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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준 Dec 23. 2021

[철학-책추천] 레비나스, 타인의 얼굴(강영안)

공정사회의 단초는 레비나스에게, 그리고 타인의 얼굴에 있다.

'대전환의 시대, 대한민국은 어떻게 공정의 날개로 비상할 것인가'라는 주제가 꽤 흥미롭다.   

  

 "불공정이 판치는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재명 후보. 마이클 샌델은 어떤 답변을 할까. 그 답이 시원찮다. 샌들은 어떤 멋진 기준으로도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기사 인용)     

▶ 이재명 후보는 “이번에 기후 위기나 디지털 전환 포함해 인류 역사에 기록될 만한 대대적 변화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도 결국 정의로운 전환, 누군가가 심각하게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전환의 기회를 누리고 전환이 좋은 전환 된다면 그 결과물도 누리는 전환이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걱정이 앞선다”라면서 “국민 사이에서도 지금 말씀하신 능력주의 체제에서 우선적 우월한 위치를 차지해 기회를 누리는 사람도 있겠으나 기회보다는 오히려 배제되는 사람도 있겠다. 어떨까? 시간이 길지는 않아서. 희망적인가? 아니면 부정적이신가? 말씀해 달라"라고 물었다.     


▷ 샌델은 “저는 확실하게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할 것은, 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 지금의 심각해진 빈부격차를 어느 정도 해소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계층상승의 사다리 공정한 기회에 관한 대담보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구성원이 공공선에 참여하고 모두가 정치에 참여하여 사회적 문제에 관해 공동 논의할 수가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또한 이러한 기득권층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우리의 공공의 사회, 이런 사회 결정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들의 의사가 잘 반영되지 않는 것을 반드시 해결해 그들의 소득 늘리는 것 외에도 우리 공공의 삶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부분들을 늘려줘야만 해결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결론은?

 

마이클 샌델의 대표작은 <정의란 무엇인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책(강연)에 정작 마이클 샌델 자신이 주장하는 정의가 무엇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정치철학적 입장이 명백히 드러나는 책은 <왜 도덕인가>이다. 여기서 그는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를 주장한다. 필자는 아직도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공화주의는 이미 공동선을 강조하기에 그 앞에 공동체주의적이라는 말을 붙일 이유가 없다. 공동선을 더 강조한다는 말로 해명되지 않는다. 샌들은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가 공화주의에 있는 자유의 요소 중 어떤 부분을 어느 정도로 희생시키는지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 적어도 책에서는.     


 샌들의 진의는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라는 문구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위의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모두가 정치에 참여하여 사회적 문제에 관해 공동 논의할 수가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제 샌들의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의 특징이 명확해졌다. 공화주의(자유주의+공동체주의 정도에 있는 정치철학 이론)에서 공론장에 참여하지 않을 자유를 최소화하는 것. 공론장에의 참여가 권장이 아닌 의무의 수준이 될 것을 요구한다는 것.      


샌델의 전제는 공동체주의, 공동체주의의 전제는 레비나스.

 샌델의 근거는 무엇일까?

 아마 공론장에서 타인을 대할 때, 즉 ‘타인의 얼굴’을 마주할 때 윤리성이 발동되기 때문일 것이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어떤 추상적인 기준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 추상적인 기준에는 언제나 한계가 존재한다. 트롤리 딜레마가 공허한 말장난인 것처럼(샌델은 트롤리 딜레마로 공리주의의 한계를 지적했다. 현상학자들은, 특히 메를로 퐁티는 신체나 체험이 인식의 출발이라고 역설했다.)


 공정을 의욕 해야 공정을 이룰 수 있는데, 공정을 의욕 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책임(약하게 말하면 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타인과의 마주함(실제 마주침)을 통해 나의 이기성이 잠식될 때, 내 안의 무한자(이타성)는 고개를 든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치 철학적 난제들은 해결될 수 있다.


 정리하면, 타인의 얼굴을 본 후, 윤리적인 삶이 시작되고, 이권과 무관하게 정의를 의욕해야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다시 샌델로 돌아가자. 그의 결론은 간단하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사회. 서로의 개별적인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사회. 윤리성이 발동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그리는 샌델에게, 자꾸 어떤 기준이 세워져야 공정한 사회가 되느냐고 물으면 안 되는 것이고, 당연히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레비나스의 말로 마무리하겠다.     

 “타인으로 인해 나의 내재성의 질서가 교란되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나의 독단의 잠에 빠져 철학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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