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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선 Apr 20. 2022

엄마와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노협주곡을 들으면서




엄마는 폴란드를 가고 싶어한다. 폴란드에 대한 호감은 전주에서 조성진의 쇼팽 피아노곡 연주를 본 이후 더 깊어졌다. 2021년에 열린 조성진 투어는 종종 뉴스에 나오곤 했는데, 조성진 소식이 TV에 나올 때마다 엄마는 아는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뿌듯해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폴란드가 나오자 엄마는 즐거워하며 말했다.

"내가 쇼팡 좋아하잖아."

쇼팽을 쇼팡이라고 발음하는 엄마는 TV에서 조성진과 바르샤바를 볼 때마다 친밀감을 느낀다. 엄마는 나의 클래식 공연 친구다.




엄마는 클래식 공연장에 가는 걸 좋아한다. 앞에서 연주자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꼭 10분 정도를 졸곤 한다. 손열음의 우아한 유령을 들을 때도, 박재홍의 브람스를 들을 때도 엄마는 딱 10분씩 잤다. 아무도 그런 엄마를 힐끔대지 않았다.


두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공연에 집중한다는 게 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60대인 우리 엄마에게도 피아노만 존재하는 정적인 무대를 바라보면서 두시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듯하다. 엄마는 졸거나, 기침을 하거나, 물을 마시거나, 발을 까딱댄다. 지난 번엔 공연장에서 조심스럽게 물을 마시려다 긴장해 사레들렸는데, 앞자리 관객이 사탕을 주셨다. 자주 기침이 나는 엄마는 다음부턴 사탕을 챙겨다녀야겠다고 다짐을 했고, 꼬박꼬박 사탕을 챙기고 있다. 




클래식 공연장엔 젊고 건강한 클래식 애호가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들도, 클래식을 좋아하는 노인도, 직장일을 하다 뛰어와 공연 1분 전 겨우 자리에 앉은 직장인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관객에게도 공연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연 전 휴대전화를 끄고 정시에 입장해 제 자리에 앉았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시체 관극'으로 묘사되는 수준의 강박적인 관람매너를 서로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을지, 나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몇년 전 뮤지컬을 본 후 무안한 경험을 해서 엄마와 더는 뮤지컬은 보지 않는다. 공연 중 엄마가 또 물을 마셨고, (두 시간 동안 갈증을 참을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또 긴장해 사레가 들렸다. (조용하고 긴장되는 분위기에 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엄마가 기침을 한번 하는 순간 앞자리 모든 사람들이 뒤를 돌아 엄마를 돌아보았다. 스무 개 가량의 눈동자가 엄마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챈 순간 그 자리가 가시방석 같아졌다...


매너라든지 젠틀이라든지 이런 관습법을 상대한테 요구하는 사람들한테 나는 항상 어깃장을 놓고 싶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 5월 5일은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맞는 어린이날. 집중을 할 체력이 있는 매너 있는 성인 관객에게만 공연장이 허락된다면, 그 매너의 기준에서 탈락하는 순간 나는 애호할 자유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오래 같은 자세로 앉아있는 게 버거운 어린이에게도(초등학교 수업시간은 40분이다...) 몸을 곧추세우고 의자에 앉아있는 게 힘든 장애인에게도,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운 공연장을 나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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