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항상 머리가 길었다. 추운 날 목도리를 두르면 긴 머리카락을 어디에 둬야할지 늘 애매했다. 풀어헤친 머리카락 위로 목도리를 둘러 목이 답답하고 꺼끌거렸다. 낑낑거리다 엄마에게 “엄마, 나 목이 답답해.” 라고 하니 엄마가 내 목도리 안으로 손을 쑥 넣곤 머리카락을 잡아 빼냈다. 이러면 되지! 그 순간에 느꼈던 경쾌함과 상쾌함과 명쾌함. 나의 엄마는 대개 그런 식이다.
내게 슬픈 일이 있어서든 괴로운 일이 있어서든 아무 일도 없어서든, 어떤 이유로 눈물을 흘릴 때면 엄마는 닭똥처럼 떨어지는 내 눈물을 쳐다보다가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쓰윽 닦으면서 울 일도 아니라고 그랬다. 그 손길은 다소 투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셌다. 쥐면 터질까 고이고이 눈물만 조심스럽게 닦아내는 애인의 손길과는 사뭇 달랐다. 내 얼굴 위에서 눈물을 아주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그런 마음이 깃든 것 같았다. 아무튼 엄마가 그러면 정말 울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 생전 처음 접하는 정보를 들은 것처럼 어벙했다. 어…? 그런가…? 울 일이 아닌데 울고 있는 건가…? 그런데 눈물은 더 나왔다. 울 일이 아니라고 울던 울음을 멈추는 것도 이상하니까.
그 말은 앞으로 더 크게 울 일이 너무나 많다는 말로도 들렸다. 울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게 울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엄마가 지나온 시간에는 어떤 울 일들이 있었을까. 엄마는 자기의 눈물에도 그 말을 떠올릴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엄마는 울 일이 아니라고 굳게 주장하면서도, 닦아낸 얼굴 위로 새로운 눈물 길을 끊임없이 만드는 나를 늘 안아주었다.
하지만 미처 터지기 전의 울음에는 나름 효과가 있었다. 눈물이 나온다고 엄마를 매번 찾아가기에 엄마는 보통 내게서 좀 멀리 있었고 울음을 나누는 일은 귀찮고 버거웠다. 엄마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눈물이 늘어갔다. 혼자서 수건이나 베개에 얼굴을 쳐 박은 채로
이딴 건 울 일도 아니다…울 일도 아니다…울 일도 아니다…
몇 번이나 되뇌었다. 곧 그 일은 강제로 가벼워졌다. 마법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엄마 입에서 나오는 것만은 못했다. 엄마의 말은 언제까지나 내게 가장 힘이 세서, 엄마가 울 일이 아니라고 하면 정말 울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는 이깟 일 따위, 그 손이 훌훌 쓸어버리는 눈물처럼 해결될 것 같았다.
엄마는 앞으로도 우는 내게 그럴 것이다.
괜찮아, 이런 건 울 일도 아니야.
내 퉁퉁 불어터진 얼굴을 쓱 닦아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