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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Jun 20. 2024

걸으며 사소한 즐거움 수집하기

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36

 2022년 6월 14일

 걷기 32일 차: 트리아카스텔라 -> 사모스 -> 사리아


 어젯밤에 더웠는지 아빠가 땀을 많이 흘렸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코스를 변경하기로 했다. 업다운 힐이 있는 산실 대신 사모스로 가기로 했다.

 도로 옆을 따라가는 길이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한적하다.

 길을 걷다 데크에서 뱀을 만나기도 했다. 생각없이 걷다가 밟았으면 큰일날 뻔. 늘 주의를 기울이며 걸어야 한다.

 작은 단차에도 폭포가 떨어지는 것처럼 우렁찬 소리를 내뿜는 물줄기. 길을 걷다보면 이런 작은 즐거움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런 사소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걷기가 지루할 수도 있다.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오니 거대한 나무, 신기한 나무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아빠는 고대의 숲을 걷는 기분이라며 좋아하셨다.

 내 기억보다 업다운이 조금 있었다. 슬슬 엄마도 무릎을 아파하시는 것 같았다. 천천히 걷긴 했지만 그동안의 피로감이 쌓인 게 느껴졌다.

<많은 벌통을 발견, 이곳에서 채집된 꿀은 왠지 맛있을 것 같다.>

 그렇게 몸이 지칠 무렵 저 멀리 사모스가 보였다. 이제 내리막길만 조심히 내려가면 사모스에 도착한다.

 얼핏봐도 웅장해 보이는 사모스 수도원이 보인다. 오늘은 이곳에서 사리아까지 택시를 타야겠다고 마음 먹고 천천히 내려갔다. 바에서 잠시 쉰 우리는 11시에 수도원 투어를 하러 갔다.

 수도원 투어는 수도사님이 직접 진행해주시는데 스페인어로만 진행된다. 언어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수도원 내부의 훌륭한 벽화나 공간만 봐도 만족스럽다.

 이곳에서도 택시를 부르면 사리아에서 온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그늘 벤치에 앉아 쉬면서 택시가 오길 기다렸다.

 사리아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주인 아주머니가 추천해준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성당 근처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골목 안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식사를 하고 늘 그렇듯 씻고 빨래를 하러 빨래방으로 갔다. 사실 숙소에서 빨래를 맡길 수 있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상주하고 있는 곳은 아니었기에 사소한 일처리가 쉽진 않았다. 근처 빨래방이 에어컨도 나오고 시원해서 좋았다.

<산타 마리냐 성당>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길에서 자주 마주치던 한국인 신부님과 신발끈 묶는 법을 알려주었던 한국 아주머니를 만났다. 다같이 저녁으로 피자를 먹으러 갔다.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먹으면 또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곳이 바로 이곳 순례길이다. 오랜만에 먹은 피자는 맛있었다.

 6월이라 그런지 숙소에서도 덥다. 대부분의 방에 에어컨이 없고 세 명이서 지내는 공간은 공립 알베르게처럼 공간 자체가 크지 않으니 더위에 더 취약한 것 같다. 내일은 좀 더 일찍 출발해봐야겠다. 이제 사람들도 더 많아질 거라 바에도 자리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이제 끝이 기다려지기 시작하는 단계다. 끝까지 무사히 걸을 수 있기를.



*숙소 정보: AQUA ROM SARRIA

 깔끔하고 내부 인테리어가 좋았다. 다만 주인 아주머니가 상주하지 않고 연락이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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