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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Mar 25. 2024

즐거운 관찰, 딸의 교환학생 생활

이제 3개월이 지났다


딸이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간 지 세 달이 되었다. 출국 전에 했던 여러 걱정들이 이제는 기우에 지나쳤음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 학기 동안 해외에서 잘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학교 캠프에 참여하느라 단기간 해외에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반년 가까이 집을 떠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막내로 자라 자립심도 부족하고 항상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고 여겼기에 뭘 해도 미덥지가 못했다.


하지만 트렁크에 넣어 놓은 짐을 보고 조금 마음이 놓였다. 옷가지, 생활용품 등을 압축팩을 사용하여 깔끔하게 싸 놓았다. 한 학기 동안 사용할 짐 치고는 너무 간단해 보였다. 딸은 최소한의 물품만을 가지고 가서 그냥 살아 보겠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베갯잇 하나는 꼭 챙겨 가라고 했다. 낯선 잠자리에 누워도 늘 사용하던 베갯잇을 씌우면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걸 내가 경험해 봤기 때문이었다. 딸을 보내려니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들었다. 딸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고 했다. 딸의 보드라운 손바닥에 내 체온과 손길이 많이 닿아 있는 묵주를 올려 주었다. “이 묵주를 엄마라고 생각해. 네가 물리적으로는 혼자 있어도 마음으로는 엄마와 함께 있는 거야.”라고 말해줬다. 딸을 한번 안아 주었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싱가포르 출발 후 미국에 도착하기까지 32시간이 걸렸다. 직항이 없어 영국을 경유하여 비행기를 꼬박 24시간 가까이 타야 했다. 멀미가 심한 아이라 걱정이 되었다. 멀미약을 과다복용하면 부작용이 생기고, 적게 복용하면 효과가 없는데 딸이 알맞은 양을 복용할지 염려되었다. 딸이 미국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올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구한 숙소가 어떤지 궁금했다. 딸이 보낸 사진을 보니 다행히 시설과 전망이 좋아 보였다. 3명의 미국 학생들과 함께 거주한다고 했다. 거실과 주방도 깔끔해 보였다. 실제로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실에 벽난로도 있었다. 각 방에 화장실이 딸려 있어 편리하게 보였다. 방에는 싱글 침대와 책상, 그리고 서랍장이 있었다. 그 방을 쓰던 아이는 싱가포르에 한 학기 교환학생을 갔다고 했다. 숙소를 잘 구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안정돼 보여서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다음 날 딸에게 연락을 해 보니 너무 추워서 밤새 오들오들 떨었다고 했다. 찬바람이 실내로 들어와서 마치 외부에 있는 듯 느껴졌다고 했다. 미국에는 온돌집이 별로 없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오래전에 내가 미국에서 살 때 겨울에는 방마다 전기히터를 켜 놓고 지냈던 게 생각났다. 딸의 숙소에는 전기히터가 구비되어 있지 않고 사용할 수도 없다고 했다. 전기비 때문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입던 옷 중에 그나마 두꺼운 면 티셔츠와 바지를 골라 가져갔는데 한겨울 실내복으로 입기에 턱없이 얇았을 것 같았다. 옷을 껴입고 패딩을 입고 이불을 덮고서도 덜덜 떨었다는 딸의 말을 듣고 나니 애가 끓었다.


30°C가 넘는 한여름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살다가 왔으니 영하권의 한겨울 날씨가 엄청 춥게 느껴졌을 텐데 난방까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나 추위를 많이 타는 아이여서 더 걱정되었다. 다행히 다음 날 집 근처 몰에서 겨울 잠옷과 실내화, 침대패드, 전기담요를 추가로 사 왔다고 했다. 그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


첫 며칠은 추위 때문에 좀 힘들었지만 대체로 잘 적응한 것 같았다. 학교 캠퍼스도 아름답고 분위기가 서정적이라고 했다. 수업도 재미있고 교수님도 잘 가르쳐 주신다고 했다. 음식도 입에 잘 맞다고 했다. 싱가포르에 살 때 딸은 한식이나 동남아 음식을 즐겨 먹었지만 피자나 햄버거, 스테이크와 같은 서양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끔씩 먹었다. 매일 미국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말을 들으니 걱정이 사라졌다. 점심은 주로 학생식당에서 식권으로 사 먹고 저녁은 집에서 요리해 먹는다고 했다. 외식비가 너무 비싸서 일반 식당에서 사 먹기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금요일에는 집에서 조금 멀지만 가격이 싸고 물건이 싱싱한 '파머스 마켓(장터)'에 가서 1주일치 장을 봐 온다고 했다. 내가 알려 준 레시피 또는 유튜브나 틱톡 동영상을 보고 요리를 한다고 말했다. 연어 구이, 스파게티, 오므라이스, 김치볶음밥, 카레, 청경채 볶음, 양념 소고기 구이 등 나름 다양한 요리를 해서 잘 챙겨 먹는 것 같아 보였다.  


딸이 요리한 후에 보내 준 사진이다. 볶음밥, 비비고 만두, 소고기 구이, 브로콜리 볶음으로 차린 한 끼.


베이컨 김치볶음밥. 김치가 너무 시다고 해서 설탕을 조금 넣어 보라고 말해 줬다.


소고기 간장양념 구이. 제일 싼 부위를 샀더니 조금 질겼다고 했다. 남은 소고기는 칼등으로 두드린 후 사용하라고 말해줬다.


고추장양념 연어 구이. 연어 껍질을 일부러 벗기지 않았는데 식감이 별로였다고 했다.


 청경채 굴소스 볶음. 싱가포르에서 자주 먹는 거라 쉽게 만들었다고 했다.


토마토소스 파스타. 시판 토마토소스에 야채만 조금 더 넣었다고 했다.


오므라이스. 볶음밥을 한 후 달걀지단에 싸 주었다고 했다.


달걀덮밥. 일본 멘쯔유 소스를 구입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카레라이스와 미소국. 감자를 너무 오래 끓여서 죽처럼 퍼졌다고 했다.


한 학기 생활비를 가계부를 써 가며 알뜰하게 쓰는 것 같아서 기특했다. 매달 작성한 가계부 내역을 내게 보내주고 있다. 지난 봄방학에는 가까운 도시인 뉴욕과 보스턴에도 다녀왔다. 견문을 많이 넓힌 것 같았다. 싱가포르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풍경과 문화를 접하고 생각의 폭이 커진 것 같았다. 한 학기이지만 교환학생을 보내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하지만 돈을 헛되이 쓰지 않는 것 같아서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나는 딸이 의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 때의 나와 비교하면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의식적으로 딸에게 옷을 세탁하거나 간단한 요리를 하라고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느라 바쁜 아이를 보면 말을 꺼내려다가도 삼키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바쁠 때는 도와 달라고 했지만 내가 할 수 있을 때는 굳이 시키지는 않았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대학교 입학 이후로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과 친구들을 보면 너무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나는 19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아서 대부분의 일은 혼자 이겨내고 헤쳐 나가려고 노력했다. 그 덕분에 독립적인 사람으로는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품 안에서 마음껏 나를 내려놓지 못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그 점이 항상 아쉽게 느껴졌다. 내 안에 그런 마음이 내재해 있어서인지 몰라도 딸에게 의도적으로 독립심을 키우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딸이 내 품을 서둘러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딸이 스스로 생활해 보는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잘하고 있어 안심된다. 아직은 학생이라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규모 있게 잘 생활할 것 같다. 딸은 두 달 후에 싱가포르로 돌아올 예정이다. 많이 성장한 딸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매일같이 문자와 사진을 주고받고 주말에는 영상통화를 하지만 여전히 딸이 보고 싶다. 그리움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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