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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선 Jul 07. 2021

서울대 청소 노동자 이모씨의 명복을 빌며


6월 26일, 서울대 기숙사에서 근무해 온 청소 노동자 A씨(59세 여성)가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기사의 일부를 붙여넣는다.




A씨가 근무한 여학생 기숙사(925동)는 서울대에서 업무가 가장 고된 기숙사 중 하나이다. 건물이 크고 학생 수가 많아 여학생 기숙사 중 일이 가장 많다고 한다. 고인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기숙사에서 모든 층의 대형 쓰레기 봉투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를 계단을 오르내리며 직접 날라야 했다.
특히 유리병의 경우 무게가 많이 나가는데, 끌어서 운반하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두 팔로 들고 날라야 했다. 노동자들이 신체적 고통을 호소할 정도로 고된 업무였다.


심지어 청소 노동자들에게 필기 시험을 치르게 했다. 시험 문제는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문으로 쓰게 하거나, 기숙사 개관 연도, 심지어는 각 건물별 준공연도까지 묻는 황당한 것이었다. 시험 후에는 채점 결과를 나눠주며 공개적으로 노동자들을 망신 줬다고 한다. 자식뻘 되는 관리자의 행태에 노동자들이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을지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기사 출처 1

https://wspaper.org/article/25840


브런치북에 어느 정도는 풀어둔 이야기다. 나는 서울대를 나왔고 우리 엄마는 2020년 12월까지 학교 청소를 했다. 점심을 먹으며 엄마에게 이 기사를 읽어주었는데 엄마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계단으로 이동하는 부분, 젊은 관리자가 감시하고 모욕을 주고 시험을 치는 부분을 읽어줄 때 무척 분개했다. CCTV 돌려보고 감시하는 건 나도 엄마에게 들어 아는 일이다. 엄마는 세 명 중 누가 계단청소를 가장 잘하는지 보겠다며 청소 테스트를 시키는 관리자의 지시대로 가장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 땀을 흘렸고, 미친년, 시팔년 30분 간 소리지르는 동료의 폭언에도 싸우거나 항의하지 못했고, 동료직원에게 맞거나 꼬집히면서도 고발하지 않았다.


학교 청소는 좋은 일자리다. 비교적 지저분하지 않고 급여가 밀리지 않고, 사대보험 적용이 된다. 청소일 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선호하는 자리니 그만두기도 보통은 쉽지 않다. 우리 엄마도 스스로 사표를 내지 않았다.




이 기사 얘기를 하며 엄마가 한 말을 엄마 언어로 그대로 옮겨둔다.

“청소하는 사람들 우습게 봐. 발바닥 인생. 직업 중에서 제일 하바리잖아”


서울대 기숙사 923동에 친구들이 살았다. 우리 과 친구끼리 룸메이트라 집이 먼 나는 종종 지하철이 끊길 상황이면 친구 기숙사에 신세를 졌다. 학교 최고 인기 야식은 맹구탕수육이었다. 그 쓰레기는 누가 치웠으며 어디로 갔을까. 그때의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씨의 동료라고 밝힌 한 청소노동자는 “용기를 내서 말하겠다. 일하던 도중 최대한 단정한 모습으로 회의에 참석했지만, ‘멋진 모습’이라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면 감점을 당했다”며 “자연대 생활관을 영어로 쓰라고 하고 점수를 사람들 앞에서 공개했다. 당혹스럽고 자괴감을 느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한다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맞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시험은 청소노동자에게 어려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하는 곳에 대해 알기 위한 차원으로 진행했다. 유가족이 요청한 사항은 논의해 볼 예정”이라며, 다만 “안전관리팀장에 대한 징계 예정은 아직 없다. 평소 업무를 잘 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기사 출처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7071404011#c2b




우리 엄마라면 어땠을까? 우리 엄마도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청소일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만 나왔고,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줄 모르고 영어는 알파벳만 읽을 줄 안다. 긴장하면 말을 더듬고 더위를 많이 타고 산책을 좋아하고 김치를 잘 담그고 기분이 좋으면 엉덩이춤을 추는 우리 엄마. 엄마는 한 명의 청소부라는 요소만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런 엄마가, 저 시험장에 우리 엄마가 있었다면. 시험지에 기숙사명을 쓴 노동자의 글씨가 엄마 글씨와 비슷해 더 마음이 아팠다. 나는 엄마가 부끄럽지 않다. 대신 나는 분노한다.





청원하러 가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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