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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빠람 Jun 22. 2016

나와 우리들의 행복을 찾아서

#02. Originally published on 2010.09.25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고3 마저도 행복했다.
처음이었다.
행복하지 않았다.
그냥 발버둥 쳐보고 싶었다.
가난했지만 불안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부러웠다.
절망스러웠다.
그래서 아직 희망은 있다.
나는 지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산과 들을 내 방인 듯 뒹굴며 자연과 함께 자랐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번진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고, 깨끗한 것들만 누리며 자랐다면(*사실 요즘은 도시가 시골보다 편리할 수는 있지만 안전하고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아마 지금처럼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없었을지 모른다. 물론 어린 나이에도 나름의 고민이 있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가슴 시린 첫사랑의 아픔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의 하루하루는...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당시에는 미래에 대해 딱히 불안해 할 것도 없었고, 부끄러웠을 법도 한 시골의 천막 집에 살면서도 집에 오는 길은 항상 즐거웠고 그 길에는 때에 따라 새로운 볼거리들과 모험거리들로 가득했다. 시내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부러웠던건 학교랑 가까워서 늦게 일어나도 나처럼 산비탈길을 30분 가량 내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말고는 없었다. 나의 부러움을 샀던 유일한 친구들은 분식집 딸과 문방구집 아들이 전부였다. 심지어는 고3 수험생 시절에도 나에게는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보다는 일정 시간의 정상적인 수면이 더 중요했다. 새벽 1~2시 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10시에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챙겨 놓으신 오예스를 먹노라면 대학 진학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 보다는 당장 입에 문 오예스와 곧 다가올 수면의 달콤함에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며 바보같은 미소를 짓곤했다. 그렇게... 

고3 마저도 행복했다

엉겁결에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고 나서도 인생에 1년 뿐인 캠퍼스에서의 신입생이 느낄 수 있는 낭만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살았다. 다들 신입생 때는 나처럼 신나게 노는줄 알았다, '1차 학사경고'라는 문구가 찍히 1학기 성적표가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이었다. 


이 사회의 진정한 '경쟁'이라는 것은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교 2학년 복학생이 되어서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경쟁사회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것 앞으로 나에게 펼쳐질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 때도 아마 그 때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려서 부터 차근차근 경쟁에서 살아남는 '생존법'을 익혀왔던 친구들은 이러한 현실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승자'가 되기 위한 길을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80~90년대의 것을 쫒던 신입생 시절부터 말이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갖는 치열함도 열정도 없어보이는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나도 다른 이들과 같은 '보통 사람'의 반열에 오르고자 그들의 생활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업을 위해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가 된다는 것은 굳게 먹은 마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어느정도의 조건을 충족 시켰을때 이미 다른이들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에 올라가 있었고 기업의 기준 역시 덩달아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끝이 없는 경쟁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기업이 원하는 정형화된 인재상 (주로 창의력과 인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 이라는 틀에 내 모습의 일부를 깍아내고 일부는 부풀려서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었다. 

행복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법으로 소정의 성취를 맞본다고 하여도 그 이후의 삶이 결코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기업이 맞춤형 인재를 원하듯, 구직자도 맞춤형 기업을 원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말도 안되는 기업 매칭 공고를 올린 적도 있다. 결과야 뻔하지만 그냥 발버둥 쳐보고 싶었다.


나는 행복을 찾아 머나먼 스웨덴까지 와야했다. 아니 어쩌면 지속가능한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학문을 통해 일단은 결코 지속가능해 보이지 않는 나의 삶의 지속가능성을 찾아보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가진것 없는 나의 지극히 인간적인 배움의 욕구와 원초적인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기관을 나에게 여권을 발급해 주는 나라가 아닌, 생전 와본적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내 고향에서 수천킬로 떨어진 스웨덴이라는 낯선 나라에서나마 찾았다는게 다행스럽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나이 서른에 만원 한 장 쓰는데도 지출계획을 따져가며 고민해야하는 가난한 유학생이지만 먹고싶은 것 맘껏 먹고 소비할 수 있는 한국의 직장인들이 아직은 크게 부럽지 않다. 


가난하지만 불안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유학생활을 시작했던 Raby 37, 숲 속 오두막 집

일단, 나를 공짜로 교육시켜주는 이 나라 스웨덴의 젊은이들은 나를 포함 한 내 고국의 젊은이들과 달리 특별히 가진것 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들이 우리 청년들보다 높은 생활수준과 가진게 많아 보여서가 아니다. 개개인의 속 사정을 다 알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은 좋은 직장, 높은 연봉에 목메지 않아도 그럭저럭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고 딱히 비교할 대상이 없다. 그저 자신이 배운 것을 활용하며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기업의 간판이나 연봉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실제로 회사와 연봉이 그들의 개개인의 가치에 대한 척도가 되지도, 그들의 기본적인 삶의 수준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부러웠다
자전거를 타고 눈 길을 20분 정도 달려야 학교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는 나라의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을 홀로 책임지고 살아가야 하는 나라의 시민들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의 사람들은 국가로 부터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보장받기 때문에 삶에 대해서 특별히 불안해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것이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이어져 사회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이 곳의 사람들을 보면 이러한 보장은 삶의 여유와 창의력으로 이어지고 있고, 이를 통해 사회는 더욱 서로를 신뢰하는 안정된 상태로 발전하고 있었다. 고국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경쟁을 해야하고 수능 점수와 영어 실력이 평생의 삶을 좌우한다고 믿는 부모들에 의해(슬프지만 실제로 그 사회에서는 그들이 옳다) 치열하게 싸우고 이기는 법을 어려서부터 익혀가고 있다. 결국 사회에 잘 적응하고 끝까지 살아남는 이들은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싸움에서 이기는 법만 배우면서 자란 아이가 성장하여 우리의 경제, 사회, 환경을 주무르는 세상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혹시라도 그런 아이가 자라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어쩌겠는가. 

절망스러웠다

불안감이 높은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 수준도 낮다. 길을 걸으며 미소를 지을 마음의 여유도 충분하지 않을 뿐더러,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누군가를 이겨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경쟁사회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모습일 수 있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 개개인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서로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든 사회의 잘못인가? 개개인의 모여 사회를 이루기에, 그리고 우리는 투표권을 갖는 시민이기에 우리를 사회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결국 지금은 불안은 너무 먼 조상까지 탓할 것 없이, 과거의 우리들의 무관심, 혹은 잘못된 결정에 따른 결과라고 봐야겠다. 

그래서 아직 희망은 있다


스웨덴 사회에도 어느정도의 빈부의 격차는 있지만 실제로 그 차이가 크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부를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누가 잘 살고 못 살고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대학교에서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뒷자리에 우유 박스가 묶인 허름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모습을 이상하게 보고있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나는 지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Originally published in jmuk.tistory.com on 2010-09-25

http://jmuk.tistory.com/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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