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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육아, 법정에 서다 (2)

전문가의 조언, 가스라이팅일까?

by 오지의

2025년, 국내에서 진행된 대규모 연구가 어린 시절 모유 수유가 추후 중추성 성조숙증을 낮출 수 있다는 연관성을 제시했다. 초유 수유가 끝난 나는 모유 수유를 지속할지 기로에 서있었다. 때마침 이 논문을 접하게 되니, 아무래도 모유를 계속 먹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내가 성조숙증의 과거력이 있으니 내 딸도 유사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성조숙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면, 관절 치료를 몇 달 미루고 꺼이 젖을 물리기로 했다.


이 연구는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었다.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죄'라는 단어가 무수히 여러 번 등장한다. 모유 못 먹이는 엄마를 죄인 만드냐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모유의 유익함을 강조하는 입장에 대한 반발심은 비단 이 뉴스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가스라이팅에서 유래한 '모유라이팅'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모유 담론이 모유 수유를 하도록 산모를 조종, 통제하려 든다는 비난이다. 모유를 못 먹여도 죄인, 모유가 좋다고 해도 죄인. 이쯤 되면 이 아사리판에는 무고한 이가 없을 정도다.


출처 : news.naver.com/mnews/article/346/0000096559?sid=103 댓글 일부 발췌


의학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만약 저 뉴스가 나를 '심리 지배'한 것이라면 나는 '세뇌'된 채로 지금도 젖을 물리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모유 수유를 곧 그만두었다. 사고로 척추가 부러진 것이 이유이다. 아쉽지만 내 아기는 고작 보름 정도 젖을 먹었다. 지금도 둘째는 완분(완전 분유 수유)으로 자라고 있다. 각종 지침과 권고안은 존중하지만, 내 사정에 맞게 삶을 꾸리는 중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모유 못 먹인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까? 그것 또한 아니다. 입원 중에 유축 모유를 집으로 배달할 방법도 없었고, 모체의 칼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모유 수유가 당장 척추 골절 환자인 나에게 이로울 리도 없었다. (참고로 모유 수유 시기의 골밀도 감소는 수유가 끝나면 회복된다.) 그러니 별 수 없었다. 아쉽지만 모유 수유는 거기까지였다. 세상 일이 뭐 다 뜻대로 되나. 이런 것까지 다 죄로 여겨서야, 험한 세상에서 애들을 어찌 키우리오.


죄책감, 가스라이팅 같은 무거운 용어의 사용은 지나치게 격정적인 마음의 반영이다. 사정이 있어서 젖을 못 물린 것은 죄스러운 일이 아니다. (별 사정이 없었어도 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 노릇에 관한 논쟁이라면 아주 쉽게 긁혀버리는 까탈쟁이인 내가 감정적 반응을 아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정보에마저 과잉 반응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까? 정보의 수용자는 자진해서 모성애가 부족한 죄인이 되고, 정보의 제공자는 자기도 모르게 가스라이팅 범죄자가 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모유 수유를 포기한 엄마들이 호소한다. 짧은 출산 휴가, 노동 환경, 부모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양육 문화, 만혼과 늦은 출산. 이 모든 것이 모유 수유에 장애물이 되었다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일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모유 수유의 장점을 논하면서 공연히 부모의 죄책감을 자극하지 말라고. 여기부터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모유에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와 낮은 모유 수유율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된다. 모유가 이롭다는 연구가 쌓여야 모유 수유를 지지하는 환경이 갖춰진다.


진짜로 호소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어차피 과학이 발전할수록 모유의 장점은 더 많이 밝혀진다. 기존에 몰랐던 모유만의 유전학적, 면역학적 역동성이 새롭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연구 발표가 죄책감을 만든다는 둥, 모유라이팅이라는 둥 감정 소모를 하는 것은 대단한 사회적 낭비다. 대신 모유 수유를 어렵게 만드는 각종 요인을 손봐야 한다. 모유가 보건학적으로 유의미한 장점이 있다면 산후조리 방식, 출산 휴가, 양육 문화를 모유 위주로 재편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중에는 모유의 장단점을 충분히 탐색하고 알리는 것도 물론 포함된다.


앞선 글에서 새롭게 발표된 RSV 백신 접종을 추천했다가 비싼 주사를 권했다며 공격당한 소아과 선생님의 사례를 제시했다. 그분은 현명하게도 이 부분을 분명히 했다. 유익한 주사가 지나치게 비싼 가격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므로, 이 주사를 무료화 하는 방안을 소아과 전문의들이 청원 중이라는 것이다. 전문가의 영향력과 여론이 올바른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RSV 접종도 멀지 않은 시일에 국가예방접종사업에 포함될 것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양육 환경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서로에게 죄를 묻는 법정이 아니고, 더 많은 정보 속에서 더 좋은 선택을 숙고하는 광장을 향해서.


다만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하나 있다.

숨은 죄인, 진범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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