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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Oct 09. 2023

‘나 혼자 산다’를 보다가 그리운 얼굴들이 떠올랐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만난 인연 2


다림질을 하는 동안 지난 추석에 방영된 ‘나 혼자 산다’를 틀어 놓았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박나래가 추석을 맞아 고마운 이들에게 선물할 음식을 만들어 나눔을 하는 것이었다. 박나래가 KBS 김상미 감독님을 찾아 옛 추억을 나누는 장면이 참 훈훈했다. 신인 개그우먼 시절 진짜 배고플 때가 많았는데 그때 감독님이 많이 챙겨 주셨다고 했다. 제작진은 박나래에게 음식 나눔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질문했다. "당장의 밥은 저에게 생존이었다. 밥을 사 준 사람은 나를 살려 줬던 사람이었다. 그때 나를 살려 줬던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박나래는 나에게 웃음뿐만 아니라 감동을 주었다. 또한 평소에 잊고 살았던 고마웠던 사람들, 나를 살려 줬던 사람들도 떠올리게 해 주었다.


결혼 후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첫아이를 가졌을 때였다. 입덧이 심해 온종일 드러누워 지냈다. 내 평생 몇 번 먹어 보지도 않았던 독특한 향이 나는 가죽나물이 불현듯 먹고 싶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던 순대가 먹고 싶었다. 소보로빵도 카스텔라도 정말 먹고 싶었다. 남편이 한식당에서 순대를 사 왔지만 한 조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뱉었다. 조미료 맛이 느껴져 속이 메슥거렸다. 남편이 만들어 준 소보로빵도 내가 원하던 맛이 아니었다. 발효가 되지 않아 신맛이 났다. 낮 기온이 40°C를 훌쩍 넘는 날씨는 나를 지치게 했고 제대로 먹지 못해 점점 야위어 갔다. 살얼음이 사르르 얼은 물냉면 한 그릇을 먹으면 속이 진정될 것 같았다. 남편이 한식당에서 물냉면을 사 왔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조미료 맛이 강하게 느껴져 속이 되려 울렁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주일 미사에 참례하러 갔다가 구역장님을 만났다. 임신했다고 말씀드렸더니 기뻐하시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해 줄 테니 말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물냉면이 너무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구역장님은 하하 웃으시면서 입덧하는 자매님들께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물냉면이라고 대답한다고 말씀하셨다. 집에 제면기가 있으 면도 뽑을 수 있고 육수도 직접 끓여서 물냉면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물냉면을 먹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속이 가라앉는 듯했다.


며칠 후 구역장님 댁에 갔다. 나와 남편뿐만 아니라 구역원들도 다 함께 초대하셨다. 구역장님은 이민 오신 지 거의 30년이 되었다고 하셨다. 부엌에는 제면기뿐만 아니라 고기절단기까지 있었다. 점심 준비하시는 걸 좀 도와 드리려고 했더니 모두들 나를 말렸다. 가만히 앉아서 음식을 받아먹는 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탁 위에 냉면이 차려졌다. 얼음을 동동 띄운 물냉면이었다. 육수에 식초를 넣었다. 평소보다 좀 많이 넣었다. 새콤한 맛이 식욕을 돋워 주었다. 그릇째 들고 육수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육수가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 주었다. 속이 시원하고 개운했다. 고기와 야채를 넣고 끓인 육수는 담백한 맛이 났다. 나는 면을 먹기도 전에 육수를 거의 다 마셔 버렸다. 그동안 입덧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너무 힘들었는데 임신 후 처음으로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역장님께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드렸다.


임신했을 당시,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이 있었다. 다들 나보다 서너 살이 많았다. 그중 한 명은 우리 집 옆 호수에 살아서 잦은 왕래를 하며 지냈다. 언니는 한국에 있을 때 친정 엄마가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주방일을 거들었다고 했다. 무슨 음식이든 뚝딱뚝딱 잘 만들어 냈다. 언니가 만든 고추장두부찌개는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만큼 맛있었다. 언니는 수시로 남편과 나를 집에 불러 저녁을 해 주었다. 언니가 만든 음식은 모두 맛깔났다.


입덧을 시작하고부터는 언니가 해 준 음식도 잘 먹을 수가 없었다. 살이 너무 빠져서 몸무게가 40kg도 채 되지 않았다. 언니는 조금이라도 먹어 보라며 이것저것 만들어서 우리 집에 갖다 주었다. 칼국수를 끓여서 냄비째 들고 오기도 했고 달걀찜을 해서 갖다 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하얀 접시에 생선구이 한 조각을 담아 왔다. “안젤라, 이거 고등어 구운 건데 반쪽 밖에 없어. 한 마리 구워서 반쪽은 가시 발라서 애들에게 주고 나머지 반쪽은 안젤라 주려고 가져왔어. 반쪽만 가져와서 미안해. 나도 아끼고 살다 보니 한 마리 더 안 굽게 되네.”라고 말하며 언니는 내게 미안해했다. 언니네도 우리도 잠시 휴직을 하고 공부하러 왔기 때문에 생활비를 정말 많이 아끼며 살고 있었다. 언니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내가 더 미안했다. 나는 고등어구이 반쪽이 올려진 접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접시에는 노릇하게 구운 고등어살만 있었다. 레몬즙을 뿌려 구운 고등어는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언니에게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웠다.


피닉스에 사는 동안 구역장님과 언니 이외에도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식사 초대도 많이 해 주었고, 남편과 나 그리고 태어날 아기를 위해 미사지향 신청도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다들 한 가족처럼 도탑게 지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도움이 필요한 내게 말없이 선뜻 손 내밀어 주는 이웃들이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임신 초기를 잘 넘겼다.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한결같이 “안젤라도 나중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베풀면 돼. 지금은 마음껏 도움을 받아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몇 달 후 남편과 나는 뉴욕 주로 이사했다. 떠나는 발걸음이 많이 아쉬웠다.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만 받고 예쁨만 받고 애리조나 주 피닉스를 떠났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도 피닉스에서 '나를 살려 줬던 사람들'을 위해 박나래처럼 음식 나눔을 하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다. 잠시 만난 인연들이라 현재 연락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때도 지금처럼 SNS로 연락할 수 있었다면 지금 어디에 살든 서로 연락이 될 텐데 마냥 아쉽기만 하다. 다행히 나를 살뜰히 챙겨 준 언니와는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몇 년 전 연락이 닿았다. 나도 언니도 해외에 살다 보니 아직까지 서로 만나지 못했지만 카카오톡으로 종종 연락하며 지낸다.


저녁거리를 사러 한인마트에 갔다. 냉동고에 손질된 자반고등어가 있었다. 오래전 우리 집 식탁 위에 언니가 놓고 간 그 반쪽짜리 고등어구이가 생각나서 한 팩을 집어 들었다. 생선구이팬에 종이포일을 깔았다. 올리브유를 조금 둘렀다. 반쪽짜리 고등어 2개를 올려놓고 레몬즙을 뿌렸다. 뚜껑을 닫은 후 중불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생선을 굽는 동안 언니 생각이 났다. 카카오톡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 고마웠다고 다시 한번 인사했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 인연을 맺고 지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 선한 마음과 따듯한 미소를 내게 보여 준 그들이 너무 그립다. 나는 소망한다.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든 건강하고 행복하길, 내 따스한 마음이 그들에게 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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