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기록해야만 해

할머니와의 기록

by 기미서

지금은 2월 19일 오전 12시 36분


귀찮음에 미루는 게 일상이 됐지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놓치기 싫기에 명절을 보내고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와 옷을 갈아입지도 손을 씻지도 않고 노트북을 켰다.


지금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할머니와의 산책이다.

나는 본가에 내려가고, 올라올 때 기차 출발 시간이 넉넉할 때면 할머니 댁에 한번 더 들리곤 한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올라가는 기차가 오후 9시길래 할머니 생각이 나서 할머니 댁에 들렸다.

할머니는 내가 들어온 지도 모르고 누워서 TV를 보고 계셨고, 나는 장난스레 여분의 리모컨으로 전원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여 할머니에게 장난을 치며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다.


할머니의 인내심은 대단했다. 3,4분 정도 장난이 계속되어도 할머니는 요동도 없이 리모컨으로 모종의 오류를 제압하고자 했었다. 만약 나였다면 욕부터 내뱉고 시작했을 것이라. 무튼 장난을 그만치고 할머니에게 오류의 정체를 알리며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고, 그녀는 손뼉을 치며 나를 환영해 주었다.


할머니 커피는 일품이다. 믹스커피에 설탕 3스푼. 그녀의 전용 커피잔에 담아야 물 용량도 적절하게 조절되어 환상의 커피가 탄생한다. 그렇기에 이 커피를 마시며 그녀와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곳에 왔던 것이다.


커피를 마시기 전 할머니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소화제를 먹어야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항상 소화불량을 달고 다니신다. 소화제를 먹어도 단번에 소화가 잘되지 않는 것도 알지만 그 이상의 묘법은 알 길이 없기에 습관적으로 이를 찾곤 하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소화에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 직방이라는 사실을. 해서 산책을 제안했다. 할머니의 특징은 일단 거절하고 본다 이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많은 것을 거절당했지만 오늘만은 꼭 내 의지를 관철시키려고 노력하고자 했다. 처음보는 내 고집에 할머니는 어쩔수 없는 다는 듯 몸을 일으키고 산책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막상 거절하셨지만 간만의 외출이 기대가 되시는 듯, 즐겨 쓰던 모자도 찾으시고, 선글라스도 챙기시는 모습이 참 귀여우셨다.


이상 기후인가 싶을 정도로 이 겨울에 이렇게 따뜻한 날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할머니와 산책하기에도 딱 알맞은 날이었다. 할머니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짧게 산책하고, 벤치라도 있으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올 생각이었다.


문 밖을 벗어나 한걸음 한걸음 할머니의 걸음 속도에 맞추어 오랜만에 맞이한 포근한 날씨를 만끽하며 걷는 순간이 왜 이렇게 기억에 많이 남는지, 그동안 할머니와 함께 자주 산책을 나가지 못했던 날들이 후회스러웠다. 그만큼 그녀와 함께하는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그녀에게도 기억에 남을 순간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할머니 혼자 못 가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서 우리 몸집에 다섯 배가 넘은 조각상을 보고 감탄하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 너머 학교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워하기도,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를 보며 그들의 활기찬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느껴보기도, 신박한 분리수거 시스템에 감탄하기도 했다.


혼자 걸을 때면 눈길도 주지 않았던 흔하디 흔한 것들을 할머니와 함께 보니 주의 깊게, 또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할머니와 함께한 그 40분이 왜 그렇게 짧게 느껴졌을까. 사실 더 돌아다니고, 카페라도 있으면 들러서 같이 커피도 마시고 싶었지만 할머니 무릎에 무리가 갈까 봐 아쉬움마저 표현하지 못하고 집에 다시 들어왔다.


들어오니 우리 할머니 얼굴이 장밋빛처럼 빛나더라. 소화되지 않았던 더부룩함과 두통도 사라졌다고 하셨다. 그렇게 뿌듯한 순간은 근래 들어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할머니께 설날 용돈을 드리는 것보다 더 벅찼달까. 돈도 돈이지만 역시 제일 크고 보람된 선물은 함께 보내는 생동감 있는 추억인 듯하다. 이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아 귀찮음을 이기고 이 글을 쓴 순간마저 완벽한 것 같다.


할머니 항상 사랑하고, 산책 많이 합시다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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