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즐거움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 같았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의 약속이 쉴 틈 없이 이어졌고, 틈틈이 컴활 공부와 독서, 운동, 그림 그리기 등을 했다. 그저께에는 대학교 최초 합격자 발표가 떴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나왔고 만족스럽다. 최초합인 것도 있고 예비를 받은 것도 있어서 다음 주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한 달을 기다렸는데 또 기다려야 한다니.. 정말 지겹다..) 내가 가장 원하는 대학은 교과 전형으로 2명밖에 뽑지 않았고 나는 예비 1번을 받았다. (제발 빠지길 기도하고 있다..ㅠㅠ)
수능이 끝난 지 한 달 정도 됐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뭔가 허전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년 매일을 공부로 채워왔는데 이제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이 됐다. 일상이 무너지는 건 절대 안 될 것 같아서 2시 전에는 자려고 하고 너무 늦게 일어나지도 않는다. 심지어 어제는 10시에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11시쯤 잤다. 운동도 매일 하려고 하고 독서는 매일 조금이라도 하고 있다. 최근 며칠 동안은 친구와 여행도 갔고 게임도 했고 오티티도 몰아 봤다. 게임은 한 지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은데 벌써 질렸고 오티티도 볼 게 없어지고 있다.
목표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내가 세우지 않더라도 목표(공부)가 있었는데 이제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 때문에 무기력하기도 했고 별 거 없이 하루가 금방 가버리는 날도 있었다. 물론 그것을 여유라고 할 수도 있고 이때를 즐겨라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뭔가 나와는 안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잠드는 날은 원인 모를 아쉬움이 있다. 지금 생각했을 때 아쉬움의 원인은 목표를 위한 몰입인 것 같다. 목표는 사람을 살아있게 한다. 정확히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목표를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즐거움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목표가 있는 삶은 활력을 주고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매일 조금이라도 몰입하는 삶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질적으로 정말 다르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을 때 오늘 하루를 짧게나마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그때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이 있는데, 그것이 가장 진실한 것이다. 무의식적인 반응이 그 사람의 본성과 가장 가까운 것처럼. 그래서 감정은 절대 간과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감정만큼 솔직한 것이 없기에. 아무튼, 나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와 관련된 일들에 몰입했던 날의 밤에 가장 뿌듯하고 기쁜 감정을 느끼며 잔다.
수능이 끝나고 꽤 방황하기도 했다. 그건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친한 친구들과의 단톡방이 있는데, 다들 목표가 사라져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컴활 공부를 하는 것처럼 한능검 공부를 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였다. 수능이 끝난 건 하나의 목표가 끝난 것뿐이다. 나와 친구들은 우리가 목표를 세워서 그것에 계속 도전하고 꾸준히 노력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란 걸 안다. 몰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알고 그 만족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특히 3학년 때 야자를 하면서 친해진 친구들이 있는데, 전부 엠비티아이가 T라 위로나 공감은 잘 안 한다. 그래서 오히려 뭐든 눈치 안 보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힘든 말을 잘 못 한다.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옮기는 것 같아서. 해결책 또한 그 사람이 줄 수 없는 것이니까. 내게 맞는 해결책은 내가 찾아야만 하니까. 그런데 이 친구들은 걱정이나 고민을 말해도 딱히 반응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다. 나만 있는 대나무숲처럼 부담이 없다. 화제가 쉽게 바뀌고 집단적 독백이 난무한다. 일상적이고 별 뜻 없는 소리도 하게 된다. 나는 표현만 해도 많이 나아지는 편이라 이 정도의 관심이 딱 적당하다. 뭐든 너무 많으면 넘치고 감당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친구들과 있으면 정말 눈물날만큼 웃길 때가 많았다. 덕분에 3학년이 정말 즐거웠다.
난 글을 쓰면서 이제 또 다른 목표들을 세울 때가 됐음을 뚜렷이 직감했다.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이유들이 필요하다. 몰입할 것들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몰입이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고 나는 그 즐거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메모지에 대학교 입학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주욱 나열해 보았다.
- 4kg 감량하기
- 컴활 자격증 따기
- 한능검 자격증 따기
- 11시 전에 자기(될까… 과연..)
- 슈랑 많은 시간 보내기(약, 양치, 빗질, 놀이)
- 유산소 운동하기(400칼로리 이상)
- 아침 운동하기
- 아침 산책하기
- 홈트 하기
- 피부 관리하기
- 과일 많이 먹기
- 물 많이 마시기
- 책 읽고 드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 글쓰기
- 인스타툰 그리기
- 책 읽기
- 독후감 쓰기
- 출판 준비하기
- 10쪽 독서 생활화
- 명상 -> 일기 생활화
- 미술관 가기
- 콘서트 가기
- 맛있고 예쁜 베이커리집 가기
- 양모 펠트 만들기
- 하루종일 책 읽기
- 하루종일 그림 그리기
꽤 많아 보이지만 여기서 꾸준히 시간을 들여야 할 건 별로 없다. 상위 목표로 줄이면 이 정도인 것 같다.
- 컴활 자격증 따기
- 한능검 자격증 따기
- 4kg 감량하기
- 책 읽기
- 출판 준비하기
- 글쓰기
- 그림 그리기
- 피부 관리하기
- 취미 생활하기
앞으로 대학 입학 전까지 75일, 두 달 넘게 남았다. 내일은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하루를 살아야 할지, 하위 목표들을 짜 봐야겠다. 즐겁게 몰입하는 삶을 살아보자! (기대된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