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배경사진 출처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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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없고, 가지 않을 세상이기에 멋있다고 할 수 있는 멋진 신세계.
무려 1932년 발표된 고전 문학이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3대 고전으로 매체에서는 물론 서점의 매대에서도 왕왕 발견할 수 있다. ‘책 읽어드립니다’ 방송에서 설민석이 진행한 강독 영상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모든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자유로이 누릴 수 있게 된 SF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다룬다. 인공배양과 유전자 조작기술을 통해 인구 수를 조절하고, 지능과 육체적 성장을 제한하여 계급을 나눈다. 각 계층은 자신이 기능하도록 설계된 미래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세밀하게 조절된 세뇌교육을 통해 성장한다. 노화는 사라지고,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며, 모든 인간은 모든 인간의 소유 하에 자유로이 관계를 가지며, 소마를 통해 부작용 없이 행복한 상상을 영위할 수 있다. 문학이나 과학같은 사고와 상상을 유발시키는 건 금기시 된 지 오래로 막연히 거부감을 느끼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의 주인공으로 공산주의를 정립한 마르크스의 이름을 부여한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알파 플러스 계급이지만 열등감을 강하게 느끼던 그는 야만인을 위시하여 얻게 된 사회적 인물들을 향한 통제감에 고취되어 왜곡된 자존감을 과시하고, 야만인과 함께 사회를 비판하며 깨달은 사람인냥 굴지만 문명의 혜택을 온건히 누리고 싶은 욕망 또한 있는 이중적 인물로 자신의 손해와 고통 앞에 나약해질 수 있는 보편적 군상의 모습을 보인다. 내가 그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것은, 그 속에 투영되어 있는 내가 보였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만해도 그 사회에서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책을 읽고 나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나중에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소마를 복용하게 되긴 하지만, 초반에는 누군가 소마를 건네도 먹지 않는다. 누군가 세뇌된 말을 인용할 때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는 모습에 불편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결말부에서도 사회 앞에 굴복하지만 이내 다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다.
책의 흐름을 진행하는 주요 인물은 존이라는 야만인이다. 당시 문명에서 배아되고 태어나 길들여진 인물이 아닌 소위 문명인들이 끔찍하다고 여기는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존재로부터 뱃 속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문명인인 레니나와 야만인인 존이 서로 사랑을 표현하지만 문명의 차이로 근본부터 다른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더욱 극단으로 부서지는 모습은 이 소설의 강렬한 부분 중 하나였다. 레니나는 사랑하기에 육체적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존은 사랑하기에 마음을 통하고 싶어한다. 이 차이에서 오는 갈등으로 레니나는 소마를 더욱 탐닉하고, 존은 육체적 욕망의 충동을 제어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학적인 채찍질을 가한다. 각자의 방식인 욕망과 절제가 극단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상대방의 사랑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둘 다 똑같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가장 강렬한 부분은 결말부에 나오는 마르크스, 존, 헬름홀츠 왓슨이 통제관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통제관으로부터 문명의 존속 이유와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보여주는 각기 다른 반응들이 재미있었고, 특히 통제관과 존의 담론은 이 책의 가장 농밀한 곳이었다. 나중에 책을 한 번씩 펼쳐서 뒷 챕터만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소설의 장르는 디스토피아다. 인간이 모든 욕망을 문제 없이 발산하고, 소마를 통해 언제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이 세상은 디스토피아다. 극도의 전체주의 하에 인간은 한 자리에서 제 역할만 묵묵히 하는 부품이다. 인간이 기계와 다를 바 없는 세상을 우리는 디스토피아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노화, 죽음, 질병, 감정, 종교, 자유, 규칙, 개성, 상상, 도전, 욕망, 절제, 선의, 죄악… 이 외에도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많은 것들이 우리를 인간이라고 정의해주고 있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 속의 세계가 부러울 때도 있다. 저게 과연 나쁜 세상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에 치여 지칠 때면 존의 어머니 린다처럼 세상을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다. 내게도 충분한 양의 소마와 안락한 병실과 간병인이 주어진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그 모습의 나는 과연 살아있는 걸까? 라는 질문을 되새기며 살아가기 위해 힘을 낼 때가 있다. 갈 수 없고, 가지 않을 세상이기에 멋있다고 할 수 있는 멋진 신세계다.
2023.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