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아이의 방학을 맞아 8일간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남호주 플린더스 레인지스(Flinders Ranges). 집에서 1600 킬로 떨어진 아웃백이다. 호주대륙의 안쪽에 자리 잡은 사막에 가까운 지형으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이 지역들은 광활한 대평원과 인류의 손때를 타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끌어 모은다.
주일 오후 1시 운전을 시작한 우리는 해가 다 넘어간 뒤 Sea Lake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여행 트렁크는 차에 그대로 둔 채 세면도구만 챙겨 들고 그야말로 저녁 먹고 잠만 잔 뒤 다음날 첫새벽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꼬박 7시간을 더 운전하면 황량하고 메마른 땅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무심한 하늘과 구름이 조그씩 달라질 뿐이다.
첫 숙소인 이도위 스테이션(Edeowie station)에 도착했다. 한때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묵었던 숙소를 개조해 여행자를 맞았다. 커다란 사막 한가운데 오두마니 있는 집 한 채. 방은 여러 개였지만 우리 가족만 머물러 더 외딴 느낌의 고요함이 있었다. 이 지역을 여행 오는 사람들은 이런 고립감 적막함 단절감을 즐기러 오는 이들이다.
그래도 관리인 부부가 석양이 아름다운 산책길도 알려주고 다음날 등산로 입구까지 4륜 구동차로 운전도 해주었다. 캠핑카를 몰고 온 이들은 깊은 사막 여기저기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며 드문 드문 자리를 잡는다. 인터넷도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묵언수행을 하듯 길을 걷다 하늘 보고 지는 해를 보고 별을 보는 게 일이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석양이 미치도록 황홀하다.
밤하늘에 가득한 은하수와 별들은 할 말을 잃게 하거나 '하아악' 비명 같은 감탄을 지르게 한다.
이종태 작가는 '경이라는 세계' 저서에서 '별은 가스덩어리로 구성된 존재다'라는 과학적 분석 이상의 원사적 의미를 현대인들이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태곳적 인류들이 느꼈을 마술 같고 주술 같은 형언하기 어려운 엄청난 힘과 에너지가 뿜어져 내려오는 것을 그날 밤 느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숙소에서 간단한 식사와 커피 한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첫날 미리 장 봐온 식재료로 도시락을 싸들고 날마다 다른 방향으로 나섰다. 어떤 날을 산에 오르고 물이 메마른 폭포를 봤다.
어떤 날은 한때 광산업이나 농축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가 여러 이유로 떠나 유령 마을이 되어 버린 흔적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만리장성 이름이 붙은 바위 산.
그러다 배가 고프면 도시락을 꺼내 배를 채웠다. 이 날은 아들이 전날 저녁 먹다 남은 치킨과 야채를 썰어 넣어 만든 랩을 먹었다. 완벽했다.^^ 시장이 반찬이기도 하겠고 풍광이 좋아서이기도 하겠고 낯선 주방에서 바지런히 일한 어린 아들의 정성이 켜켜이 담겨서이기도 하겠다.
걷다 보면 온갖 야생동물을 만난다.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거대한 새 이뮤떼도 보고 캥거루며 왈러비도 수도 없이 뛰어다닌다.
무지개는 뜨고 지고 바람이 불다 비가 오락가락 내리기도 한다. 아무래도 좋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내리면 맞다가 피하다가 하면서 또 걷는다. 이리도 단순한 여행이 또 있을까.
그러다 애버리진(호주 원주민)이 수천 년 전 그렸다는 동굴 벽화를 만나고
그들의 삶의 흔적들을 추적하고 상상해 본다.
그렇게 일주일을 헤매며 세상과 담을 쌓고 머리를 비우던 플린더스 레인지. 도대체 그 메마른 빈 땅에 뭘 보러 가느냐는 사람들도 있고 천지사방이 빈틈없이 너무 좋아 기필코 이 먼데까지 와서 결혼을 했다는 지인도 있다. 산티아고는 아니지만 순례자처럼 매일 만보든 이만 보든 걷다 보면 마음이 먼지 한 톨 없이 텅 비워졌다. 마음이 복잡한 도시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다.
새벽 6시 운전을 시작해 삼시 세끼를 차에서 해결하고 주유를 두세 번씩 하면서 1600킬로를 다시 달려 자정이 오기 전에 내 집, 내 침대에 몸을 뉘었다. 플린더스 레인지는 어쩌면 아주 멀지는 않은 곳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