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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날 백대백 Apr 22. 2024

낮은음 자리표

07. 길을 잃었어요.

"낮피라는거 주실 수 있나요?"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선글라스를 낀 맨발의 그녀가 낮피를 원한다.

낮피는 낮은음 자리표에 있는 일종의 기부커피다.

누군가 도움을 필요한 사람을 위해 커피 한잔값을 더 계산하고 그 도움을 원할 때 주문으로 쓰는 말이다.

그 도움은 꼭 커피가 아니어도 된다.

"여기가 어디쯤인가요? 길을 잃었어요."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듯 주위를 둘러보며 그녀가 말한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잠깐 들어오실래요?"

지수는 따뜻한 미소로 그녀를 부른다.

지수의 카페는 상담카페다.

실내의 자리는 상담자의 예약석이다.

하지만 지수는 맨발의 그녀가 횡설수설하는 그녀가 무엇을 찾고 있다고 느낀다.

낮은음 자리표의 자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자리다.


"지갑도 안 가지고 집에서 나와 무작정 걷다 보니 이지경이에요."

"핸드폰이 필요하실까요?"

슬리퍼를 그녀 앞에 조용히 내려놓으며 지수가 묻는다.

"아뇨. 전화하고 싶어도 외우고 있는 번호가 없어요."

그제서야 자신이 맨발이었다는  것을 안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한다.

보라색 매니큐어가 발린 그녀의 새끼발가락이 예쁘다고 지수는 생각한다.

"바이올렛이에요"

에스프레소머신의 스팀소리에 그녀의 말이 묻힌다.

반응이 없는 지수를 보고 그녀가 다시 힘주어 말한다.

"내 이름이요! 바이올렛이라 해요."

"아 죄송해요. 저는 지수예요. 최 지 수"

이름이 특이하다.'바이올렛' 어디서 들어본 듯하다.

아 맞다!

"혹시 뮤지컬 <Jesus Or Zeus 지저스 오 제우>의 그 바이올렛이요?"

그녀는 뮤지컬배우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배우다. 그런 그녀가 지수의 작은 카페에 길을 잃고 앉아있다.

그것도 신발도 없이 맨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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