사람들의 편향되고 주관적인 의견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해석에 주의를 요한다.


ESFP (외향, 감각, 감정, 인식) 유형은 매력이 넘친다. 사교적이면서도 쿨한 성격으로 경쾌하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든다. 신체 활동을 즐기는 편이라 건강미(섹시함)가 높은 편이다. 술과 춤, 파티를 선호한다. 요즘 말로 '인싸'이며, 타인의 욕망이 될만한 것들을 행하므로, 인스타그래머로써도 자질이 넘친다. 니체가 좋아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도 들어맞는다. 이런 성향을 싫어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허영과 이기심이 많은 편이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기보다는 도망 가버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카르페디엠, 욜로, 아모르파티실천한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시간과 공간과 돈을 뺏는다면, 독방에서 지내보라고 한다면, 그들은 자유로울까?


INTJ (내향, 직관, 사고, 판단)는 ESFP를 반대로 뒤집은 유형이다. 독방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공부하고 연구하느라 바쁜 INTJ 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유롭다. 이들의 일부는 인류 역사에서 탁월한 관념과 발견을 이룩한 노력하는 천재들이다. 일탈을 꿈꾸지만 누가 끌고 같이 가줘야 한다.


INTP (내향, 직관, 사고, 인식)들의 번뜩이는 깨달음도 자유다. 아인슈타인은 관성력과 중력이 동등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가 생애 가장 행복했던 생각이었다고 한다. 원효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신 일화도 생각난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음을 얻는 것은 자유를 준다. INTJ와 쌍벽을 이루며 탁월한 업적들을 기록한 게으른 천재들이다.


INFJ (내향, 직관, 감정, 판단)들의 정적이고 루틴한 일상도 자유롭다. 매일 고운 것을 쓰거나 그리거나 하며 창작에 몰두하는, 신념이 있는 차분한 삶, 혼자서도 잘 놀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 깊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긴. 분위기 있고 멋스러운 장소와 물건을 좋아한다. 아름답고 추상적인 느낌도 좋아한다. 불편한 상황은 못 견디는 것 같다. 상대의 말실수 한 번에도 단칼에 관계를 끊는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매일 아침 규칙적인 달리기를 추가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스러워진다.


NFP (직관, 감정, 인식)을 포함하는 경우는 자유로운 성격 중에서 비호감이 적은 유형이다. 세상과 타인을 이해고, 타인과 공감하고 사람들을 돕는다. 풍부한 낭만과 감수성으로 책, 영화, 음악 사랑한다.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예술성이 있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 즉흥적인 선택들로 발생한 사건들에 기뻐한다. 


SJ (감각, 판단)를 포함하는 경우, 자유롭다는 말을 듣지는 못하지만, 딱히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해 보이지도 않다. 그들은 다소 관료적이거나 권위적인 조직 속에서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사회에 잘 적응하니 마음이 편하다. 편한 마음도 일종의 자유다.


ENFP가 INTJ 따라쟁이, INTJ가 ENTF 따라쟁이가 되어보면 어떨까? 상상은 안되지만 조르바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같은 어려운 책을 읽는다거나, 아인슈타인이 개츠비처럼 흥청망청 파티를 연다 거나 하는 것 말이다. 나 답지 않는 것을 시도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고독을 즐기는 것이면 되지 않을까?


여전히 자유인이 불편한가요?


+ 글쓴이는 ENFP가 되고 싶은 ENTP입니다. 이런 NTP 스러운 글쓰기나 말하기는 하지 않으려 하지만 열정이 자주 이쪽으로 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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