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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영 Oct 17. 2024

이수영의 [디지털 ‘제지소’]

제6편 / 제지소 : 송채원

이수영의 [디지털 ‘제지소’] 제6편 / 제 지인을 소개합니다.      


제지소(製紙所, paper mill)는 말 그대로 ‘종이 제작소’이다. 종이는 정보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혜의 숲’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와 같다. 이런 관점에서 인사이트를 주고받는 공간인 4차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제지소’를 열었다. 나의 지인 소개와 동시에 내가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그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소통하는 즐거움을 위해 시작하고자 한다.      

오늘 소개할 지인은 내가 처음으로 소개하는 여자 지인이다. 이름은 송채원, 채원이는 나처럼 부산 출신으로 2019년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한 여동생이다. 채원이에게는 특별함이 있다. 채원이는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친구이다. 6살 때 추락사고로 인해 시각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비장애인도 입학하기 힘들다는 특목고인 외고를 졸업했다. 그리고 현재는 사법통역사로도 활동 중이다. 채원이와 내가 친해지게 된 부분은 서로가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서, 관심분야나 활동이 그러했고, 뭔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의지를 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채원이는 어떻게보면 나와 달리 어릴 때부터 사고 한 번 안치고(?), 공부를 잘한 친구면서, 어떤 점에서 수재라고 할 수 있다. 채원이는 2016년부터 장애인 당사자로서, 유니버셜 디자인(베리어 프리) 정책 활동을 해왔고, 이를 제도와 정책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만들어왔다. 또한,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바꾸려고 노력해왔다.      


잠시 채원이의 이력을 소개하자면, 채원이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그리고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그리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라는 공공 분야에서 일했다. 최근에는 민간 분야로 옮겨서 마켓컬리에서 리스크 매니저로 일했다. 이외에도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소방산업기술원 등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최근에는 법제처와 청년정책협의체 등에서 사회활동을 해왔다. 이외에도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공모전, 소방청의 공공데이터공모전 등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위의 이력을 볼 때 채원이는 어떤 사람일까? 소위 말해 스펙에 미친자(?)이자 똑부러지는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아는 채원이는 진지하지만, 생각보다 허당끼 많은,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덤벙대는 스타일이다. 이력에 비추어진 것만 보면 워커홀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채원이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그리고 스스로 동기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 일을 너무나도 완전히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일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채원이는 의외로 노는 것도 좋아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으며, 누구보다 웃음이 많은 긍정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채원이와 함께 있으면 예상치못한 일들도 많다. 채원이는 자신이 맡은 몫은 다하려고 노력해서 늘 회사 생활이나 일을 똑부러지게 잘하면서 개인적인 만남에 있어서는 실수 투성이인 친구이다.      

채원이를 처음 만났을 때, 채원이가 늦잠을 자서 약속 시간이 5시간이 미루어진 적이 있다. 그 때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아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채원이가 어떤 친구인지 알기에 웃음이 났었다. 먼저, 본인이 먼저 약속을 잡고서 부랴부랴 일어나서 얼마나 당황했을지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지고, 또, 이 친구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다 마치고서 나를 만나러 오는 길임을 알기에 안쓰럽기도 했다.      


이후에도 채원이는 종종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기 의도와 다르게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늘 병원 신세를 지기에 속상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내가 보고싶긴 한데, 나는 늘 내가 편안해서 나를 그렇게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채원이 덕분인지 연애를 할 때 여자친구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화를 내기는커녕 급할 것 없으니 사고나지 않게 천천히 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조금 늦더라도 기다리는 시간에는 내가 해야할 일을 하면 되고, 또 기다린 만큼 더욱 반갑게 맞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최근에 이철우 변호사의 결혼식에 갔을 때, 신부가 이철우 변호사를 소개하는 말이 있었다. 헐레벌떡, 숨을 가쁘게 쉬며 달려오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철우 변호사와 같이 일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일을 갔을 때였다. 일도 늦게 마친데다가 비도와서 급행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 날이 당시 신부(여친)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카톡과 전화로 늘 미안하다고 금방 간다고 말하며, 오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이철우 변호사를 잘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늘 그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런 모습이 아마 신부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철우 변호사의 결혼식에서 헐레벌떡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신부의 표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 때 떠오른 사람이 바로 채원이다. 채원이도 헐레벌떡, 늘 숨가쁘게 달려오고, 자신의 삶도 그렇게 노력하며 살아왔다. 한번은 채원이와 만나기로 한 날, 채원이가 병원에 실려가서 약속이 취소된 적이 있었다. 사고 이후 몸이 약해져 늘 건강에 취약한 모습이었는데, 이런 컨디션으로 저런활동을 해왔다는게 정말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잠시 다른 이야기지만, 내 베프 중에는 고등학교 동창녀석인 성빈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야맹증으로, 역시 시각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증 장애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노력파였고, 공부를 잘했고,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이 녀석을 만나고 있으면 대부분 개소리(?)를 80%하지만, 말 속에 뼈가 있다고, 종종 임팩트 넘치는 말로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친구기도 하다.     

 

내 주변 지인들은 공통적으로 시각장애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 나보다 훨씬더 좋은 성과, 그리고 노력을 몇배는 경주해왔음을 알고 있다. 지금의 내가 겸손할 수 있는 것도, 결과에 상관없이 더 노력해야 함을 알려주는 것도 바로 이 친구들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 친구들을 통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 그리고 이를 정책과 제도, 연구로 이어지게 된 것 역시 감사하다는 생각 뿐이다. 


일례로 나는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위원회는 정책의사결정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만큼 전문가들이 많지만, 현장의 당사자들이 포함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나는 법령과 지침 등에 현장 전문가는 물론 장애인, 다문화, 탈북민 등 다양한 사회 계층의 국민 또는 분야를 대표할 수 있는 전문가를 위촉해야함을 규정 내에 반영할 수 있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일부 기관은 이 부분이 수용되어, 내 지인들, 그리고 전문 분야의 인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제안한 것은 나고, 어떻게 보면 나의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또는 그 친구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어려움을 몰랐더라면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성과이기에 오로지 나의 성과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어떤 관점에서는 상당히 이기적인 사람인데, 이런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게 내 지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특히, 기후변화 문제에서 재난으로 긴급 대피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취약한 계층이 바로 장애인들이 아닌지 고민해보는 계기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 때 내 지인들의 입장에서 오로지 생각해본다면 나는 모든 정책에 사회적 포용을 주요한 정책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채원이 얘기로 돌아와서 채원이는 늘 나보다 앞서 새로운 시각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보이지 않아서 새로운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그러하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것을 통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정책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그러하다.     


나는 보편성에 원칙을 두었지만, 그보다 더 디테일하지 못한 정책 현장에서 그 취약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딱 집어내는게 바로 채원이였다. 최근 포럼에서 토론을 할 때에 채원이의 모습이 딱 이러했다. (궁금하다면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 내에 송채원 패널의 발언들을 참조) 채원이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진정한 포용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시혜적 관점이 아닌 그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이다. 내가 채원이를 만나면서 느끼는 삶의 궤적은 그런 디테일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나는 2018년 조용호 과장님과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법령 기획 정비라는 과제로 ‘피성년후견인 제도’의 개선을 다루었었다. 핵심은 피성년후견인의 업무 능력과 사회적 대인관계 능력을 구분하고, 잔존 능력을 활용하고 당사자를 존중하며, 그들을 배제가 아닌 사회참여로 돌리는 것이 그러했다. 당시에는 정신적 어려움이 있지만, 특정 분야에 뛰어난 사람인 경우, 피성년후견인이라면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 직역에 종사할 수 없었다. 공무원이 되는 자격도 해당사항이 없었으며, 신체 능력이 뛰어나 경호업체를 차리려해도 오로지 피성년후견인 금지조항으로 시장진입 시도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해놨다.     


나는 이러한 법 조항이 비장애인도 합격하기 어려움 국가시험에 합격한 경우 그들이 피성년후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이 과도한 권리제한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모든 의사가 수술대에 있는 것은 아니며 동네병원에서 약을 처방하는 것도 의사가 하는 일이며, 간호사 등 전문인력이 함께 일하는 경우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민법이라는 사법의 영역이었던 본 조항이 공법 영역으로 들어와 확대 적용되고 있는 것 역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생각건대, 나는 보다 다채로운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 참여가 다양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취약성, 특히 정책의 실효성이 발휘되지 못하는 현장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나는 ‘법률’에 포커싱이 되어 활동을 해왔지만, 지역 밀착형으로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는 ‘조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역시도 채원이의 활동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이론 상으로 법률이 지자체에 적용되는 자치법규라는 형식의 조례가 아닌 나에게 체감될 수 있는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령이 조례인만큼 이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 채원이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채원이의 활동을 통해서 그리고 채원이의 생각을 통해서 나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배려의 태도를 배웠으며, 또한 성장하며 배워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최근에는 오랜 기간의 연애 이후 일정 시간 방황하기도 했는데, 이 때 나를 잡아준게 채원이였다. 너무 답답한 상황에서 채원이는 늘 내 옆을 지켜주었다. 채원이는 나보다 7살이나 어린데 가끔은 나보다 어른스러운 면모가 많아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늘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알고, 무엇보다 마음 씀씀이가 달라서 채원이와 함께 있으면 부족한 내가 한 층 더 성숙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특히, 채원이는 허당스러운 면모가 너무 많은데, 그것들이 웃음 포인트가 될 때가 있다. 종종 자신이 사회활동을 하면서 대쉬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채원이는 잘 웃고 성격이 좋은 편이라 자주 그런 것 같다. 그 때 자신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이를 피하려고 노력했는지를 보면 걱정이 되면서도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주어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리고, 과거의 실수(?)때문인지 나를 만나러 올 때, 내가 가장 오기 편한 곳, 우리 집과 가까운곳에 찾아와 주기도 하고, 서울이나 부산에서 미리 약속을 하고 만나려고 노력해준다. 내가 조금 자랑을 하자면, 내 지인들은 늘 내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준다. 진짜 행복했던게, 내가 늘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상황이 생기면 늘 내가 기차 시간에 허덕이기에 늘 기차역 인근에서 식사를 하고, 또, 나를 배웅해준다. 채원이는 늘 그랬다. 한번은 기차를 놓쳤을 때였나, 밥먹는 동안 채원이가 내 기차표를 예매해서 나에게 보내준 적이 있다. 이 때의 배려를 잊지 못한다. 살면서, 주로 내가 챙기는 편이었는데, 내가 오히려 배려받고 챙김을 받았다.      


올해 초의 일이었다. 채원이가 포럼 전날 미리 만나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다. 이것도 본인이 먼저 제안을 한 사항이었는데, 건강이 우선이니 웃어넘겼다. 그러다가 패널 한명이 펑크가 나서 채원이가 두 개의 세션에서 패널로 활약했다. 어떻게 보면 전날 나를 만나러 오지 않고 잘 쉬어서 컨디션을 잘 회복한 덕분에 급하지만 행사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채원이가 좀 더 많이 웃고, 좀 더 많이 기뻐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장애를 신경쓰지 않고 지금처럼 도전하며, 배울 점 많은 그리고 가끔은 실수도 하고, 같이 성장해나갔으면 한다. (참고로 이 친구도 내 인생을 바꾼 타인의 삶이라는 형식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궁금하다면 다음 기사를 좀 더 기대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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