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의 Oct 11. 2024

결혼 안해서 너무 행복해요

...라는 컨텐츠를 보며 드는 생각

지난 추석 명절에 조회수가 잘 팔린 기사가 있다. 한 비혼주의 인플루언서의 동영상 인용이다. 그녀는 비혼주의자의 명절을 묘사했다. 육아나 가사, 시댁 식구 챙김에 구애받지 않으니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담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결혼 옹호, 비혼 옹호 의견이 부글부글 들끓었다. 반어법을 통한 조롱을 섞었기에 불판이 더 뜨거워지긴 했지만, 이 글에서는 <결혼을 안해서 행복하다>는 선언에만 집중해보려고 한다.


https://news.nate.com/view/20240917n06101


<결혼을 안하니까 행복하다> 라는 선언이 (의도된) 논쟁으로 이어진 것엔 이유가 있다. 이것은 형식상 '나'에 대한 주관적 발언이지만, 교묘하게 '남'을 대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광장에서 "나는 머리숱이 많아서 헤어 스타일링이 자유로워. 머리숱 풍성한 거 너무 좋아!"라고 자랑한다고 치자. 대머리인 사람은 말을 듣고 부러울지언정 그를 탓할 수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장소에서 "나는 대머리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대머리가 아니니까 비싸고 번거로운 가발 따위 안 써도 돼!"라고 한다면, 어떨까? 무례할 뿐더러, 대머리들에게 눈흘김 당할 각오는 되어 있어야 된다.


건전한 자랑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향유하는 것에서 기인해야 한다. 타인의 속성을 간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사실 자랑이 아니고 시비다. 기사에서 인용된 유튜버는 재주가 많아서 자신의 본래 삶에서 끌어낼 수 있는 자랑거리도 많은데, 굳이 이런 (어그로성) 선택을 한 이유를 짐작해보자. 내가 알기로 콘텐츠 제작 초기에는 결혼 생활을 깎아내리는 뉘앙스가 없었다. 하지만 비혼 옹호자들은 억울하게도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수없이 받아왔다. (ex. 못나서 결혼 못하니까 괜히 저런다. 외로워서 말년이 불행할 것이다. 애를 안 낳으니 사회에 기여를 안 한다 등등...) 그러다 보니 대항 차원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응수하는 것은 일종의 '정당 방위'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개인의 홍보와 화제성 유지를 위해서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비혼주의 인플루언서에 대해 호오를 나누자면, 나는 좋아하는 쪽이다. 그녀가 자랑스럽게 전시하는 삶은 내가 결혼하기 전의 삶과 모양새가 똑 닮았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무릎을 탁 친 적이 많다. 내가 결혼 안 했으면 지금도 저렇게 살았겠지? 혼자서 여행을 하고, 문화를 즐기고, 운동과 여가를 누리고, 끼니는 내 한 몸만 잘 먹이면 된다. 내가 결혼 전에도 완벽하게 행복했듯이, 그녀도 진실로 행복함이 틀림없다. 하지만, 정말로 결혼을 안해서 행복했을까? 가족의 식사를 챙기지 않아도 되고,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되고, 동반자의 취향과 주관을 배려하지 않아도 되어서 행복한 것일까?  


나는 그 안의 숨겨진 메세지는 결혼을 하건 말건 상관없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선해하고 싶다. 결혼을 하지 않아야만 행복하다는 주장은, 결혼을 해야만 행복하다는 주장만큼 편협하지 않은가. 한 인간의 행복을 정의하기 위해서, 오로지 부정어만 반복되는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유명해진 인터넷 밈. 사실은 기혼자들도 때때로 결혼을 조롱한다.


인간의 결혼 또는 비혼 경향도 어느 정도는 진화생물학적 견지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유인원 사회에도 짝짓기를 하지 않는 개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인간 사회에도 비혼 집단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어찌 보면 생물학적 다양성의 차원에서 바람직한 면도 있다. 그리고 기술문명과 소비문화가 '짝 관계(pair bonding)'의 장점을 대리해주기에, 파트너쉽 없이도 현대인의 삶이 대체로 만족스러운 것은 놀랍지 않다. 원래 유성생식은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든다. 심지어 번식 경쟁에서 탈락하는 개체도 많이 발생한다. 일부는 애초에 관계에 흥미가 다. 직접 자식을 낳지 않아도, 공동체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들이 있다는 점도 간과할 없다. 그러다 보니 예나 지금이나, 인간일부분은 비혼일 것이다. 

 

하지만 꼭 결혼이라는 법률적 형식을 떠나서,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타인과의 관계맺기 자체를 꺼리는 그런 사회는 뭔가 병적인 것임이 분명하다. 유의미한 정신적 유대, 타자와의 대면 접촉, 장기적인 상호관계, 더 큰 집단에 소속되는 느낌은 인간됨의 바탕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종족의 본질적 행복과 만족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연구들이 이러한 지점을 폭넓게 밝히고 있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의 행복을 그림으로 그려 보자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서로를 돌보고 껴안으며, 공동체와 일체감을 느끼며 함께 호흡하는 장면이 반드시 자리한다. 품이 들고, 남 눈치도 봐야 하고, 내 자유를 양보해야 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한 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나아가서 깊은 만족과 고양감의 배경되어준다. 


나는 하필이면(?) 결혼을 해버리는 바람에 비혼 인플루언서의 자격이 없다. 애도 이미 낳아버리는 바람에 딩크족에게 주제넘게 조언할 수도 없다. 하지만 비혼이건, 딩크건, 기혼 유자녀이건 관계없이 타인과 긍정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를 건설하는 것은 행복에 이르는 괜찮은 -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이고, 역사 속에서 성과가 반복적으로 증명되었으며, 부침은 있을지언정 실패 확률이 낮은 - 투자법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결혼에 대한 그 선언이 약간 수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결혼하건, 결혼하지 않건 행복할 수 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