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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May 10. 2024

어릴 적 친구에게 구강검진을 받았다

처음 먹어 본 아귀수육, 함께 나눈 즐거운 대화


친정에 갈 때면 꼭 만나는 친구가 있다. 내 치아 건강을 지켜주는 고마운 친구다. 치과병원친정집에서 도보로 20여 분 거리에 있어서 편리하다. 오전 진료 마지막 시간 즈음으로 예약하면 구강검진을 받은 후에 친구와 함께 점심 식사도 할 수 있어서 좋다.


“안녕하세요? 진료 예약하셨나요?”

“네. 11시 반에 예약했어요.”

황ㅇㅇ 님이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을 따라 진료실로 들어다. 신발을 벗고 치과용 진료의자에 앉았다.


치과병원 리셉션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친구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치이이잌… 드륵드륵… 위이이잉…" 독특한 소음이 들렸다. 치과 특유의 기계 소리가 무서워서 치과에 가기 두려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50대 중반이 되었어도 “위잉”하는 치과용 드릴 소리를 들으니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때, 친구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ㅇㅇ야,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동안 불편한 치아 있었어?”

“아니. 싱가포르에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며칠 전에 치간칫솔로 오른쪽 아래 어금니 사이를 좀 세게 닦았더니 잇몸이 좀 부었네.”

“어디 보자. 아이고, 잇몸이 좀 아프게 생겼네. 이건 일시적인 거지?”

“응. 한국에 와서 갈비찜을 먹은 후에 그렇네.”

“아, 그래. 엑스레이 찍은 지 좀 오래되었으니까 이번에 새로 한 장 찍어서 지난번 사진하고 한번 비교해 보자. 스케일링받고 조금 기다려.”


360도 파노라마 엑스레이를 찍은 후 스케일링을 받았다. 치과위생사는 초음파 스케일러와 수기구를 사용하여 치아와 잇몸 주변의 치석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장비에서 미세한 진동이 울리고 물이 분사되었다. 바람이 “쉬익” 나오기도 했다. 치과위생사는 뾰족한 수기구로 치석을 긁어내기도 했고, 치실로 쓱쓱 문지르기도 했다. 평소에 치아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긴 했지만 아무래도 깨끗하게 닦이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스케일링이 끝나자 입안이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거울에 비춰 치아를 확인한 후 진료의자에 기대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파티션 너머로 옆 환자를 진료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들렸다.


“바람 들어갑니다… 딱딱딱… 좌우로 왔다 갔다…” 치과용 진료의자에 누우면 왠지 무섭고 불안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렇게 진료 과정을 말로 설명해 주면 눈을 감고 진료를 받는 환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옆 환자의 진료를 끝낸 후 친구는 내 자리로 왔다. 이전 엑스레이 사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약간의 치아의 마모는 진행되었지만 상태는 괜찮다고 했다. 취침 시에는 늘 마우스피스를 끼고 잤는데 그게 치아가 쉽게 마모되지 않도록 도와준 것 같았다.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카톡으로 연락하기로 했다. 나를 마지막으로 오전 진료가 끝났다.


수면용 마우스피스, 자연치아의 마모를 예방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친구가 예약해 둔 식당에 갔다. 아귀수육 맛집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아귀찜 먹어 본 적은 있지만 아귀수육은 처음이라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 입맛에 잘 맞을 것 같았다. 병원에서 5분쯤 걸어가니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 나왔다.


자리에 앉자 곧바로 반찬과 미리 주문해 놓은 아귀수육이 나왔다. 콩나물과 미나리가 잔뜩 들어간 맑은 육수에 생아귀를 넣고 살짝 끓인 것이었다. 친구는 내게 아귀간을 먼저 먹어 보라고 했다. 비린 맛이 하나도 나지 않고 크림처럼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났다. “와, 이게 아귀간이야? 너무 맛있다.” “그렇지? 사실 나는 이 아귀간을 먹으려고 아귀수육을 주문해.” 친구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아귀간의 깊은 풍미 느껴졌다. 부드러운 식감이 너무 좋았다.


처음 먹어 본 아귀수육. 작은 그릇에 담겨 있는 게 아귀간이다.


“요즘 연락되는 동창들 있어? 다들 어떻게 지내?”

“음, B 알지? B는 정형외과 의사고, A는 약사잖아. 우리 병원에 가족들 데리고 한 번씩 와.”

“N 소식 들은 적 있어?”

예전에 내가 K병원에서 인턴으로 수련할 때 가끔씩 만났지. N이 그 병원 약사였잖아. 의사와 결혼했다는데 그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어.”

“아, 너 B 알지? B는 외국인 회사에 근무했는데 몇 달 전에 말레이시아로 이사 갔어. 안 그래도 너랑 나, B, 셋이서 만나면 되겠다고 얘기했었는데. B 카톡 프로필 공유해 줄까?”

“물론이지! B도 1학년 때 친구잖아! 너무 보고 싶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치 국민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친구는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며 공부도 잘했다. 친구와 나는 학교 빙상부에 속해 있어서 아이스링크에서 함께 운동하는 시간이 많았다. 친구의 아버지는 참으로 자상하셔서 운동이 끝난 후 우리 집까지 자가용으로 데려다주고 가시곤 했다. 하지만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서로 다른 학교를 다니느라 지속적으로 연락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9년에 아이러브스쿨 동창 찾기 서비스를 통해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이런저런 추억들을 나누다 보니 금세 점심시간이 끝났다. 오후 진료를 위해 일어서야 했다. “오늘 진짜 고마웠어. 그런데 장치물 비용을 50%나 할인해 주면 어떡해. 다음에는 내가 꼭 밥 살게!” “그래. 조심해서 가고 다음에 오면 또 연락해.” 아쉬운 마음을 안고 헤어졌다.


친구와 헤어진 후 병원 옆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셨다. 따듯한 감정이 밀려 올라왔다. 국민학교 1학년 때 가슴팍에 손수건과 이름표를 달고 만났던 친구가 이제는 내 치아를 관리해 주는 의사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다. 진료 의자에 누워 친구의 진료를 받을 때 마음이 뭉클했다.


말레이시아에 이사 갔다는 친구 B에게도 바로 연락을 했다. 놀랍게도 싱가포르에서 아주 가까운 조호르바루에 살고 있었다. 메시지로 소통했지만 서로 "끼악"하며 반가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조만간 싱가포르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 덕분에 잊고 지냈던 옛 친구 B를 또 만나게 되어 기뻤다.


친구와 나는 행복한 추억을 꺼내 보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 고향 대구에 갈 때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구, 따스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내 치아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해외 생활 동안 새로운 인연을 맺고 많은 이별을 경험했지만 고향에 가면 언제든 나를 반겨주는 친구가 있어서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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