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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플레이할 것인가

시장이 결정하는 성공의 상한선

by PODO

1장: 김연경의 역설 - 세계 최고의 재능, 시장이 만든 한계

김연경 선수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팀을 4강까지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했고, 터키,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 리그에서 뛰며 글로벌 스타가 된 인물이다. 배구계에서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으며, 그녀의 경기력과 리더십은 어떤 스포츠에서도 통할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김연경 선수의 경력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재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올릴 수 있는 수익의 천장은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의 역량이나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장 자체의 한계 때문이었다.


세계 최고 배구 선수의 현실적 수익


김연경 선수의 경력 최고 연봉은 터키 리그에서 받은 130만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배구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액이었지만, 다른 스포츠와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NBA 평균 선수 연봉이 832만 달러, 프리미어리그 평균 연봉이 390만 달러인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배구 선수 연봉은 평균적인 다른 종목 선수의 3분의 1에서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더 극적인 비교를 해보자. 스테판 커리는 2022년 기준 연봉 5,000만 달러에 광고 수익 4,500만 달러를 합쳐 총 9,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김연경 선수 경력 전체 수익의 50배가 넘는 금액을 한 해에 벌어들인 것이다. 이 차이는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의 차이로 설명할 수 없다. 단순히 선택한 시장이 다를 뿐이었다.


한국 복귀 후의 현실


2020년 김연경 선수가 한국으로 돌아와 흥국생명에 입단할 때의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해외 리그 활동이 어려워지자 한국 복귀를 결정했는데, 받게 된 연봉은 2억 8,000만원이었다. 이는 터키에서 받던 연봉의 80% 이상이 삭감된 금액이다. 올림픽 MVP, 세계 최고 선수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에서는 이 정도 수준의 대우만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김연경 선수가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배구에서 세계 최고가 되어도 다른 종목의 평균 선수만큼 벌기 어렵다"며 스포츠 시장의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개인의 노력이나 성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시장의 한계를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장 인프라가 만드는 절대적 차이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개별 선수의 능력 차이가 아니라, 각 스포츠가 가진 시장 인프라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NFL은 연간 187억 달러, NBA는 109억 달러의 총 수익을 올리는 반면, 국제배구연맹(FIVB)의 연간 총 수익은 고작 2,500만 유로, 즉 약 2,7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시장 규모 자체가 70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개별 선수가 받을 수 있는 몫에도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4대 스포츠 리그는 모두 강력한 미디어 권리 계약, 스폰서십 시스템, 상품화 전략을 가지고 있다. NFL의 경우 각 팀이 평균 4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이 중 상당 부분이 선수들에게 분배된다. 반면 배구는 이런 수익 분배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존재하지 않는 수익을 나눠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이 가능한 스킬, 전이 불가능한 시장


김연경 선수가 가진 핵심 역량들을 분석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전략적 사고력, 순간 판단력, 리더십, 압박 상황에서의 멘탈 관리, 팀워크 등은 어떤 스포츠에서도, 심지어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보편적 역량들이다. 만약 그녀가 농구나 축구를 선택했다면, 혹은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개인의 역량은 충분히 전이 가능하지만,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의 크기는 전이되지 않는다. 배구에서 쌓은 명성과 실력이 다른 시장에서 그대로 인정받기는 어렵고, 각 시장마다 고유한 수익 구조와 한계가 존재한다.


창업자들이 놓치기 쉬운 진실


김연경 선수의 사례는 창업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많은 창업자들이 자신의 역량 개발이나 제품 완성도에만 집중하지만, 정작 어떤 시장에서 플레이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김연경 선수처럼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더라도, 시장 자체의 한계로 인해 성과의 상한선이 정해져 버릴 수 있다.


이는 비단 스포츠 분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 스타트업에서도, 서비스업에서도, 제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뛰어난 창업자라도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의 크기를 넘어설 수는 없다. 개인의 노력은 시장이 정한 천장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시장 선택의 전략적 중요성


김연경 선수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핵심은 시장 선택의 전략적 중요성이다. 그녀는 배구라는 종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냈지만, 그 종목 자체가 가진 경제적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창업자들도 자신이 선택한 시장이 제공할 수 있는 기회의 크기를 명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작은 시장을 무조건 피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작은 시장에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때로는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서 더 큰 시장으로 확장하는 것이 올바른 전략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시장의 특성과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맞는 현실적인 목표와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김연경 선수는 배구라는 시장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창업자라면 때로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의 크기가 자신의 목표와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릴 용기도 필요하다.


결국 "어디서 플레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플레이할 것인가"라는 질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 김연경 선수의 역설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2장: 같은 창업가, 다른 시장, 천 배의 차이


일론 머스크만큼 시장 선택의 위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창업자는 없을 것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시장에서 창업한 결과가 어떻게 천 배 이상의 가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의 사례는 시장의 힘을 가장 명확하게 증명한다.


동일한 창업자, 동일한 핵심 역량


일론 머스크가 PayPal, Tesla, SpaceX에서 보여준 핵심 역량들을 분석해보면 놀랍도록 일관성이 있다. 복잡한 시스템을 단순화하는 능력, 장기적 비전 설정과 실행력, 기존 산업의 비효율성을 파악하는 통찰력,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핵심에 집중하는 전략적 사고 등이다. 이런 역량들은 어떤 사업을 하든 공통적으로 발휘되는 그의 기본기였다.


PayPal에서는 복잡한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들었고, Tesla에서는 전기차 기술의 통합과 최적화에 집중했으며, SpaceX에서는 우주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재사용 로켓 기술을 개발했다. 접근 방식과 해결하는 문제의 본질은 동일했다. 기존 산업의 근본적 비효율성을 파악하고, 기술적 혁신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시장이 만든 극적인 가치 차이


하지만 같은 창업자가 만들어낸 결과는 시장에 따라 극적으로 달랐다. PayPal은 2002년 eBay에 15억 달러에 인수되었고, 머스크의 지분은 약 1억 7,500만 달러였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성공이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Tesla는 2025년 현재 시가총액이 약 8,000억 달러에 달한다. 머스크가 보유한 지분을 고려하면 그의 Tesla 관련 자산 가치만 2,000억 달러를 넘어선다. PayPal 수익의 1,000배가 넘는 규모다. SpaceX 역시 2024년 기준 기업 가치 2,100억 달러로 평가받고 있으며, 머스크의 지분 가치는 약 800억 달러에 달한다.


단순 계산해보면, 머스크가 Tesla와 SpaceX에서 창출한 개인 자산은 PayPal에서 얻은 수익의 약 1,600배에 달한다. 같은 사람, 같은 핵심 역량, 하지만 시장 선택에 따라 1,600배의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온라인 결제 vs 전기차 vs 우주산업의 시장 규모


이런 극적인 차이는 각 시장의 근본적인 특성에서 비롯된다. PayPal이 진출한 온라인 결제 시장은 2000년대 초반 기준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였다. 물론 지금은 수조 달러 시장으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상대적으로 작은 틈새 시장이었다.


반면 Tesla가 목표로 한 자동차 시장은 연간 2조 5,000억 달러 규모의 거대 시장이다.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연간 9,000만 대를 넘고, 여기에 자율주행, 에너지 저장, 인프라 사업까지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진다. Tesla는 단순히 전기차 회사가 아니라 모빌리티와 에너지의 미래를 재정의하는 회사로 평가받으면서 프리미엄을 인정받았다.


SpaceX가 진출한 우주산업은 더욱 흥미롭다. 2002년 SpaceX 창립 당시 상업 우주발사 시장은 연간 20억 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이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할 것을 예측했고, 실제로 2024년 현재 글로벌 우주경제는 4,69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위성 발사, 우주 관광, 화성 이주까지 포함하면 잠재 시장 규모는 수조 달러에 달한다.


시장 성장성과 진입 타이밍의 절묘한 조합


머스크의 성공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큰 시장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시장에 적절한 타이밍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PayPal은 인터넷 상거래 초기 단계에서 필수 인프라를 제공했고, Tesla는 환경 규제 강화와 배터리 기술 발전이라는 메가트렌드를 정확히 포착했으며, SpaceX는 정부 독점이던 우주산업이 민간에 개방되는 시점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Tesla의 경우는 시장 선택의 전략적 통찰력이 돋보인다. 2003년 Tesla 창립 당시 전기차는 골프카트 수준의 저성능 차량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머스크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성능이 우수할 수 있다는 점을 간파했고, 럭셔리 스포츠카 시장부터 진입해 점차 대중 시장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작은 틈새에서 시작해 거대 시장을 재정의하는 전형적인 성공 패턴이었다.


네트워크 효과와 수익성의 차이


각 시장의 수익성 구조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PayPal은 거래 수수료 모델로 매출은 예측 가능하지만 성장성에 한계가 있었다. 결제 한 건당 수익이 정해져 있고, 규모의 경제는 있지만 수익성 개선에는 한계가 있는 구조였다.


Tesla는 완전히 다른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동차 판매, 배터리 기술 라이선싱, 충전 인프라 운영,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심지어 에너지 저장 솔루션까지 다각화된 수익원을 확보했다. 특히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부문은 마진이 90%에 달해 전체 수익성을 크게 개선했다.


SpaceX는 더욱 독특한 구조다. 발사 서비스는 기본 수익원이지만, 여기에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Starlink가 더해지면서 경상 수익 모델을 구축했다. 한 번 위성을 발사하면 지속적인 구독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로, 전통적인 발사 서비스업과는 완전히 다른 수익성을 보여준다.


첫 번째 성공이 만든 선순환


흥미로운 점은 PayPal에서의 첫 성공이 Tesla와 SpaceX에서의 더 큰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되었다는 것이다. PayPal 매각으로 얻은 1억 7,500만 달러 중 1억 달러를 SpaceX에, 7,000만 달러를 Tesla에 투자했다. 만약 PayPal이 실패했다면, 혹은 더 작은 수익을 냈다면 후속 투자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1,600배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결정적인 차이는 각 시장이 제공하는 성장 잠재력과 가치 창출 메커니즘의 차이에 있다. 온라인 결제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개선이었지만, 전기차와 우주산업은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이었다. 시장이 평가하는 가치의 크기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다른 창업자들의 유사한 패턴


이런 패턴은 머스크만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1990년대 초 헤지펀드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지만, 인터넷 상거래라는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아마존을 창립했다. 월스트리트에서의 성공은 연간 수백만 달러 수준이었지만, 아마존에서의 성공은 수천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만들어냈다.


마크 저커버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버드에서 만든 여러 프로젝트들은 캠퍼스 내에서만 인기를 끌었지만, 페이스북은 글로벌 소셜네트워크 시장이라는 거대한 기회를 포착하면서 수천억 달러 기업이 되었다. 같은 프로그래밍 실력과 제품 감각이지만, 시장 선택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창업자가 놓치기 쉬운 함정


많은 창업자들이 범하는 실수는 자신의 역량 개발에만 집중하고 시장 선택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시장이 알아줄 것이다"라는 생각은 위험한 착각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시장이 작거나 성장성이 없다면 큰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다른 함정은 현재 시장 규모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Tesla와 SpaceX의 사례에서 보듯이, 중요한 것은 현재 시장 규모가 아니라 미래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다. 머스크는 전기차와 우주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을 예측하고 일찍 진입했기 때문에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시장 선택의 전략적 프레임워크


머스크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시장 선택 원칙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크기보다는 성장 잠재력을 보라. 둘째, 단순한 개선이 아닌 패러다임 전환을 노려라. 셋째, 여러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을 선택하라. 넷째, 네트워크 효과나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시장인지 확인하라.


마지막으로, 첫 번째 성공을 더 큰 기회를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라는 점이다. PayPal의 성공이 Tesla와 SpaceX 투자를 가능하게 했듯이, 작은 성공을 통해 얻은 자원과 신뢰를 더 큰 시장에서의 도전에 활용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결론: 시장이 만든 천 배의 차이


일론 머스크의 사례는 시장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같은 창업자가 같은 역량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시장에 따라 1,600배의 가치 차이가 발생했다. 이는 개인의 노력이나 실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시장 자체의 힘을 증명한다.


창업자라면 자신의 역량 개발만큼이나 시장 선택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어떤 시장에서 플레이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어떻게 플레이할 것인지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머스크가 보여준 가장 큰 교훈이다.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의 크기가 개인이 달성할 수 있는 성과의 상한선을 결정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하는 창업자의 첫 번째 조건일 것이다.


3장: TAM의 함정 - VC가 보는 시장 규모의 진실


창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용어가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이다. 투자 유치를 위한 피치덱에서 빠지지 않는 필수 슬라이드이고, VC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표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TAM의 진짜 의미와 VC들이 실제로 보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VC들의 냉혹한 최소 기준


실리콘밸리의 주요 VC들이 요구하는 최소 TAM 기준을 살펴보면 창업자들이 얼마나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Sequoia Capital 같은 톱티어 VC는 투자를 고려하는 최소 TAM을 100억 달러로 설정한다. 그것도 현재 시장 규모가 아니라 5년 후 예상 시장 규모 기준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실제로는 훨씬 더 큰 시장만 관심 있다는 점이다.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이 될 가능성은 TAM이 1,000억 달러 이상인 시장에서 5배 더 높다는 통계가 있다. 즉, VC들이 말하는 "큰 시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한국의 대부분 창업자들이 목표로 하는 수십억 원, 수백억 원 규모의 시장은 글로벌 VC 기준으로는 아예 관심 대상이 아니다. 이것이 한국 스타트업들이 해외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다.


스타트업 실패의 진짜 원인


CB Insights가 분석한 스타트업 실패 원인을 보면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위는 "No Market Need"로 42%를 차지한다. 제품이 나쁘거나 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시장이 존재하지 않거나 너무 작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많은 스타트업들이 TAM을 잘못 계산하거나 과대평가한다는 문제가 드러난다. "한국 전체 음식배달 시장이 20조 원이니까 우리가 1%만 차지해도 2,000억 원이다"라는 식의 계산은 전형적인 TAM 함정이다. 실제로는 자신들이 접근할 수 있는 SAM(Serviceable Addressable Market)과 SOM(Serviceable Obtainable Market)이 훨씬 작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한 푸드테크 스타트업이 "음식배달 시장 20조 원" 중 자신들의 타겟인 "건강식 배달 시장"은 실제로는 5,000억 원 정도이고, 그 중에서도 자신들이 서비스하는 지역과 고객층을 고려하면 실제 시장은 500억 원에 불과할 수 있다. TAM과 실제 시장의 200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성공 기업들의 TAM 확장 전략


그렇다면 성공한 기업들은 TAM을 어떻게 접근했을까?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들은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TAM을 확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ServiceNow의 사례를 보자. 이 회사는 2012년 IPO 당시 IT 서비스 관리라는 비교적 작은 틈새 시장을 대상으로 했다. 당시 TAM은 140억 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기존 시장을 점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플랫폼을 확장해 HR, 보안, 고객 서비스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2024년 현재 ServiceNow가 정의하는 TAM은 1,750억 달러에 달한다. 12년 만에 TAM을 12배 확장한 것이다.


Uber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다. 초기에는 "고급 택시 호출 서비스"라는 작은 틈새에서 시작했다. 당시 예상 TAM은 전 세계적으로 100억 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Uber는 일반 승용차 공유, 음식 배달, 화물 운송, 자율주행까지 확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현재 Uber가 정의하는 TAM은 5조 달러를 넘는다.


TAM 계산의 흔한 실수들


많은 창업자들이 범하는 TAM 계산 실수를 분석해보면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첫 번째는 "Top-down" 방식의 남용이다. "전체 시장 규모에서 우리가 몇 %를 차지할 것이다"라는 접근법은 직관적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실제로는 "Bottom-up" 방식으로 "우리 제품을 구매할 고객이 몇 명이고, 각각 얼마를 지불할 것인가"를 계산하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


두 번째는 시장의 이질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이 5조 달러"라고 해서 모든 지역, 모든 카테고리에서 동일한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지역별, 카테고리별로 경쟁 강도, 고객 행동, 규제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


세 번째는 현재 시장만 고려하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들은 대부분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iPhone 이전에 "스마트폰 시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Netflix 이전에 "스트리밍 시장"도 명확하지 않았다.


작은 시장에서 시작하는 전략적 이유


역설적이게도, 가장 성공한 기업들은 대부분 작은 시장에서 시작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작은 시장에서 시작하는 것의 장점은 명확하다.


첫째, 적은 자원으로도 시장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큰 시장에서 1%를 차지하는 것보다 작은 시장에서 50%를 차지하는 것이 훨씬 쉽고 안전하다.


둘째, 고객과의 밀접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작은 시장에서는 모든 고객을 직접 만날 수 있고, 그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제품을 개선할 수 있다.


셋째, 경쟁자들의 관심을 받지 않는다. 대기업들은 작은 시장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제품과 조직을 성장시킬 수 있다.


페이스북이 하버드에서 시작해서 아이비리그, 전체 대학, 고등학교, 일반인 순으로 확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처음부터 "전 세계 소셜네트워크"를 목표로 했다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들과 정면 충돌했을 것이다.


한국 시장의 TAM 딜레마


한국 창업자들이 직면하는 특별한 딜레마가 있다. 한국 시장은 많은 분야에서 충분히 크지만, 글로벌 스탠다드로는 작다고 여겨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이커머스 시장은 연간 200조 원 규모로 세계 5위 수준이다. 한국 창업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큰 시장이지만, 실리콘밸리 VC들은 "Korea-only"라는 제약 때문에 투자를 꺼린다. 반면 동남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를 타겟으로 하는 스타트업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투자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창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한국에서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글로벌 확장하는 것이다. 쿠팡이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후 일본, 싱가포르로 확장하고 있다.


둘째, 처음부터 글로벌을 타겟으로 하되 한국을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은 IT 인프라가 발달하고 얼리어답터가 많아서 글로벌 서비스의 검증 시장으로 활용하기 좋다.


셋째, 한국의 특수성을 활용해 다른 시장에 없는 독특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K-뷰티, K-콘텐츠처럼 한국만의 특색을 살린 사업 모델이 대표적이다.


VC들이 진짜 보는 것


VC들이 TAM을 볼 때 실제로 평가하는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시장에 대한 창업자의 이해도와 확장 가능성이다. 단순히 "시장이 크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왜 이 시장이 지금 성장하고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이 시장을 확장할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Lightspeed Venture Partners의 파트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TAM 숫자보다는 창업자가 시장을 어떻게 정의하고 확장해 나갈 것인지를 본다. 가장 성공한 기업들은 모두 기존 시장의 경계를 재정의했다."


실제로 성공한 스타트업들의 초기 피치덱을 보면, 현재 시장 규모보다는 시장 변화의 동력과 자신들의 시장 확장 전략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Airbnb는 "호텔 시장"이 아니라 "여행 중 숙박 경험 시장"을 정의했고, Netflix는 "DVD 렌탈 시장"이 아니라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재정의했다.


TAM 확장의 실전 전략


그렇다면 창업자들은 TAM을 어떻게 확장해야 할까? 성공한 기업들의 패턴을 분석하면 몇 가지 전략이 보인다.


첫째, 인접 시장으로의 확장이다. 아마존이 책에서 시작해서 모든 상품으로 확장한 것, 애플이 컴퓨터에서 음악 플레이어,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확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핵심은 기존 고객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인접 영역을 찾는 것이다.


둘째, 플랫폼화 전략이다.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 제공자에서 플랫폼 운영자로 진화하면 TAM이 급격히 확장된다. 우버가 택시 호출에서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페이스북이 대학생 네트워크에서 글로벌 소셜 플랫폼으로 확장한 것이 예시다.


셋째, 수직 통합 전략이다. 테슬라가 전기차 제조에서 배터리, 충전 인프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에너지 저장까지 확장한 것처럼, 가치 사슬 전체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TAM을 확장할 수 있다.


결론: TAM은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TAM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이것이 고정된 숫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TAM은 창업자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들은 모두 기존 시장의 경계를 재정의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창업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VC들이 현재의 TAM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정말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창업자가 시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떻게 확장해 나갈 계획인지다.


TAM은 창업의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작은 시장에서 시작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전략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VC들이 찾는 진짜 기회인 것이다.


4장: 시장 확장의 기술 - 아마존과 테슬라가 보여준 전략


많은 창업자들이 큰 시장을 노리다가 실패하는 반면, 세계적인 기업들은 대부분 작은 틈새에서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시장을 확장했다. 아마존과 테슬라는 이런 시장 확장 전략의 교과서적 사례다. 두 회사가 어떻게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서 수조 원 규모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는지 분석해보면, 시장 확장의 핵심 원칙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존의 단계별 시장 확장: 책에서 모든 것으로


1994년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창립할 때 선택한 첫 번째 시장은 온라인 서점이었다. 당시 미국 도서 시장은 연간 250억 달러 규모였고, 그 중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도 되지 않았다. 즉, 실제 TAM은 2억 5,0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작은 시장이었다.


하지만 베조스가 책을 선택한 이유는 치밀했다. 책은 표준화된 상품이어서 온라인 판매에 적합했고, 재고 관리가 상대적으로 쉬웠으며, 무엇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불가능한 "무한 진열공간"이라는 차별화 포인트를 제공할 수 있었다. 물리적 서점은 3만 권 정도의 책만 진열할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300만 권도 가능했다.


1단계에서 성공을 거둔 아마존은 2단계로 음악 CD와 DVD로 확장했다. 이는 책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인접 시장이었다. 표준화된 상품, 긴 유통기한, 높은 검색 빈도 등 기존 역량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3단계에서는 전자제품, 장난감, 생활용품 등으로 대폭 확장했다. 이때부터 아마존은 단순한 온라인 서점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비전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아마존의 매출은 연간 40억 달러를 넘어섰다.


4단계는 더욱 혁신적이었다. 아마존은 자신들이 구축한 IT 인프라를 외부에 서비스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AWS(Amazon Web Services)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것으로, 현재 AWS는 아마존 전체 영업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사업이 되었다.


5단계에서는 물리적 소매업에도 진출했다. 2017년 홀푸드를 137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오프라인 식료품 시장에 본격 진출했고, 아마존 고(Amazon Go) 같은 무인매장으로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시했다.


아마존 확장 전략의 핵심 원칙


아마존의 시장 확장에는 몇 가지 일관된 원칙이 있다. 첫째는 '고객 중심'이다.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할 때마다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단순히 시장이 크다고 해서 진출하지 않았다.


둘째는 기존 역량의 활용이다. 아마존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기존에 구축한 물류, 기술, 고객 데이터 등의 자산을 최대한 활용했다. 완전히 새로운 영역보다는 기존 역량을 확장할 수 있는 인접 시장을 우선적으로 공략했다.


셋째는 장기적 관점이다. 아마존은 초기에 수익성보다는 시장 점유율 확대에 집중했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시장 지배력을 먼저 확보했다. 이는 베조스의 "Day 1" 철학, 즉 아직 시작 단계라는 마인드셋에서 비롯된 전략이었다.


테슬라의 하향식 시장 접근: 럭셔리에서 대중으로


테슬라의 시장 확장 전략은 아마존과는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일론 머스크는 처음부터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으로의 세계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거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행은 매우 단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2008년 테슬라의 첫 번째 양산차인 로드스터는 10만 달러가 넘는 초고가 스포츠카였다. 당시 전기차에 대한 인식은 "골프카트 수준의 저성능 차량"이었는데, 테슬라는 오히려 가장 고성능, 고가격 세그먼트를 공략했다. 이는 전기차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전략이었다.


로드스터의 성공으로 기술력을 입증한 테슬라는 2012년 모델 S를 출시했다. 가격은 7만 달러 수준으로 여전히 프리미엄 세그먼트였지만, 럭셔리 세단 시장이라는 더 큰 시장을 공략했다. 모델 S는 전기차 최초로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로 선정되며 기술적 우위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2017년 출시된 모델 3는 테슬라의 게임체인저였다. 3만 5,000달러라는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대중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출시 전 예약 주문만 50만 대를 넘어서며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2020년 모델 Y로 SUV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의 절대강자로 자리잡았다. 현재 테슬라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 20% 이상을 차지하며, 전체 자동차 회사 중 시가총액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테슬라 전략의 핵심: 기술 우위 확보 후 대중화


테슬라의 하향식 접근 전략에는 명확한 논리가 있었다. 첫째, 프리미엄 시장에서 먼저 기술력을 입증해야 했다.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려면 최고 성능의 제품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 높은 마진을 통해 R&D 투자 자금을 확보했다. 로드스터와 모델 S에서 얻은 수익을 배터리 기술 개발과 생산 설비 구축에 재투자했다. 이는 후발주자가 기존 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한 필수 전략이었다.


셋째, 점진적 비용 절감을 통해 대중 시장 진입 시점을 조절했다. 배터리 비용이 kWh당 1,000달러에서 100달러 수준까지 떨어지는 동안 계속해서 프리미엄 시장에 머물렀다가, 적절한 시점에 대중 시장으로 진입했다.


두 전략의 공통점: 핵심 역량 구축과 활용


아마존과 테슬라의 접근법은 다르지만 공통된 원칙들이 있다. 첫째, 둘 다 첫 번째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확보한 후 확장했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에서, 테슬라는 프리미엄 전기차에서 1위 자리를 굳건히 한 후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둘째, 핵심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 확장했다. 아마존은 물류와 고객 데이터 분석 역량을, 테슬라는 배터리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계속 발전시켰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이런 핵심 역량이 경쟁 우위의 원천이 되었다.


셋째, 장기적 비전 하에서 단계적으로 실행했다. 베조스의 "지구상에서 가장 고객 중심적인 회사"와 머스크의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으로의 전환"이라는 비전은 처음부터 명확했지만, 실행은 매우 현실적이고 단계적이었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


아마존과 테슬라의 사례에서 한국 창업자들이 배울 수 있는 실전 교훈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작은 시장에서 시작하되 확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작정 큰 시장을 노리기보다는 자신이 지배할 수 있는 작은 영역에서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시장을 선택할 때 확장 가능성을 미리 고려하는 것이다.


둘째, 핵심 역량을 명확히 정의하고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시장을 확장할 때마다 새로운 역량을 처음부터 구축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기존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인접 시장부터 공략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인다.


셋째, 타이밍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테슬라처럼 기술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절한 시점에 대중 시장으로 확장하거나, 아마존처럼 시장 상황에 맞춰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는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다.


시장 확장의 일반적 패턴들


성공한 기업들의 시장 확장 패턴을 분석하면 몇 가지 공통된 접근법을 발견할 수 있다.


수직 확장(Vertical Expansion)은 같은 고객에게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애플이 컴퓨터 고객에게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제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수평 확장(Horizontal Expansion)은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고객 세그먼트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페이스북이 대학생에서 일반인으로 확장한 것이 예시다.


지역 확장(Geographic Expansion)은 같은 사업 모델을 다른 지역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우버나 에어비앤비가 전 세계로 확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플랫폼 확장(Platform Expansion)은 자신들의 플랫폼을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방식이다. 아마존의 AWS나 알리바바의 핀테크 사업이 이에 해당한다.


실패하는 확장 전략의 특징


반대로 실패하는 시장 확장에도 공통된 패턴이 있다. 첫째는 너무 성급한 확장이다. 첫 번째 시장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하기 전에 성급하게 다른 시장으로 확장하다가 모든 것을 잃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핵심 역량과 관련 없는 확장이다.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없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면 성공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자신의 강점을 활용할 수 없는 시장에서는 기존 플레이어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시장 상황을 무시한 확장이다.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거나, 규제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거나, 고객의 니즈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확장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결론: 시장 확장은 과학이다


아마존과 테슬라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성공적인 시장 확장은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의 결과다. 두 회사 모두 작은 시장에서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거대한 비전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실행했다.


창업자들이 기억해야 할 핵심은 시장 확장이 단순히 '더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아마존이 AWS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고, 테슬라가 전기차의 인식을 바꿔놓은 것처럼, 진정한 시장 확장은 기존 시장의 경계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작은 시장에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작은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거기서 축적한 역량과 자원을 바탕으로 더 큰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시장 확장의 기술을 제대로 익힌다면, 작은 틈새에서 시작해서도 세계를 바꾸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5장: 타이밍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창업자들이 가장 간과하기 쉬운 요소가 바로 타이밍이다. 뛰어난 아이디어, 훌륭한 팀, 충분한 자금이 있어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실패한다. 반대로 평범한 아이디어라도 완벽한 타이밍을 만나면 대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창업 생태계의 가장 잔혹한 진실 중 하나다.


Bill Gross의 충격적인 연구 결과


Idealab의 창립자이자 CEO인 Bill Gross는 창업 성공 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대규모 연구를 진행했다. 200개 이상의 회사를 대상으로 5가지 요인을 분석한 결과는 창업계의 통념을 뒤엎는 것이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타트업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타이밍으로 42%를 차지했다. 그 다음이 팀과 실행력으로 32%, 아이디어가 28%, 비즈니스 모델이 24%, 자금이 14%였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디어는 3위에 불과했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업계획서나 비즈니스 모델은 4위였다.


더 놀라운 것은 실패한 스타트업들을 분석했을 때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뛰어난 팀, 혁신적인 아이디어, 충분한 자금을 가졌음에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실패한 사례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성공한 회사들은 완벽하지 않은 아이디어나 팀이었어도 시장 타이밍을 정확히 포착한 경우가 많았다.


이 연구는 창업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다듬거나 팀을 구성하는 것만큼이나, 언제 시장에 진입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Webvan vs Instacart: 같은 아이디어, 다른 시대


타이밍의 중요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Webvan과 Instacart의 대조다. 두 회사는 본질적으로 같은 아이디어를 추구했다.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하면 집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하지만 진출 시기가 달랐고, 그 결과는 천지차이였다.


Webvan은 1999년 설립되어 닷컴 붐의 절정기에 주목받았다. Goldman Sachs, Sequoia Capital 같은 최고 수준의 투자자들로부터 8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받았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였다. 창립자와 팀 역시 아마존 출신의 검증된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Webvan은 2001년 파산했다. 8억 달러를 모두 태우고 3,000명의 직원을 해고하며 닷컴 버블 최대 실패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실패 원인은 명확했다. 2000년 당시 온라인 쇼핑 인프라가 성숙하지 않았고, 고객들은 아직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배송 비용이 너무 높아서 수익성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기 어려웠다.


반면 Instacart는 2012년에 설립되었다. Webvan과 정확히 같은 아이디어였지만, 시장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어 모바일 주문이 쉬워졌고, 우버와 같은 on-demand 서비스에 익숙한 고객들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개인 쇼퍼(Personal Shopper) 모델을 도입해 자체 물류 인프라 구축 없이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Instacart는 현재 기업 가치 390억 달러로 평가받으며 북미 최대의 식료품 배송 서비스로 성장했다. 같은 아이디어, 비슷한 수준의 창업자와 투자자, 하지만 13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COVID-19가 만든 완벽한 타이밍


2020년 COVID-19 팬데믹은 많은 기업들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원격 근무, 온라인 교육, 비대면 서비스 관련 기업들은 하루아침에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Zoom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9년까지 Zoom은 나름 성공한 B2B 화상회의 솔루션이었지만, 특별히 주목받는 회사는 아니었다. 일일 사용자 수는 약 1,000만 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2020년 4월 일일 사용자 수가 3억 명을 넘어섰다. 30배 성장이었다.


Zoom의 성공은 단순히 사용자 증가에 그치지 않았다. 주식 가격은 2020년 한 해 동안 396% 상승했고, 시가총액은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CEO인 에릭 위안의 개인 자산은 170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Zoom이 갑자기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시장 상황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원격의료 분야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Teladoc, Amwell 같은 원격의료 회사들은 수년간 규제 장벽과 고객 저항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대면 진료가 어려워지자 정부가 원격의료 규제를 완화했고, 환자들도 필요에 의해 원격 진료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Teladoc의 2020년 매출은 전년 대비 98% 증가했다.


교육 분야의 Coursera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신규 등록자가 7,100만 명으로 전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온라인 교육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읽는 신호들


그렇다면 올바른 타이밍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성공한 창업자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신호들을 분석하면 몇 가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기술 성숙도가 첫 번째 신호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모바일 앱 기반 서비스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클라우드 컴퓨팅이 성숙하면서 SaaS 기업들이 급성장했다. 테슬라도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 시점에 전기차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규제 환경 변화도 중요한 신호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기존 규제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성장했고, 핀테크 기업들은 금융 규제 완화와 함께 급성장했다. 한국의 경우 규제 샌드박스 도입으로 많은 혁신 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고객 행동 변화도 중요한 타이밍 지표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구독 경제, 공유 경제 기업들이 성장했다. Z세대의 등장과 함께 틱톡 같은 숏폼 콘텐츠 플랫폼이 급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타이밍을 놓친 기업들의 공통점


반대로 타이밍을 놓쳐서 실패한 기업들도 많다. 이들의 공통점을 분석하면 올바른 타이밍 판단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너무 이른 진입이 첫 번째 실패 패턴이다. Webvan 외에도 1990년대 말 온라인 식료품 배송을 시도한 HomeGrocer, PeaPod 등이 모두 실패했다. 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객 교육비용과 인프라 구축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Segway도 대표적인 조기 진입 실패 사례다. 2001년 출시 당시 "교통의 혁명"이라고 불렸지만, 높은 가격(5,000달러), 무거운 무게(47kg), 복잡한 규제 문제로 인해 대중화에 실패했다. 20년 후 전동 킥보드가 대중화된 것을 보면 아이디어 자체는 옳았지만 타이밍이 너무 빨랐다.


너무 늦은 진입도 문제다. Google+는 2011년 출시되었지만 이미 페이스북이 시장을 장악한 후였다. 아무리 구글의 기술력과 자원을 동원해도 늦은 타이밍을 극복할 수 없었다. Clubhouse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팬데믹 초기에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기존 플랫폼들이 유사한 기능을 빠르게 도입하면서 경쟁 우위를 잃었다.


선발자 vs 추종자의 딜레마


타이밍과 관련해서 창업자들이 자주 고민하는 것이 선발자 우위(First-Mover Advantage)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예상과 다르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연구에 따르면, 500개 기업과 50개 제품군을 분석한 결과 선발자의 실패율이 47%인 반면,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의 실패율은 8%에 불과했다.


이는 선발자가 시장 교육비용과 기술 개발비용을 부담하는 반면, 추종자들은 이미 검증된 시장에서 더 나은 제품으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야후와 알타비스타를 제쳤고, 페이스북이 마이스페이스를 제쳤으며, 아이폰이 블랙베리를 제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 늦게 진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했을 때 더 나은 솔루션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너무 일찍 들어가서 시장 교육비용을 감당하거나, 너무 늦게 들어가서 기회를 놓치거나 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한국 시장의 타이밍 특성


한국은 기술 수용 속도가 빠른 시장으로 유명하다. 스마트폰 보급률, 인터넷 속도, 온라인 결제 사용률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글로벌 서비스의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특유의 타이밍 함정도 있다. 한국에서 성공한 서비스가 해외에서는 시기상조일 수 있고, 반대로 해외에서 검증된 모델이 한국에는 너무 늦을 수 있다. 카카오택시는 우버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한국 시장 특성에 맞춰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고, 반대로 많은 한국 서비스들이 동남아시아나 미국 진출에서 타이밍을 놓쳐 실패했다.


타이밍 판단을 위한 실전 가이드


창업자들이 올바른 타이밍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봐야 한다.


첫째, 우리 서비스가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이 충족되었는가? 기술적 인프라, 고객 행동 변화, 규제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둘째, 시장이 우리 솔루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고객 교육비용이 너무 크거나, 기존 습관을 바꾸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타이밍이 이르다는 신호일 수 있다.


셋째, 경쟁자들의 움직임은 어떤가? 너무 많은 플레이어가 동시에 뛰어들고 있다면 이미 늦었을 수 있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면 너무 이를 수 있다.


넷째, 외부 환경 변화가 우리에게 유리한가? 팬데믹, 규제 변화, 기술 발전 등 외부 요인들이 우리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해야 한다.


결론: 타이밍은 운이 아니라 전략이다


많은 창업자들이 타이밍을 운의 영역으로 치부하지만, 실제로는 전략적 사고와 철저한 시장 분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다. Bill Gross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타이밍은 창업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성공한 창업자들은 시장의 신호를 정확히 읽고, 적절한 시점에 진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와 우주산업에 진출한 시기,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대학에서 일반인으로 확장한 시기, 제프 베조스가 AWS를 시작한 시기 모두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분석의 결과였다.


창업자라면 아이디어를 다듬고 팀을 구성하는 것만큼이나 언제 시장에 진입할 것인지에 대해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완벽한 타이밍을 포착한다면, 평범한 아이디어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반대로 타이밍을 놓친다면,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와 팀을 가져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시장이 준비되었을 때, 바로 그때가 창업자에게 주어진 기회의 창이 열리는 순간이다.


6장: 블루오션 vs 레드오션 - 어디서 싸울 것인가


창업자들이 직면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선택 중 하나는 "어디서 경쟁할 것인가"다. 기존 플레이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에 뛰어들 것인가, 아니면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인가. 이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략의 핵심이다.


블루오션 전략의 탄생 배경


블루오션 전략은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김위찬과 르네 마보안 교수가 2005년 제시한 개념이다. 기존의 경쟁 시장을 '레드오션(Red Ocean)'으로,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블루오션(Blue Ocean)'으로 명명했다. 레드오션은 경쟁자들의 피로 물든 바다, 블루오션은 아무도 항해하지 않은 푸른 바다라는 의미다.


두 교수는 30개 산업의 150개 전략적 행동을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운 시장 공간을 창조한 블루오션 전략이 전체 전략의 14%에 불과했지만, 수익과 성장 측면에서는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레드오션에서의 점진적 개선보다 블루오션에서의 혁신이 훨씬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가 발표된 후 많은 기업들이 블루오션 전략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공한 블루오션 사례들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실행력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태양의 서커스: 전통 서커스의 경계를 허문 혁신


블루오션 전략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다. 1984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이 회사는 전통적인 서커스 산업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당시 서커스 산업은 전형적인 레드오션이었다. 링글링 브라더스(Ringling Bros.)를 비롯한 전통 서커스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고, 산업 전체가 쇠퇴하고 있었다. 동물 보호 단체의 반발, 높은 운영비용, 변화하는 고객 취향 등으로 서커스는 이미 '죽어가는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태양의 서커스는 기존 서커스의 관념을 뒤엎었다. 전통 서커스의 핵심 요소들을 과감히 제거했다. 동물 공연을 없애고, 스타 연기자 개념을 축소했으며, 3개 링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복잡한 공연 대신 하나의 무대에 집중했다. 대신 연극적 스토리라인, 예술적 안무, 라이브 음악, 화려한 의상과 무대 등 극장의 요소들을 대폭 도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서커스도 아니고 연극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가 탄생한 것이다. 기존 서커스가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했다면, 태양의 서커스는 성인까지 아우르는 더 넓은 고객층을 확보했다. 티켓 가격도 기존 서커스의 3-4배 수준으로 책정할 수 있었다.


태양의 서커스는 현재 전 세계 50개 이상 도시에서 공연하며, 연간 1,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다. 연매출 1조 원을 넘어서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독특한 성공 사례가 되었다. 쇠퇴하는 서커스 산업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낸 것이다.


닌텐도 Wii: 게임기 성능 경쟁에서 벗어난 파괴적 혁신


게임기 시장에서 벌어진 닌텐도 Wii의 성공도 블루오션 전략의 교과서적 사례다. 2006년 Wii 출시 당시 게임기 시장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가 치열한 성능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더 좋은 그래픽, 더 빠른 프로세서, 더 많은 기능을 앞세운 레드오션 경쟁이었다.


닌텐도는 이런 성능 경쟁에서 뒤처져 있었다. Wii의 그래픽 성능은 경쟁사 제품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닌텐도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택했다. 고사양 그래픽과 복잡한 컨트롤러를 과감히 제거하고, 대신 직관적인 모션 컨트롤과 가족 친화적인 게임 경험을 전면에 내세웠다.


Wii의 혁신은 '누가 게임을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였다. 기존 게임기가 10-30대 남성 게이머를 주 타겟으로 했다면, Wii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 경험을 제공했다. 60대 할머니도 쉽게 배울 수 있는 볼링 게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테니스 게임 등이 핵심 콘텐츠였다.


결과는 게임기 역사상 가장 놀라운 성공 중 하나였다. Wii는 전 세계적으로 1억 160만 대가 판매되어, PlayStation 3(8,740만 대)와 Xbox 360(8,580만 대)을 합친 것보다 많이 팔렸다. 성능으로는 뒤처졌지만, 새로운 시장을 창조함으로써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닌텐도의 전략은 단순히 기술적 혁신이 아니었다. 게임 산업의 경계를 재정의하고, 새로운 고객층을 발굴하며, 완전히 다른 가치 제안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블루오션 전략의 핵심이다.


블루오션 창조의 4가지 원칙


성공한 블루오션 사례들을 분석하면 공통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김위찬과 르네 마보안 교수가 제시한 '제거-축소-증대-창조' 프레임워크가 그것이다.


제거(Eliminate)는 산업이 당연하게 여기는 요소들을 과감히 없애는 것이다. 태양의 서커스가 동물 공연을 제거하고, Wii가 고사양 그래픽을 제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 수 있다.


축소(Reduce)는 산업 표준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다. 태양의 서커스가 스릴과 위험 요소를 축소하고, Wii가 컨트롤러의 복잡성을 축소한 것이 예시다.


증대(Raise)는 산업 표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예술적 완성도를, Wii는 사용 편의성을 대폭 향상시켰다.


창조(Create)는 산업에서 제공된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태양의 서커스의 연극적 스토리라인, Wii의 모션 컨트롤이 대표적이다.


이 네 가지 행동을 체계적으로 실행하면 기존 시장의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 곡선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행동들이 무작위가 아니라 명확한 전략적 목적에 따라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레드오션에서 살아남는 전략


하지만 블루오션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모든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레드오션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전략들이 있다.


운영 효율성(Operational Excellence)이 첫 번째 전략이다. 월마트, 맥도날드, 아마존 등은 기존 시장에서 압도적인 비용 우위를 확보해 성공했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기존 시장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효율성을 구축한 것이다.


고객 밀착(Customer Intimacy)도 유효한 전략이다. 기존 시장에서도 고객과의 관계를 깊게 구축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면 차별화할 수 있다. 세일즈포스, 허브스팟 같은 B2B SaaS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기술 리더십(Technology Leadership)으로 차별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애플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지만, 그 후에는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유지하고 있다.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를 활용하는 전략도 있다. 기존 시장이라도 네트워크 효과가 강하게 작동하면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렵다. 페이스북, 링크드인, 우버 등이 이런 전략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한국형 블루오션의 특징


한국 기업들도 독특한 블루오션 전략을 구사한 사례들이 있다. 특히 K-뷰티, K-콘텐츠 분야에서 흥미로운 성공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K-뷰티의 경우 기존 화장품 시장의 경계를 재정의했다. 서구의 화장품이 '덮고 숨기는' 메이크업에 집중했다면, K-뷰티는 '관리하고 가꾸는' 스킨케어에 집중했다. 10단계 스킨케어 루틴, 시트마스크, BB크림 등은 완전히 새로운 뷰티 경험을 제공했다.


웹툰도 마찬가지다. 기존 만화가 종이책 기반의 페이지 넘김 방식이었다면, 웹툰은 모바일 스크롤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독서 경험을 만들어냈다. 네이버 웹툰은 이제 글로벌 웹툰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K-pop도 블루오션 전략의 성공 사례다. 서구 팝음악과 동양 문화를 융합하고, SNS와 팬덤 문화를 적극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음악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BTS, 블랙핑크 등은 이제 글로벌 차트를 석권하고 있다.


블루오션 전략의 함정들


하지만 블루오션 전략에도 함정들이 있다. 첫 번째는 시장 창조의 어려움이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은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고객 교육비용이 크고, 수익 모델을 검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두 번째는 지속가능성의 문제다. 블루오션을 창조했다고 해서 영원히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성장하면 경쟁자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을 창조했지만, 지금은 삼성, 화웨이 등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세 번째는 실행의 어려움이다. 블루오션 전략은 기존 관념을 뒤엎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 내부의 저항이 클 수 있다. 고객들도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언제 블루오션을, 언제 레드오션을 선택할 것인가


그렇다면 창업자들은 언제 블루오션을, 언제 레드오션을 선택해야 할까? 몇 가지 판단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자원과 역량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블루오션 전략은 더 많은 자원과 시간을 요구한다. 스타트업처럼 자원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기존 시장에서 틈새를 공략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시장 성숙도도 중요한 기준이다. 성숙한 시장일수록 블루오션 전략의 효과가 크다. 반대로 아직 성장 중인 시장이라면 레드오션에서도 충분한 기회가 있을 수 있다.


창업자의 성향과 팀의 역량도 고려해야 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과 창의력이 있다면 블루오션에 도전할 수 있지만, 실행력과 운영 효율성이 강점이라면 레드오션에서 승부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결론: 전략적 선택의 중요성


블루오션이냐 레드오션이냐는 단순한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DNA를 결정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태양의 서커스와 닌텐도 Wii의 성공은 새로운 시장 창조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어려움도 증명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모든 기업이 블루오션을 추구할 필요는 없고, 레드오션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핵심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맞는 역량을 구축하고, 일관성 있게 실행하는 것이다.


창업자라면 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우리는 기존 시장에서 더 잘할 수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변이 성공적인 시장 선택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7장: 한국 vs 글로벌 - 창업자의 시장 선택 딜레마


한국 창업자들이 직면하는 가장 현실적인 고민 중 하나는 "한국 시장에 집중할 것인가, 처음부터 글로벌을 노릴 것인가"다.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지만 인구 5,100만 명의 제한된 시장이기도 하다. 반면 글로벌 시장은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진입 장벽도 훨씬 높다. 성공한 한국 기업들의 서로 다른 전략을 분석해보면,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쿠팡의 한국 집중 전략: 깊이 파기의 위력


쿠팡은 한국 집중 전략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2010년 창립된 쿠팡은 초기에 소셜커머스로 시작했지만, 2014년부터 이커머스로 사업 모델을 전환하면서 한국 시장에 올인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시장은 너무 작다"고 걱정했지만, 김범석 창립자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쿠팡의 전략은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극한까지 활용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높은 인구밀도, 빠른 배송에 대한 기대, 모바일 친화적 문화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구축했다. '로켓배송'이라는 브랜드로 당일배송, 새벽배송을 구현하고, 전국에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21년 3월 NYSE에 상장할 때 쿠팡의 기업 가치는 600억 달러로 평가받았다. 이는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전자 다음으로 높은 상장 가치였다. 만약 쿠팡이 한국거래소에 상장했다면 기업 가치가 10분의 1 수준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한국 시장에 집중했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이 인정하는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쿠팡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보면 한국 집중 전략의 장점들이 명확히 드러난다. 첫째, 시장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 소비자의 성향, 경쟁사의 약점, 규제 환경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둘째,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이 가능했다. 전 세계 여러 시장을 동시에 관리할 필요가 없으니 자원을 집중하고 빠르게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었다. 로켓배송 같은 혁신적 서비스도 한국이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먼저 검증한 후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셋째, 경쟁 우위를 지속할 수 있었다. 쿠팡은 현재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25% 이상을 점유하며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다면 매출과 수익성 측면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2020년부터는 일본, 싱가포르로 서비스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검증된 역량과 축적된 자원을 활용해 해외 진출하는 전략이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우선 전략: 규모의 경제 실현


반면 삼성전자는 처음부터 글로벌을 염두에 둔 전략을 구사했다. 1970년대부터 "세계 일류"를 목표로 설정하고, 한국 시장보다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에 집중했다. 이런 전략적 선택이 오늘날 삼성전자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핵심 동력이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은 몇 가지 명확한 원칙에 기반했다. 첫째는 기술 혁신을 통한 차별화였다.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주력 사업에서 지속적으로 R&D에 투자해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한국 시장만으로는 이런 대규모 R&D 투자를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한 전략이었다.


둘째는 현지화 전략이었다. 글로벌 진출 초기에는 단순히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해외에 파는 방식이었지만, 점차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제품과 마케팅 전략을 개발했다. 인도에서는 저가형 스마트폰을, 유럽에서는 프리미엄 가전제품을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셋째는 글로벌 브랜드 구축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본격적인 글로벌 브랜딩에 나섰고, 지속적인 마케팅 투자를 통해 삼성을 세계적 브랜드로 키웠다. 현재 삼성은 인터브랜드 글로벌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전략의 결과 삼성전자는 2023년 기준 매출 279조 원 중 해외 매출이 85% 이상을 차지한다. 스마트폰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TV 16년 연속 세계 1위 등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했다.


두 전략의 장단점 비교


쿠팡과 삼성전자의 사례를 통해 한국 집중 전략과 글로벌 우선 전략의 장단점을 비교해볼 수 있다.


한국 집중 전략의 장점은 명확하다.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 빠른 실행력, 높은 시장 점유율 확보가 가능하다. 특히 한국은 IT 인프라가 발달하고 얼리어답터가 많아서 새로운 서비스를 테스트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또한 언어와 문화적 장벽이 없어 고객과의 소통이 쉽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시장 규모의 제약으로 인해 성장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Korea-only" 비즈니스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한국 시장의 특수성에 너무 맞춰지면 해외 진출 시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글로벌 우선 전략의 장점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다. 시장 규모의 제약이 없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시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학습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초기 진입 비용이 크고, 각 시장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문화적 차이, 규제 환경, 현지 경쟁사 등을 파악해야 하고, 이를 위한 인력과 자원이 필요하다. 또한 너무 많은 시장에 동시에 진출하면 자원이 분산되어 어느 시장에서도 성공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한국 시장의 독특한 특성들


한국 시장을 선택하든 글로벌을 선택하든, 한국 창업자들이 알아야 할 한국 시장의 독특한 특성들이 있다.


첫째는 기술 수용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보급률 95%, 5G 상용화 세계 1위, 온라인 쇼핑몰 이용률 세계 최고 수준 등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수용성이 매우 높다. 이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테스트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둘째는 높은 인구 밀도다.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집중되어 있어 물류, 배송, O2O 서비스 등에서 효율성을 확보하기 쉽다. 쿠팡의 로켓배송, 배달의민족의 빠른 배달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다.


셋째는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다. 작은 시장이지만 연결성이 높아서 바이럴 효과가 크다. 성공한 서비스는 빠르게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특성이 있다.


넷째는 높은 품질 기대 수준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서비스 품질에 대한 기대가 높고, 불만족 시 빠르게 이탈한다. 이는 도전적인 요소이지만, 한국에서 성공한 서비스는 다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성공적인 해외 진출 사례들


한국에서 시작해서 글로벌로 확장한 성공 사례들을 보면 몇 가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네이버 웹툰은 한국에서 웹툰이라는 새로운 콘텐츠 형식을 창조한 후, 이를 글로벌로 확장했다. 현재 네이버 웹툰은 전 세계 7,200만 명의 월간 활성 사용자를 보유하며 글로벌 웹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한국의 독특한 모바일 문화에서 탄생한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사례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도 비슷한 패턴이다. 한국에서 MMORPG라는 새로운 게임 장르를 정착시킨 후, 중국, 일본, 대만 등으로 확장했다. 한국 게임 산업의 글로벌화를 이끈 대표적 사례다.


카카오톡도 흥미로운 사례다. 한국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확보한 후 동남아시아로 진출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대신 카카오게임즈, 카카오페이 등 플랫폼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성장했다. 이는 메신저라는 서비스 자체보다는 그것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가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교훈들


반면 해외 진출에 실패한 사례들도 많다. 이들의 공통점을 분석하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현지화 부족이다.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그대로 해외에 적용하려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각 지역의 문화, 규제, 경쟁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둘째는 성급한 확장이다. 한국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하기 전에 여러 시장에 동시에 진출하려다가 자원이 분산되어 실패하는 경우다.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압도적 성공이 전제되어야 한다.


셋째는 현지 파트너십 부족이다. 해외 진출 시 현지 파트너 없이 독자적으로 진출하려다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규제가 복잡한 시장에서는 현지 파트너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창업자를 위한 시장 선택 가이드


그렇다면 한국 창업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한국 vs 글로벌을 선택해야 할까? 몇 가지 실용적인 가이드를 제시할 수 있다.


사업 모델의 특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네트워크 효과가 중요한 플랫폼 비즈니스라면 한국에서 먼저 임계점을 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하드웨어나 B2B 소프트웨어처럼 시장 규모가 중요한 사업이라면 처음부터 글로벌을 고려해야 한다.


창업자의 역량과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해외 경험이 풍부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면 글로벌 진출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반면 한국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로컬 네트워크가 강점이라면 한국 집중이 나을 수 있다.


자원의 규모도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 진출은 더 많은 자본과 인력을 요구한다. 제한된 자원으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라면 한국에서 먼저 성공을 증명한 후 해외 진출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시장의 성숙도도 중요한 기준이다. 한국이 글로벌보다 앞서 있는 분야(모바일 결제, 게임, 뷰티 등)라면 한국에서 먼저 성공한 후 글로벌로 확장하는 전략이 유효하다. 반대로 한국이 뒤처져 있는 분야라면 처음부터 글로벌 기준에 맞춰 시작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결론: 전략적 순서의 중요성


한국 vs 글로벌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순서로 접근하느냐'다. 쿠팡과 삼성전자 모두 결국은 글로벌 기업이 되었지만, 접근 방식은 달랐다.


쿠팡처럼 한국에서 먼저 압도적 성공을 거둔 후 글로벌로 확장하는 것도 훌륭한 전략이다. 삼성전자처럼 처음부터 글로벌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량과 사업 특성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일관성 있게 실행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기억해야 할 것은 시장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시장만을 타겟으로 하더라도 글로벌 수준의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하더라도 로컬의 특성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결국 성공하는 기업은 로컬과 글로벌의 균형을 잘 맞추는 기업이다.


8장: 시장 선택의 실전 프레임워크


지금까지 다양한 사례와 이론을 통해 시장 선택의 중요성을 살펴봤다면, 이제는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가 문제다. 창업자들이 현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완벽한 정보가 아니라 불확실성과 제한된 자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체계적으로 시장을 평가하고 선택할 수 있는 실전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시장 평가를 위한 6가지 핵심 기준


성공한 창업자들과 투자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시장 평가 기준을 정리하면 6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MARKET' 프레임워크라고 부를 수 있다.


M(Market Size & Growth)은 시장 규모와 성장성이다. 현재 시장 규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 성장 잠재력이다. TAM, SAM, SOM을 정확히 계산하고, 연평균 성장률(CAGR)을 분석해야 한다. 특히 시장이 확장되는 동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A(Accessibility)는 시장 접근성이다. 아무리 큰 시장이라도 진입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규제 장벽, 기술적 장벽, 자본적 장벽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또한 고객에게 도달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이 있는지, 마케팅 비용이 감당 가능한 수준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R(Rivalry)는 경쟁 강도다. 경쟁자의 수, 시장 집중도, 경쟁 방식을 분석해야 한다. 레드오션이라도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기회가 될 수 있고, 블루오션이라도 진입 장벽이 낮다면 금세 경쟁자들이 몰려들 수 있다.


K(Key Success Factors)는 해당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핵심 요소다. 기술력이 중요한 시장인지, 브랜드가 중요한 시장인지, 비용 효율성이 중요한 시장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핵심 성공 요소를 확보할 수 있는지 정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E(Economics)는 시장의 경제성이다. 단순히 매출 규모가 아니라 수익성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 고객 생애 가치(LTV), 고객 획득 비용(CAC), 단위 경제성 등을 계산해서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인지 판단해야 한다.


T(Timing)는 시장 진입 타이밍이다. 앞서 5장에서 다뤘듯이 타이밍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시장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시장을 선도할 것인지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시장 평가 매트릭스 활용법


6가지 기준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정량적인 도구가 필요하다. 각 기준을 1-10점으로 평가하고,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는 매트릭스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푸드테크 스타트업이 '건강식 배달'과 '레시피 구독 서비스'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건강식 배달 시장의 경우 시장 규모(8점, 가중치 20%), 접근성(6점, 가중치 15%), 경쟁 강도(4점, 가중치 20%), 핵심 성공 요소(7점, 가중치 15%), 경제성(6점, 가중치 20%), 타이밍(8점, 가중치 10%)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가중 평균 점수는 6.4점이다.


레시피 구독 서비스는 시장 규모(5점), 접근성(8점), 경쟁 강도(7점), 핵심 성공 요소(8점), 경제성(7점), 타이밍(6점)으로 같은 가중치를 적용하면 6.7점이다.


단순한 점수만 보면 레시피 구독 서비스가 높지만, 창업자의 역량과 자원을 고려하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창업자가 물류 경험이 풍부하다면 건강식 배달이 더 적합할 수 있고, 콘텐츠 제작 능력이 강하다면 레시피 구독이 나을 수 있다.


역량 적합성 분석: 시장과 나의 매칭


시장 매력도만큼 중요한 것이 시장과 창업자(팀) 역량의 적합성이다. 아무리 좋은 시장이라도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수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역량 적합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핵심 역량을 정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B2B SaaS 시장에서는 제품 개발 능력, 영업 역량, 고객 성공 관리 능력이 핵심이다. 반면 소비재 브랜드 시장에서는 브랜딩, 마케팅, 유통 관리 능력이 더 중요하다.


다음으로 자신(팀)의 현재 역량 수준을 정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금물이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거나, 유사한 경험을 가진 창업자들과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역량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팀원 영입, 외부 파트너십, 자문단 구성 등의 방법이 있다. 중요한 것은 핵심 역량은 반드시 내재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외부에 의존할 수 있는 것과 반드시 내부에 있어야 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시장 확장 로드맵 작성법


시장 선택이 끝났다면 다음 단계는 시장 확장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앞서 4장에서 살펴본 아마존과 테슬라의 사례처럼, 성공한 기업들은 모두 단계적 확장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시장 확장 로드맵을 작성할 때는 3가지 축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제품/서비스 축이다. 현재 제품에서 시작해서 어떤 순서로 제품을 확장할 것인지 계획해야 한다. 고객의 니즈 여정을 따라 확장하거나, 기술적 시너지를 활용해 확장할 수 있다.


둘째는 고객 축이다. 현재 타겟 고객에서 시작해서 어떤 고객 세그먼트로 확장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B2B라면 기업 규모별로, B2C라면 인구통계학적 특성별로 확장 순서를 정할 수 있다.


셋째는 지역 축이다. 현재 서비스 지역에서 시작해서 어떤 순서로 지역을 확장할 것인지 계획해야 한다. 인접 지역부터 확장할지, 아니면 시장 매력도가 높은 지역을 우선할지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각 확장 단계마다 성공 지표와 조건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월매출 10억 원을 달성하고 월간 활성 사용자 10만 명을 넘어서면 부산으로 확장한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야 한다.


리스크 평가와 완화 전략


시장 선택에는 항상 리스크가 따른다. 이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 선택과 관련된 주요 리스크는 다음과 같다.


시장 리스크는 예상보다 시장이 작거나 성장하지 않을 위험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최악의 경우에도 생존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한 시장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피벗할 수 있는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


경쟁 리스크는 예상보다 경쟁이 치열하거나 대기업이 진입할 위험이다. 이에 대비해서는 차별화 포인트를 명확히 하고, 고객과의 끈끈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특허나 독점적 데이터 같은 진입 장벽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행 리스크는 시장은 좋지만 실행에 실패할 위험이다. 이는 팀의 역량 부족, 자원 부족, 잘못된 전략 등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핵심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충분한 자원을 확보하며,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규제 리스크는 정부 정책 변화로 인해 사업 환경이 악화될 위험이다. 특히 한국처럼 규제가 많은 환경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이에 대비해서는 규제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정부 관계자들과의 소통 채널을 유지해야 한다.


실행을 위한 체크리스트


이론적 분석이 끝났다면 이제 실행 단계다. 시장 진입을 위한 실행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시장 진입 전 준비 사항으로는 목표 고객 페르소나 정의, 핵심 가치 제안 검증, MVP(Minimum Viable Product) 개발, 초기 고객 확보 계획 수립, 자원 조달 계획 수립 등이 있다.


시장 진입 초기 활동으로는 고객 피드백 수집 및 분석, 제품/서비스 개선, 초기 팀 구성, 운영 프로세스 구축, 성과 지표 설정 및 모니터링 등이 필요하다.


시장 진입 후 성장 단계에서는 제품/서비스 확장, 고객 세그먼트 확장, 마케팅 채널 다변화, 팀 확장 및 조직 정비, 투자 유치 등을 준비해야 한다.


각 단계마다 점검할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책임자와 일정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 또한 정기적인 리뷰를 통해 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의사결정 가속화 도구들


창업자들이 시장 선택에서 자주 겪는 문제 중 하나는 분석마비(Analysis Paralysis)다. 너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다가 정작 의사결정은 미루는 현상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몇 가지 도구들을 소개한다.


80/20 법칙을 활용하면 핵심적인 20%의 정보로 80%의 판단을 할 수 있다.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수집하려 하지 말고,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정보부터 우선순위를 정해서 수집해야 한다.


시간 제한 설정도 효과적이다. "2주 안에 시장 선택을 완료한다"는 식으로 데드라인을 정하면 자연스럽게 핵심적인 분석에 집중하게 된다.


가역성 판단도 중요하다. 만약 잘못된 선택이라면 얼마나 쉽게 되돌릴 수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되돌리기 쉬운 결정이라면 빠르게 실행하고,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이라면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지속적 모니터링과 조정


시장 선택은 일회성 결정이 아니다. 시장 상황은 계속 변하고,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며, 자신의 역량도 발전한다. 따라서 선택한 시장 전략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조정해야 한다.


핵심 지표(KPI) 설정이 중요하다. 시장 점유율, 고객 만족도, 단위 경제성, 경쟁사 동향 등 시장 전략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들을 정의하고 정기적으로 추적해야 한다.


정기적인 전략 리뷰도 필요하다. 분기별 또는 반기별로 시장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필요시 수정해야 한다. 이때 단순한 실적 점검이 아니라 시장 환경 변화, 경쟁 상황 변화, 고객 니즈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피벗 기준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어떤 상황이 되면 시장 전략을 바꿀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두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결론: 프레임워크는 도구일 뿐이다


시장 선택을 위한 다양한 프레임워크와 도구들을 소개했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판단력과 실행력이다.


완벽한 분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철저하게 분석해도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분석에만 의존하지 말고, 직관과 경험도 함께 활용해야 한다.


또한 시장 선택 이후의 실행이 더욱 중요하다. 최고의 시장을 선택했다고 해도 실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 있고, 차선의 시장이라도 뛰어난 실행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


결국 시장 선택은 창업자의 전체적인 역량과 전략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프레임워크와 도구들을 활용해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되, 마지막에는 자신의 신념과 비전에 따라 결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완벽한 시장 선택보다는 선택한 시장에서 완벽하게 실행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다.


9장: 결론 - 시장이 운명을 결정한다


김연경 선수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우리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배구 선수였던 그녀가 마주한 시장의 한계부터, 일론 머스크가 보여준 시장 선택의 극적인 차이, 그리고 수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들을 통해 하나의 명확한 결론에 도달했다. 시장이 개인과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는 많은 창업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는 "노력하면 된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성공한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다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아무리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도,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다.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시장의 한계


김연경 선수는 배구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냈다. 올림픽 MVP, 세계 최고 선수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개인 기량으로는 어떤 스포츠에서도 통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배구라는 시장 자체의 경제적 한계 때문에 그녀가 올릴 수 있는 수익에는 명확한 천장이 있었다.


이는 비단 스포츠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 업계에서도, 제조업에서도, 서비스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야든 시장이 제공할 수 있는 기회의 크기가 정해져 있고, 개인의 역량으로는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웹반(Webvan)의 창업자들은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아마존 출신의 검증된 경영진, 골드만삭스와 세쿼이아캐피털 같은 최고 투자자들의 지원, 8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그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13년 후 같은 아이디어로 시작한 인스타카트가 390억 달러 기업이 된 것과 비교하면, 개인의 역량보다 시장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 명확해진다.


시장 선택이 만드는 극적인 차이


일론 머스크의 사례는 시장 선택이 얼마나 극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같은 창업자가 같은 핵심 역량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PayPal에서 얻은 1억 7,500만 달러와 Tesla·SpaceX에서 창출한 2,800억 달러 사이에는 1,600배의 차이가 있다.


이는 머스크가 갑자기 더 똑똑해지거나 더 열심히 일해서가 아니다. 단지 더 큰 시장, 더 큰 기회가 있는 분야를 선택했을 뿐이다. 온라인 결제 시장과 전기차·우주산업 시장의 규모와 성장 잠재력 차이가 이런 극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성공한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성장하는 거대한 시장을 정확한 타이밍에 포착했기 때문이다.


창업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5가지 교훈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해 창업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핵심 교훈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장 규모가 성공의 상한선을 결정한다. 아무리 해당 분야에서 1위를 하더라도 시장 자체가 작다면 큰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연경 선수가 배구계 최고가 되어도 다른 종목 평균 선수만큼 벌기 어려웠던 것처럼, 작은 시장에서의 1등보다는 큰 시장에서의 10등이 더 나을 수 있다.


둘째, 타이밍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Bill Gross의 연구에서 확인했듯이 타이밍은 창업 성공 요인의 42%를 차지한다. 아이디어의 완성도나 팀의 역량보다도 중요하다. 같은 아이디어라도 시장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일찍 시작하면 실패하고, 너무 늦게 시작하면 기회를 놓친다.


셋째, 시장 확장 가능성을 미리 고려해야 한다. 성공한 기업들은 모두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확장했다. 아마존이 책에서 시작해서 모든 상품으로, 테슬라가 프리미엄 스포츠카에서 시작해서 대중차로 확장한 것처럼, 처음 시장을 선택할 때부터 확장 경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넷째, 핵심 역량과 시장의 매칭이 중요하다. 아무리 매력적인 시장이라도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수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자신이 가진 핵심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시장을 선택해야 한다. 동시에 선택한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들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다섯째, 블루오션과 레드오션 중 자신에게 맞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기존 시장에서 더 나은 솔루션으로 경쟁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량과 자원,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적절한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디서 플레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중요성


결국 모든 것은 "어디서 플레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많은 창업자들이 "어떻게 플레이할 것인가"에만 집중하지만, "어디서 플레이할 것인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뛰어난 팀을 구성하는 것, 효율적인 운영을 하는 것은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올바른 시장을 선택했을 때만 의미가 있다. 잘못된 시장에서는 아무리 완벽하게 실행해도 한계가 있다.


테슬라의 성공을 보자. 일론 머스크는 자동차를 더 잘 만들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전기차라는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일찍 포착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진입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만약 그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했다면 지금 같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쿠팡도 마찬가지다. 김범석 대표는 배송을 더 잘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특수한 시장 환경(높은 인구 밀도, 빠른 배송에 대한 기대, 모바일 친화적 문화)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구축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시장 선택의 전략적 프레임워크


그렇다면 창업자들은 어떻게 올바른 시장을 선택할 수 있을까? 8장에서 제시한 MARKET 프레임워크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Market Size & Growth를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현재 시장 규모뿐만 아니라 미래 성장 잠재력을 파악하고, TAM, SAM, SOM을 구체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Accessibility를 평가해야 한다. 아무리 큰 시장이라도 진입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규제 장벽, 기술적 장벽, 자본적 장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Rivalry를 분석해야 한다. 경쟁 강도, 경쟁자의 수준, 차별화 가능성을 평가하고, 자신만의 경쟁 우위를 구축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Key Success Factors를 파악해야 한다. 해당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자신이 그런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Economics를 검토해야 한다. 단순한 매출 규모가 아니라 수익성 구조, 단위 경제성, 고객 생애 가치 등을 분석해서 지속 가능한 사업인지 판단해야 한다.


Timing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시장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시장을 선도할 것인지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한국 창업자들을 위한 특별한 고려사항


한국 창업자들은 추가로 고려해야 할 특별한 요소들이 있다. 한국 시장에 집중할 것인지, 처음부터 글로벌을 노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쿠팡처럼 한국에서 압도적 성공을 거둔 후 해외로 확장하는 전략도 있고, 삼성전자처럼 처음부터 글로벌을 염두에 두는 전략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량과 자원, 사업의 특성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네트워크 효과가 중요한 플랫폼 사업이라면 한국에서 먼저 임계점을 넘는 것이 유리할 수 있고, 하드웨어처럼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사업이라면 처음부터 글로벌을 고려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또한 한국의 독특한 특성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K-뷰티, K-콘텐츠, K-pop처럼 한국만의 특색을 살린 분야에서는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


시장은 계속 변한다. 기술 발전, 고객 행동 변화, 규제 환경 변화 등으로 인해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기존 기회는 사라진다. 따라서 창업자들은 단순히 현재의 시장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준비해야 한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메타버스, 자율주행, 친환경 기술 등 새로운 기술들이 어떤 시장 기회를 만들어낼지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동시에 기존 시장들이 어떻게 변화할지도 예측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신호를 빠르게 포착하는 것이다. 성공한 창업자들은 모두 남들보다 일찍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했다.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를 예측한 스티브 잡스, 클라우드 컴퓨팅의 가능성을 일찍 본 제프 베조스,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예견한 일론 머스크가 그 예다.


마지막 메시지: 선택의 용기


시장 선택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완벽한 시장은 존재하지 않고, 완벽한 정보도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리스크가 따르고, 어떤 결정을 하든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분석과 직관을 적절히 조합해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올인하는 것이다. 애매한 마음으로 여러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어느 시장에서도 성공하기 어렵다.


김연경 선수는 배구라는 시장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창업자라면 때로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더 큰 임팩트를 만들고 싶다면,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시장 선택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결론: 시장이 운명을 결정한다


개인의 노력과 역량도 중요하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뛰어난 팀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올바른 시장을 선택하는 것이다.


시장이 개인과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는 냉혹한 현실이지만, 동시에 희망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태생적 재능이나 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와 올바른 선택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김연경 선수의 역설에서 시작된 우리의 여정은 결국 모든 창업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어디서 플레이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당신의 창업 여정,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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