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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an 18. 2023

중국 새해 아니고 음력설

말레이시아에서 설 명칭을 바꾸었다


감격적이다.

7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새해(Chinese New Year)'가 아니라 '음력설(Lunar New Year)'이라고 쓰인 학교 안내장을 받았다. 그동안은 주욱 '중국 새해'를 행복하게 보내라느니 '중국 새해'를 맞아 방학을 하니 모두 평안한 귀향길 되시라느니 '중국 새해' 행사를 하니 많은 참여 부탁한다느니 하는 메일을 받아 왔었다.

뿐만 아니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말레이시아 지인은 모두, 무슬림이든 중국계이든 인도계이든 상관없이 '중국 새해' 인사를 건네곤 했다.



말레이시아 지인들이 보내오던 설 카드. 2017년.


그도 그럴 것이,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는 중국계가 많다. 이들은 주로 중국어와 영어를 쓰고, 말레이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기도 한다. 사투리가 심할 경우 같은 중국계끼리도 영어로 대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어찌 보면 '중국 새해(Chinese New Year)'라는 용어는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낯선 나라, 낯선 문화권에 왔으니 분위기부터 파악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 해, 두 해 지난 후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워낙에 중국계 중심으로 중국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혔으니 관공서나 산업 쪽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모이는 국제학교라면 달라야 하지 않겠느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2019년, 마침 기다렸다는 듯 학교 학부모회에서 한국 학부모 모임 쪽에 연락을 해 왔다.


"한국도 설을 챙기지 않니? 그럼 너희도 구경만 하지 말고 이번엔 같이 학교 행사를 준비하자."

기회였다.

"좋아, 그럼 같이  테니 명칭 바꿔 . '중국 새해' 아니라 '음력설'이야. 알지? 중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도 음력설을 지내는 ?"


그리고 그해, 학교에서는 적어도 내가 알기론 처음으로 '음력설(Lunar New Year)'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음력설을 쇠는 다른 나라 학생들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중국과 한국, 각자의  풍습을 소개하고 체험하는 행사는 다른 어느 해보다 성공적이었다. 체험 놀이로 딱지치기와 제기차기를 준비했었는데, 그때  체험을 했던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 보았다면, 딱지맨과 기훈이 형의 살벌한 게임 장면에서 어, 나 저거 해 봤는데! 하고 좋은 추억을 떠올릴  있지 않았을까.


음력설 홍보대사. 깨알 한복 끼워 넣기. 2021년. 이 연하장을 보냈던 지인은 2022년, Lunar New Year라고 인사를 보내왔다.


이후 코로나 때문에 학교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었고, 한동안은  기억을 잊고 살았다. ‘중국 새해' 인사를 건네는 지인에겐 '음력설' 인사로 화답했다. 이방인으로 사는 이민자의 나름 소소한 애국이었다.


그리고 올해, 학교 행사가 부활하면서 '음력설' 행사 안내 메일을 았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국제학교뿐만은 아닌  같다. 여기저기에서 Lunar New Year라는 표현이 조금씩 보인다.

지난  해에 걸쳐 세계 여러 나라의 인식도 해 가는  같다. 남의 것도 다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일부 행태에 대한 반작용일까,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부터 미국 디즈니랜드까지 Happy Lunar New Year는 표현을 썼었다고 하니. 과연 2023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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