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 시대가 오기 전엔 나도 주식을 했었다. 아는 주식을 사라는 말에 관심 있는 산업 중심으로 주식을 샀다. 경쟁사 주식을 샀는데, 내가 일을 잘하면 우리 회사가 잘 되니 내 월급이 오르고, 경쟁사가 잘 되면 내 주식이 오르니 아무튼 개이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헷지라는 개념을 본능적으로 적용했었네요) 사드 설치로 코스닥이 박살나는 날 주택자금이 필요해 시장가로 일괄 모두 팔았고, 도합 백만원 정도 손해를 봤다. 이 정도면 싼 수업료를 냈지요...
모르는 게 있을 땐 우선 책을 산다. 할 땐 재밌어서 주식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특히 재밌게 본 책은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6636094 > (피터린치, 국일증권경제연구소)과 <주식시장에서 살아남는 심리 투자 법칙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6142574 > (알렉산더 엘더, 이레미디어) 였다. 그리고 이 책들을 통해 나는 나 스스로가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피터 린치 선생님은 시장은 언제나 열리기에 주택 문제가 해결되기 전엔 시장에 진입하지 말라고 하셨다.
실제로 나는 주택 문제로 인해 내가 팔고 싶지 않은 타이밍에 주식을 일괄 시장가로 던지고 짧은 주식인생을 마무리했다...
- 10년, 20년을 묵혀도 될 여윳돈이 내게 없다
그리고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 판단을 빠르게 수정하지 못한다
여기서부터는 심리의 문제였다. 내 판단이 틀렸다는 걸 나 스스로 인정하는 게 고통스러웠다. 기계적인 손절선을 지키지 못했고, 어떤 요행이 내게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내가 틀렸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 자신에게 근거는 없었다.
- 멘탈이 약하다
2021년 후반기에 퇴근 후 투잡을 잠깐 했는데, 투잡은 내겐 너무 버거웠다. 원잡도 버겁다는 결론을 내렸다...(ㅋㅋㅋ) 한국 주식시장이 열리는 9:30~3:30은 내가 원잡인 본업에 가장 충실해야 할 시간이었고, 시장을 살피거나 대응할 여력도, 정신적인 여유 공간도 없었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24시간 장이 열린다니, 상한가 하한가도 없다니, 나스닥을 보려면 잠을 잘 수 없다니...
- 예상 수익액이 이 모든 걸 감수할 정도로 크지 않다
합리적인 전업 주식 투자자가 목표 수익율을 8%로 잡은 것을 블로그 검색하다 보았다
시드가 조금인 나로선 1천만원 기준 80만원인 것인데, 이 정도 수익을 기대한다면 아껴 쓰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작은 시드로 큰 이익을 원한다면 결국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 나의 고통의 원인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인생... 물론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내가 가진 고통은 대체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돈이 더 많아진다고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데, 돈을 더 벌기 위해 추가적인 '노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투자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말에 기만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퇴근한 내게 또 일 시켜먹고 네 책임이다 또 혼내는 거 같고...ㅋㅋㅋ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는 이더리움을 산 세 여성이 '엑싯'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시기는 2021년 4월. 나는 이 책을 열심히 팔았고, 이더리움 차트의 움직임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더리움은 2021년 5월까지 엄청나게 상승했고, 7월에 엄청나게 하락했고, 다시 11월에 엄청나게 상승했다. 이 소설을 안 순간 이더리움을 사서 2021년 11월에 팔았다면 돈을 벌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이 하루하루의 소음과 진짜 신호를 구분해낼 혜안이 있었을까? 7월에 판 후 9월 상승하는 차트를 보며 조급하게 추격 매수를 하진 않았을까? 떨어지는 그래프를 보고 최저가로 시장에 던지진 않았을까?
돈 없는 삶에 익숙해지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해 애끓는 것보다 내겐 더 맞는 것 같다. 내 정신력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내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