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린 Jul 01. 2021

꼭 나와 같은 사람과의 사랑

동일성의 매력, 차이성의 불편함?

꼭 나와 같은 사람과 사랑을 한다면 어떨까요? 같다는 것이 DNA가 동일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 생각, 취향까지 완벽히 같은 사람과의 사랑말이에요.


그가 나와 완벽히 같다는 사실을 알고 시작한다면 사랑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요. 매력은커녕 징그러울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서로 알아가는 사이라면, 서로 통하는 순간들을 발견하며 강한 끌림을 느끼겠죠. 반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서 싫을 수도 있겠어요. 고치고 싶은 나의 행동을 타인에게서 발견했을 때 그것들은 좋게 다가오지 않죠. 나를 찍은 동영상을 보면서 숨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할걸요. 자신의 거울 같은 타인을 보고도 '우리는 안 맞나 봐.'라고 생각할 지도요.


물 한 병을 따서 두 컵에 나누어 붓는 순간부터 둘은 점점 다른 존재, 개별자가 되는 것처럼요. 시간 속에서 존재를 바라보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것처럼요. 처음에는 완벽하게 같은 사람이라도 그 차이는 점차 벌어질 것이에요. 동일성을 가진 두 존재도 사랑을 하다 보면 차이성을 가진 두 존재가 될 것이니, '꼭 나와 같은 타인'과의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나와 다른 타인'과의 사랑과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죠. 나랑 잘 맞고 잘 통하는 사람이 사랑의 시작점에서 중요한 조건이라면, 사랑을 지속하는 데에 중요한 조건은 안 맞고 안 통하는 것을 발견하고도 인정하고 긍정하는 태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의 지속은 힘든 것 같아요.


사랑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가꾸는 일 같기도 해요. 물론 '꼭 나와 같은 타인'과의 사랑을 통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가꿀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건 한 우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뿐일지도 몰라요. '나와는 너무 다른 타인'과의 사랑은 어떨까요? 너무나 다른 상대의 매력에서 강한 호기심을 느꼈음이 분명하네요. 저 같은 경우에는 편하고 잘 맞는 사람들과는 연애를 통해 사랑을 했고, 불편하지만 강한 호기심을 느꼈던 사람들과는 짝사랑 같은 사랑을 했던 듯해요. 그런데 내 존재를 가꾸게 된 원천은 아마도 주로 후자였지요.


Hedwig And The Angry Inch, 2001


나와 다른 타인을 통해 내 존재의 결핍을 채우려는 것과 나와 잘 맞는 상대를 찾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 중에 사랑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둘 다라면 모순일까요? 그 반쪽은 나의 결핍을 채우는 나랑 잘 맞는 조각이니까 결국 같은 말일까요? 나의 나머지 조각은 꼭 하나일까요? 여러 개일 수는 없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 따라쟁이가 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