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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Mar 10. 2024

소소한 여행

춘천 오봉산에 있는 청평사(淸平寺)는 작지만 제법 유명한 절이다. 청평사가 유명해진 데는 매월당 김시습의 <有客>이라는 시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오직 소양댐 아래에서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도로가 생기고 터널이 뚫려 자동차로도 갈 수는 있지만,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은 꼬부랑 고갯길을 넘는 일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자동차가 흔치 않던 젊은 시절, 춘천은 오로지 경춘선 열차로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청량리에서 경춘선을 타면 크고 작은 역을 20개는 족히 거쳐야 춘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마석, 대성리, 강촌 등이 모두 대학생들의 MT 장소였다. 그러니 경춘선에는 으레 버너와 코펠에 각종 음식 재료가 가득한 배낭이 선반을 채웠고, 거기에 낭만 좀 안다는 젊은이들은 기타(guitar) 하나를 더해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아, ‘라떼’ 추억하다가 이야기가 샜다.

아내와 바람이나 쏘이자고 나선 길이었다. 다행히 평일 낮이어서 춘천 가는 고속도로는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춘천 가면 항상 들르는 닭갈비 집이 하필 쉬는 날이었다. 하는 수 없이 문을 연 집으로 갔는데, 맛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어디든 사람이 붐비는 곳은 이유가 있다. 파리를 날리는 집은 이유가 더욱 더 분명하다. 

예전에는 배로만 갈 수 있었다

청평사는 거의 10년 만에 가보는 것 같다. 예의 그 꼬부랑 할머니의 허리보다 더 꼬부라진 고갯길을 돌고 돌아 선착장 쪽으로 내려갔다. 때마침 선착장에는 건너편에서 온 배가 다시 돌아갈 손님들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배를 타고 올 걸, 잠시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주차장에 차를 버리고 배를 타고 춘천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입구부터 음식점 주인들이 손님을 부르느라 왁자하다. 성질이 못된 나는 적극적으로 호객을 하는 집은 적극적으로 피한다. 더구나 우리는 이미 점심을 먹었으므로 눈길도 주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분명 '구성폭포'다

음식점이 끝나는 지점이 청평사로 들어가는 입구인 셈이었다. 나는 거기서부터 사진을 찍기로 했다. 오랜만에 가는 청평사를 오늘은 마음먹고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음식점 앞에 있는 표지판을 찍었다. ‘청평사’는 1.2km, ‘구성폭포’는 700m였다. 산책을 하기에 적당한 거리였다. 골짜기 응달에는 잔설이 남아있었지만 냇물은 겨우내 얼었던 눈과 얼음이 다 풀려 제 모습, 제 소리로 기를 쓰고 아래로 내달리고 있었다. 머지 않아 이 냇물에 '도화유수묘연거'하리라...

개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냇가 한복판에 동상이 하나 서 있다. 당나라 공주와 상사(相思) 뱀이라나? 공주를 사랑한 관리가 있었는데, 신분의 차이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처형되었는데, 후에 뱀으로 환생하여 공주를 어찌했다나 어쨌다나... 심지어 골짜기 건너편에 서 있는 삼층석탑을 공주탑이라 부른다고 했다. 청평사는 고려 때 세워진 절이고, 당나라는 망한 지가 한참이나 지났는데 웬 당나라 공주? 이야기도 좀 그럴듯하게 만들어야지 그건 너무 심하지 않나?     

‘구성폭포’는 규모가 자그마하지만 예쁜 폭포였다. 폭포 아래 소도 폭포처럼 자그마하고 예뻤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다! 분명 입구의 표지판에는 ‘구성폭포’였는데, 폭포 앞 표지판에는 ‘구송폭포’라 씌어있다. 심지어 옛날 표지판에 있는 ‘구성폭포(九聲瀑布)’의 설명에는 아홉가지 소리가 난다 해서 그렇게 지었다는 유래까지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구송폭포(九松瀑布)’도 분명 폭포 위에 아홉 그루의 큰 소나무가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렷다. 도대체 무엇이 맞는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이른바 명소인데 그 이름 하나 통일하지 못하다니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구송폭포'면 '구성폭포'는 어디?
이름이야 어찌 됐든 폭포는 아름다웠다

절집 못 미친 곳에 찻집이 하나 있었다. 그 규모가 대웅전보다도 커 보였다. 뭐 절집 아래 찻집이 꼭 아담하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왠지 균형이 안 맞아 보였다. 

대웅전보다 큰 찻집

이제 저만치 다리가 보인다. 계곡물 위에 놓인 돌다리이다. 저것이 없다면 계곡물은 속세인 차안(此岸)과 정토인 피안(彼岸)을 갈라놓았을 것이다. 그 돌다리는 말하자면 차안과 피안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다리 건너 청평사는 규모가 큰 절이 아니다. 신흥사의 말사(末寺)라는 위치에 맞춤했다. 조금 특이한 것은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 대웅전과 극락보전 두 개라는 점이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모신 전각이고,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이다. 대부분의 절은 둘 중 하나만 있지만, 둘 다 있는 절도 간혹 있는데 청평사가 그러했다. 

아직 봄꽃은 하나도 피지 않았지만, 절 아래에 있는 영지(影池)에서는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 짝을 찾느라고 앓는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개구리들은 잠에서 깨자마자 먹지도 않고 짝부터 찾는다고 한다. ‘사랑밖엔 난 몰라’는 바로 이른 봄 개구리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노래다.    

  

청평사에 몇 번 가 보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 고려선원 내에 있는 계곡 건너 삼층석탑이었다. 벼랑길을 100m쯤 돌아가니 단아한 석탑 하나가 반공(半空)에 서 있다. 김시습이 시에서 ‘새는 우짖고 탑은 고요하고’라고 노래했던 바로 그 탑이다. 높지는 않았지만 가파른 바위 위에 있어 암벽을 타듯 몸을 바위에 밀착하고 기어 올라가야 탑 전체를 볼 수 있다.     

막배가 손님을 기다리고, 몇 명이서 그 배를 잡으려고 급하게 선착장을 내려서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자동차로 왔으니 시간에 쫓길 일은 없었다. 주차장 아래에 ‘소소한’이라는 찻집이 하나 있었다. 

찻집도 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창가에 놓인 길쭉한 소파를 하나씩 차지하고 대추차와 쌍화차를 시켜 마셨다. 뒤로 길게 누울 수 있게 된 소파였다. 길게 뻗고 누우니 잠이 솔솔 왔다. 아내는 내게 머리만 대면 잔다고 놀리곤 한다. 하긴, 나는 예전에 치과에서 어금니를 뽑다가도 깜박 잠이 들어 혼난 적이 있으니 놀림을 받아도 싸긴 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소나무숲이며 계곡에 봄이 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나른한 걸 보면... 찻집 이름을 잘 지었다. 왜 ‘소소한’인지 묻지 않았지만, 나는 나름대로 ‘消騷閑’이라고 한자 이름을 하나 지어 주었다.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한가로움’ 정도의 뜻으로... 참 소소한 여행, 소소한 만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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