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두진 Mar 13. 2021

집을 인터뷰하다

집을 통해서 본 삶의 이야기

제 주변의 별로 어렵지 않게 손 닿는 분들을 만나, 지금까지 살아온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글로 풀어보려 합니다. 현재 계획은 대여섯 예닐곱 분 정도의 인터뷰를 여기에 올리고, 그 이후에는 인터뷰이를 공모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군요. 물론 제가 충분히 준비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어야하겠습니다.


직업상 집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고, 또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건축가의 중요한 초심 중 하나일텐데, 혹시 게을러지지 않았는지 다시 점검도 할 겸 시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대강의 원칙을 정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선 제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편안해야 하겠습니다.

2. 인생 역정이 너무 드라마틱한 분, 너무 유명하신 분, 너무 뛰어나신 분은 제가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 말도 사실 오염되어 있어서, 제가 쓰고 싶은 표현은 '별 드라마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 분들의 이야기도 제가 글로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지 스스로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마 이런 능력을 잘 키우면 건물 설계에도 도움이 되겠죠?


3. 이름은 가명으로 하고, 주요 정보도 필요한만큼 왜곡하여 인터뷰이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겠습니다. 성별을 드러내는 호칭과 관련하여 수 많은 논쟁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나 '그녀' 대신 '그 분', 혹은 '이 분'으로 통일하겠습니다.  


4. 나중에 인터뷰이를 공모할 때는 이름도, 신상명세도 필요 없고 연락처,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집 이야기를 정리한 300자 정도의 내용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설계사무실에서 신입직원 면접할 때 쓰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얼마 전에 쓴 글 하나를 덧붙이려 합니다. (국방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람을 만난다. 친해지기 위해서 뭔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소재가 궁하다. 날씨 이야기는 기대하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음악이나 영화,  이야기는 무난하지만 진부하다. ‘내일 죽는다면  하시겠습니까?’ 같은 질문은 상대를 불편하게, 심지어 화나게   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상대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하며 일어나 버릴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비교적 오랫동안 편하게 나눌  있는 이야기의 소재는 많지 않다.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하자면, 지금까지 어떤 집에서 살아왔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이런 질문을 받은 상대는 처음에는 멈칫하지만 이내 재미있다는 표정을 보이며, ‘, 그게 말이죠하며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직업이 건축가라 조금 유리하지만, 누가 해도 좋을 질문이다.) 그러면서 슬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데, 종종 수습이 어려울 정도로 본인 자신이 빠져 들기도 한다.


 이야기의 특별한 점은 다른 이야기들을 동시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역사와 삶의 문화, 가치관, 가족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따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차례차례 풀려 나온다. 집이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이듯,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을 아우르는  다른 그릇인 셈이다. 직접적인 자기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자기를 가장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이야기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마당이 있는 집에서 태어났는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가 인생의 어느 시점이 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파트가 등장한다. ‘결국 어머니가 이긴 거죠. 연탄 갈지 않아도 되고.’ 같은 설명이 따라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 이후에는 계속 아파트에 살고 있으나 언젠가는 다시 마당이 있는 집에라는 희망을 슬쩍  비치기도 한다. 대부분  지점까지 대화가 이어지면 이미 10군데 이상의 집이 등장하고  다음이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평균 7.7년마다  번씩 이사를 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면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자주 사는 곳을 옮긴다.  넓은 평수를 향한 재테크 탓인 경우가 많지만  못할 집안 사정 때문일 수도 있다. 약간만 추임새를 넣어주면 ‘, 감출 이유도 없죠하며 스스로 털어놓게 된다. 결국 자진해서 자기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면 무슨 비밀이라도 공유한 , 서로 친해지는 수밖에.


그런데 앞으로는 ‘어느 동네의 군소 업체 아파트에서 태어나 다른 동네의 조금   군소 업체 아파트로 갔다가, 드디어 브랜드 아파트에 입성하나 싶었는데...’ 같은 대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그러다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함께 성토하는 것으로 대화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도  것이다.  또한 친해지는 과정이므로 충분히 가치 있는 교감을  셈이다.


그러면서 ‘그런데 이제는 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기도 하네요’하며 서로 의미 있는 눈길을 주고받으면 금상첨화겠다. 장담하지만 집 이야기가 집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란 없다. 결국은 어딘가 사람의 이야기로 흐르게 되어 있고, 결국 두 사람은 ‘에이, 어디 가서 한 잔’하며 자리를 옮길 지도 모른다. 집게가 집을 지고 다니는 것처럼 우리는 그 동안 살아왔던 여러 집들의 기억을 지고 살아간다. 집이 곧 삶이며 집이 곧 우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