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영팔이다. 대구에서 태어났다고 짐작하고 있다. 아무튼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자동차 밑에서 야옹야옹 울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족속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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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간이 바로 나다. 내가 모시고 있는 고양이 영팔이에 대해 써볼까 한다. 2020년 6월 6일, 집 주변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 옆 건물을 봤더니 자동차 밑에서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당시에는 어미 고양이가 주변에 있을 거라 판단했기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새끼 고양이 우는 소리에 홀린 듯 자동차 밑을 바라봤고 전날과 똑같이 새끼 고양이는 그대로 있었다. 어미 고양이가 올 때까지 꽤 오랜 시간 멀찍이 떨어진 채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나도 어미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밖에서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먼저 고양이를 보러 찾아갔다. 멀뚱히 나만 바라볼 뿐 이제는 울지도 않는 녀석을 보니 아픈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똑같은 곳에서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면서 저체온증이 걱정되었다.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가 박스를 챙겨 자동차 밑에서 녀석을 구조했다.
살아생전 키워봤던 동물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가 전부였기 때문에 막상 집으로 데려왔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밝은 곳에서 마주한 녀석의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고서는 씻기는 게 최우선이라 여겨져 인터넷과 고양이 카페에서 알아낸 정보를 가지고 물티슈로 녀석의 얼굴과 발바닥 정도만 닦아냈다. 밖에서 봤을 때는 몰랐었는데 가까이서 마주한 모습은 며칠은 굶었는지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 있었다. 그런 녀석이 영원히 팔팔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름을 '영팔'이라고 지어주게 되었다.
영팔이를 보면 고양이 특유의 여유로움이 부럽다. 잠을 하루 종일 자다가 일어나서 밥을 먹고 나에게 다가와 만져달라는 느낌이 아닌 만지라는 느낌이 강한 드러눕기. 스스로 어느 정도 만족했다면 잠을 자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 이동하여 다시 잠을 청한다. 영팔이의 천하 태평한 모습을 출근길에 마주하면 부러울 때가 많다. 다음 생에 기회가 된다면 나도 선한 집사 밑에서 근심 걱정 없이 여유를 부리며 살고 싶다.
어느덧 영팔이와 함께 생활한 지 3년 차에 접어들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좋은 추억도 많이 생겼다. 어릴 때, 목욕시킨다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팔이 시원하게 긁혔다. 그 상처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화장실이 아닌 매트리스 커버에 대동여지도를 그려버린 팔정호 선생. 어쭙잖은 스크래처는 쳐다보지도 않아서 남아나질 않았던 소파. 온 집 안 구석구석 빠져있는 영팔이 털 때문에 콧물이 줄줄 흐르는 비염까지도 생겼다. 보통 고양이의 수명이 15년 정도라고 하는데 이제 3년이 지났고 앞으로 대략 10년 조금 넘게 남은 시간 속에서 우리의 추억은 현재진행형이다.
예전에는 동물의 마지막 순간들이 나오는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면 안타깝다 정도만 생각하지 별다른 감정을 못 느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가슴이 먹먹해서 보지도 못하고 동영상을 넘겨버린다. 우리 집 영팔이는 나이가 들어도 이름처럼 팔팔했으면 좋겠다. 나와 오랜 시간 함께하며 앞서 말한 추억들처럼 팔에 상처가 나도, 가구를 망가트려도, 양쪽 코가 다 먹혀도 나는 상관없이 다 괜찮다. 지금처럼 소중한 나날들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먼 미래에 우리가 세상과 긴 작별 인사를 나누는 순간. 나와 영팔이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잘해줄 자신 있으니 다른 사람 말고 또다시 나를 집사로 임명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