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글쓰기 연습] <율의 시선>을 읽고 씀.
잔은 바닥을 뒹굴지만 아무도 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이 들어 있을 때는 가지고, 비어있을 때는 버린다. 잔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일까.
율이는 어떠한 사건의 PTSD로부터 무감각해지고 싶어 세상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자신의 존재에 비해 너무도 이질적이라 차라리 바라보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기도, 이해하기도 싫었던 율의 시선은 항상 땅바닥을 바라보는 것을 끝이 났다.
어쩌면 꿈이라는 건 시선이 반영되어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에게는 올려다볼 꿈이 생기고, 나처럼 아래만 보는 사람에게는 밑바닥 현실만 남는 것이다.
“그래. 소설을 써봐. 거짓말쟁이야말로 좋은 소설가가 될 수 있어. 소설은 거짓말이니까.”
“나 같은 게 써 봤자 읽어 줄 사람도 없을 걸. “
”그럼 내가 네 첫 번째 독자 할게. “
그 말에는 한 치의 꾸밈도 없었다.
”네가 왜? “
이도해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 이도해가 비스듬히 답했다.
”처음이 된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잖아. “
그 공허한 시선 안에 갑자기 들어온 '이도해'.
스스로를 '북극성'이라 칭하는 도해는 율이의 시선을 땅으로부터 현재로 이끌어줬다. 율이 에게 도해는 길을 찾아 나서게 해준 북극성이었다. 도해의 존재만으로 위로를 받던 그런 시간이 있었다.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
하지만 도해 역시 북극성이 필요한 길을 잃은 아이였다는 걸, 율이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헤매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간절해서 스스로라도 북극성이 되고 싶었던 외로운 아이였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인간은 나약하다. 너무 쉽게 부서지고 무너진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숨기며 끊임없이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그렇게 부서지고 무너지면서 강인해진다. 모순적이었다.
모순적이기에 인간은, 삶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율이는 이제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도해가 찾아올 수 있도록, 북극성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율의 시선은 이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담을 수 있게 되었고, 함께 극복할 수 있었으며, 또한 도해를 찾을 수 있도록 더 넓고 멀리 뻗어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 나왔다고 들어서 무척이나 궁금했다.
책을 읽어보니 잊고 살던 음울하고 고민 많던 나의 사춘기가 떠올랐다.
어른이 된 지금, 종종 현생이 고달파서 '학생 때가 좋았지~'라고 어찌나 쉽게 내뱉었던지.
도해와 율이의 이야기를 통해 항상 벼랑 끝에 서있는 것만 같던 내 모습을 떠올리니,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이 그 시절 고독했던 어린 나에게 정말이지 못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을 잘 견뎌서 지금의 어른이 되기까지 그 어린아이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혼자서도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하고, 또 얼마나 이겨냈는지.
나는 너무도 쉽게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고독으로부터 나오는 불안함이 엄습한다. 이대로 영영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그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미래의 모습을 기대하며 포기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 덕분이었겠지.
지금은 뭔가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만도 같지만, 이 또한 방황하던 나, 함께하던 친구, 지켜봐 준 어른들이 만들어준 소중한 인생이었다. 그 사실을 문득 떠올리니 내가 참, 애틋해졌다.
<율의 시선>은 청소년의 시선에서 충분히 나올 법한 내용이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 문학에 기대하는 밝고 활기찬 느낌은 없지만, 오히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좀 더 인생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한다. 특히 인간관계로부터 많은 가치관을 형성해가는데, 이 책은 아이들에게 좋은 북극성이 되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좀 더 스스로를 애틋하게 생각하기를, 그래서 좀 더 힘내보기를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