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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150마리 조각곰이 모였다

아름다운 버디 베어(United Buddy Bears) 전시

by 황여울


싱가포르의 상징적인 인공 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 그곳 잔디밭 한쪽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실물 크기의 조각곰 150마리가 손에 손을 잡고 두 개의 원을 이루며 서 있었다. 이름은 ‘아름다운 버디 베어’(United Buddy Bears). 그중 145마리는 각 나라를 대표했고, 나머지 5마리는 평화와 우정을 주제로 특별히 제작된 곰이었다. 각국의 예술가들은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 상징을 독창적인 문양과 색으로 곰의 몸에 담아냈다. 같은 형태의 곰이지만, 저마다 다른 스타일과 색채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20251002_143015.jpg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150마리의 조각곰이 손을 잡고 둥글게 서 있다.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아름다운 버디 베어 전시는 2002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세계 관용과 평화, 상호 이해’를 주제로 기획된 이 전시는 지금까지 5개 대륙 30여 개 도시를 순회하며 열렸다. 한국에서도 2005년,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난 기록이 있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독일과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곰들은 나라 이름의 영어 알파벳 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잔디밭을 따라 걸으면 마치 세계를 여행하듯 차례차례 각국의 곰을 만날 수 있었다. 입구 쪽에서 곰 몇 마리를 지나치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의 곰부터 찾게 되었다. ‘알파벳 K(Korea)나 R(Republic of Korea) 근처에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알파벳을 확인하기도 전에 익숙한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 있네. 멀리서도 태극 문양이 한눈에 들어오네’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재촉해 한국 곰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시선이 저절로 오른쪽으로 향했다. ‘어? 북한 곰도 함께 있잖아?’ 예상치 못했던 북한 곰이 바로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반가우면서도 묘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20251002_140444.jpg 남한 곰(왼쪽)과 북한 곰(오른쪽), 서로 다른 체제지만 한 자리에 나란히 섰다.


사실 공식 국가 명칭을 기준으로 알파벳 순서를 따진다면, 남한(Republic of Korea)은 'R'로, 북한(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은 'D'로 시작해 두 곰은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안내판에는 남한과 북한 모두 'Korea'로 시작되어 있었고, 두 곰은 양팔을 벌려 손을 잡은 채 나란히 서 있었다.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이 전시가 내세우는 ‘세계 평화와 상호 이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진 두 나라가,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하나의 이름 아래 함께 서 있는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남한 곰과 북한 곰은 서로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남한 곰은 태극 문양이 선명했고, 붉은색과 파란색의 대비가 강렬했다. 몸에는 애국가 가사 일부가 새겨져 있었다. 반면 북한 곰은 푸른 하늘빛을 배경으로 삼았고, 배 부분에는 백두산 천지가 그려져 인상적이었다. 하얀 옷을 입고 춤추는 선녀들의 모습이 신비롭게 표현되어 있었다. 조금 뒤로 물러서서 두 곰을 함께 바라보니, 이질감보다는 오히려 조화로움이 느껴졌다.


사진을 여러 장 찍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 부부가 북한 곰 앞에 멈춰 섰다. 안내판을 내려다본 뒤 고개를 돌려 한국 곰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나 사진을 찍었다. 두 곰을 함께 카메라에 담는 듯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부부인가?’하고 생각하는 순간, 남자분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한국에서 오셨어요? 남한인가요, 북한인가요?”


나는 웃으며 남한에서 왔다고 답했다. 터키에서 왔다던 그분은, 두 곰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걸음을 옮겨 다른 나라 곰들도 둘러보았다. 이탈리아 곰은 다채로운 색의 패턴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고, 미국 곰은 대표적인 상징물인 자유의 여신상을 곰에 입혀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그 옆의 영국 곰에는 영국 국기, 유니언 잭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파란색 물안경을 쓰고 있는 얼굴이 재미있게 보였다.


20251002_140946.jpg 자유의 여신상으로 형상화된 미국 곰(왼쪽)과 영국 국기 문양을 두른 영국 곰(오른쪽)이 나란히 서 있다.


강렬한 붉은 바탕 위로 남성과 여성의 형상이 돋보이는 베트남 곰, 가슴에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을 새긴 터키 곰도 눈에 띄었다. 이번 전시의 주최국인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곰은 붉은색 바탕 위에 섬세한 페라나칸 문양이 더해져 시선을 사로잡았다.


20251002_141016.jpg 터키 곰(가운데), 가슴에 새긴 아라베스크 문양이 눈길을 끈다.


20251002_142010.jpg 싱가포르 곰(왼쪽), 섬세한 페라나칸 문양이 돋보인다.


다채롭고 밝은 이미지를 담은 곰들 사이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곰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곰이었다. 곰의 목에는 거대한 산맥과 파란 하늘이 그려져 있었지만, 배 한가운데에는 슬픔과 불안이 느껴지는 여성과 아이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 전쟁과 내전, 가난이 겹겹이 남긴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같은 여성으로서, 또 엄마로서 그 앞에 서니 마음이 저려와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20251002_142108.jpg 아프가니스탄 곰, 배 부분에 그려진 고통받는 여성과 아이의 모습이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손에 손을 잡은 그곳에는 정치적 긴장도, 국경 분쟁도, 냉전의 그림자도 없었다. 이란과 이라크 곰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곰도, 인도와 파키스탄 곰도 비록 나란히 서 있지는 않았지만, 모두 하나의 큰 원 안에 함께 있었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곰을 찾아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은 하얀색 일본 곰 앞에서 포즈를 취했고, 미얀마와 중국, 그리고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도 하나같이 자기 나라 곰 옆에 서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나는 여러 나라 곰들을 찬찬히 살펴본 뒤, 다시 한번 남한과 북한의 곰 앞에 멈춰 섰다.


전시장을 나서면서도 남북한 곰이 나란히 서 있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대화와 긴장이 반복되고 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예술은 잠시나마 그 벽을 허물어 주었다. 손에 손을 잡은 곰들처럼, 언젠가 우리도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서기를. 언젠가는 따로가 아닌 하나의 곰으로 서는 날이 오기를 소망했다.





<전시 정보>

장소: Singapore Gardens by the Bay

(Bayfront역 또는 Gardens by the bay역 하차)

Supertree Grove Lawn (슈퍼트리 잔디밭)

전시 기간: 2025년 8월 15일 ~ 2025년 10월 12일

관람 시간: 오전 9시 ~ 오후 9시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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