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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날 백대백 Jun 27. 2024

낮은음 자리표

20. 제자리로

어젯밤의 일정이 대단히 길었었나 보다.

지수는 깊은 잠에서 서서히 눈을 뜬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낯이 익다.

모습보다도 이 공간의 향기가 더욱  익숙하다.

그녀는 다시 혼란스럽다.

여기는 조선朝鮮의 왕궁이 아닌 그녀의  카페

'낮은음 자리표'다.

'아 이렇게 테이블에 앉아 꿈을 꾸었구나'

지수는 아직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가배상궁 최씨가 자신인지

낮은음 자리표의 지수가 자신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비몽사몽한 몸은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커피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있다.

검은 흑수정 같은 커피를 바라보며 그윽한 향을 음미하고 혀끝에 와닿는 진한 커피의 맛은 마치 전선줄을 타고 흐르는 전기처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전해지는 것 같다.

'아 꿈이었구나

숙원 지씨는 어떻게 되셨을까

프랑스인 탁덕(鐸德;신부)님은 어찌 되셨을까

너무나도 현실 같은 꿈이었다.

꿈속의 인물들이 지금이라도 카페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커피를 내놓을 수 있을까'


숙원 지씨는 궁을 나왔다.

천주를 믿는다는 것이 발각되자 그의 시어머니 대왕대비는 그녀를 폐위시키고 유배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자 조선의 왕이었던 범이는 비록 자신은 망가졌지만 어린 시절 동무였던 지씨마저 외딴곳에 유배되어 쓸쓸히 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사력을 다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왕대비에게 저항하여 끝끝내 유배만은 막았고 그녀의 고향인 강화도 부모님 댁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숙원 지씨는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이후 닥친 엄청난 박해의 물결을 피했을까.


프랑스인 탁덕님은 이후 기도서 보급을 위해 인쇄소를 만들고 신학교를 세우는 등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선교에 열중했다.

"우리 선교사들은 온 힘을 다해 사목을 합니다.

그러나 극도로 조심하면서 사목을 합니다.

냐하면 우리들 머리 위에는 항상 우리를 막으려는 도끼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박해의 중심에 들어갔고 체포되었다.

그리고 어느 따듯한 봄날 하나님 곁으로 간다.


"주님 제가 사제로서 이 고통을 기품 있게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당분간 '낮은음 자리표'연재를 멈추고 생각의 시간을 갖고 돌아오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조만간 다시 뵐께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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