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K리그1 13라운드 종료 시점에서 강원FC는 10위를 달린다. 중위권과 격차가 크지 않긴 하지만, 현재로선 강등권에서 겨우 한 발 벗어난 상태다. 올해도 강원의 우승 도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셈이다.
관련 통계들로 봐도 강원은 특별할 것이 없다. 12개 팀 가운데 득점 수에선 8위이니 공격력이 딱히 강한 것도 아니고, 실점은 FC서울과 함께 7번째로 많으니 수비가 강한 것도 아니다. 축구 기자 생활을 할 땐 어떤 팀이든 더 좋아하지 말 것, 그리고 특히 싫어하지 말 것을 늘 철칙으로 삼았다. 그래서 종종 입에 올리던 말이 나는 축구를 잘하는 팀을 좋아한다는 것. 따지고 보면 지금의 강원은 잘하는 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강원은 고전하고 있는 것 같다. 강원을 위해 약간 변명을 해주자면, 분명 고전에도 이유는 있다. 일반적으로 수비 조직력을 갖추는 것이 공격을 만드는 것보단 시간이 덜 걸린다고들 한다. 강원은 공격을 하고 싶은 팀인데, 동계 훈련 시간도 짧고 주요 선수들은 대표팀에 불려가는 시간들이 꽤 있었다. 여기에 선수 변화 폭도 커서 출전 명단에 드는 선수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새로 합류한 선수들이라고 봐야 할 정도다. 매년 선수 변화 폭이 크니 팀을 매년 새로 만드는 꼴이고, 코칭스태프의 동기부여나 스트레스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매년 기초공사만 하고 있는 셈일테니.
그럼에도 나는 강원의 선전을 바란다. 강원이 '다른' 팀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강원이 '옳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K리그에 있는 팀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해답을 갖고 시즌을 치열하게 치르고 있다. 그 모든 노력들을 폄하하고 싶은 것은 생각은 전혀 없다. 예를 들어 활동량으로 지난 몇 년의 부진을 깔끔히 씻고 있는 수원 삼성의 축구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강원은 김병수 감독의 부임 뒤 3년째 패스와 점유율, 주도권을 중시하는 축구를 펼친다. K리그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전북 현대, 울산 현대 두 팀을 제외하곤 그 어떤 팀도 선택하기 힘든 유형의 전략이다. 신체 능력과 활동량이 강조되는 K리그에선 안정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역습을 펼치는 것이 적은 노력을 들여서 큰 결과를 얻는 효율적 방법일 수 있다.
강원은 '실리적'이라는 말로 곧잘 표현되는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플랜A'로 삼은 적이 없다. 경기 중 주도권을 빼앗겨 내려서는 경우는 있어도, 시작부터 엉덩이를 뒤로 빼고 앉는 일은 없다는 의미다. 좁은 공간에서도 신중하게 만들어가는 면에선 4년 연속 챔피언에 오른 전북보다 더 끈질긴 면도 있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다양성이 중요하다. 서로 다른 생각끼리 부딪히고 싸워가면서, 서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발전한다. 잘은 몰라도 헤겔이 정, 반, 합의 과정을 거쳐 진리에 다가선다고 하지 않았던가. 강원의 축구는 K리그에서 '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반'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과언이라고 해야 할까.
외국인 선수들은 K리그의 템포가 빠르다고들 이야기를 한다. 쉴 틈 없이 압박하고 부딪히는데, 거기서 잠시라도 밀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위험하게 패스를 돌리는 것보다, 선이 굵은 패스로 전방에 연결하고 재압박하는 스타일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K리그의 외국인 공격수들이 장신에 힘이 좋은 선수들이 많은 것은 이러한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혼자서도 거친 K리그의 수비들 사이에서 공을 지켜줄 필요가 있으니까. 분명 일리가 있는 생각들이고 실제로 많은 팀들이 그렇게 생존 싸움을 하고 있다.
다만 K리그가 현재 보여주는 해답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옆 나라인 J리그는 조금 더 아기자기한 패스를 바탕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3년 전 러시아 월드컵 때도 일본이 공을 돌리는 것만큼은 유럽 웬만한 팀들과 비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생각하는 해답은 한국과 달랐다는 이야기고, 나름 그 성과도 냈다. 독일을 이겼다지만 탈락한 우리나라와 달리 16강에는 올랐으니까.
강원만큼 확고한 색, 특히나 K리그 다른 팀들이 보여주지 않는 축구를 하는 팀은 없다. 그래서 강원이 K리그에서 갖는 의미가 유난히 크다고 생각한다. 강원의 존재로 K리그에서 볼 수 있는 축구가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자연스레 다른 팀들도 강원을 잡아내기 위해선 더 수준 높은 '선 수비 후 역습'을 준비하거나, 강원을 최후방부터 흔들기 위해 강력한 '전방 압박'을 준비해 오기도 한다. 강원이 확고한 색을 낼수록, 그에 맞서는 K리그 팀들도 더 선명한 전술로 맞설 수밖에 없다.
다르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주변에서 다 비슷한 길로 갈 때, 다른 길로 가면 '왜 그 길로 가냐'며 묻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나. 당연히 남들과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면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깊은 고민은 물론 확신까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병수 감독의 '고집쟁이 기질'을 또한 응원하고 싶다.
지난해 시즌 말 인터뷰 때 김 감독과 인터뷰는 마치 선문답 같았다. 김 감독은 여러 질문에 '정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본인의 생각을 털어놓으면서도 단정은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기려는 목표를 두고 축구를 해야 한다"면서도 "수비하고 역습해서는 이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주도권을 쥐는 축구로 승리를 거머쥐고 싶다는 말이다. 하지만 "볼을 오래 잡으면 역습 위험도 크다"며 본인의 축구가 가진 약점을 인정하며 "이걸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스타일은 유지하면서 다른 돌파구를 찾을 것이냐가 문제다. 어떻게 성장해 갈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나, 조금 더 나은 답들은 있고, 그걸 찾아가려면 고민하고 다른 이들과 좋은 의미에서 경쟁하며 장단점을 찾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따지고 보면 축구뿐 아니라 인생에도 통용되는 결론이 아닐까.
프로의 세계에서 결과가 아닌 것을 보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지 알고 있다. 감독도, 선수도, 구단 직원들도 순위를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결국 시즌을 마치고 나면 그것으로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밖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응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
평가는 결국 최종 순위로 받겠지만, 강원은 존재 자체로도 뭔가 주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굳이 '콕' 집어 강원을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다. 올해도 다른 축구로 맘껏 싸워주길 바라니까. 그래야 K리그 전체가 더 재밌어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