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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Jan 03. 2024

자유로운 아이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

삐삐는 힘이 셌다. 못하는 일이 없었으며 친구들은 삐삐를 좋아했다. 양 갈래머리에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삐삐. 삐삐를 방영하는 시간이면 조용히 텔레비전 앞에 앉았는데

 

<삐삐 롱 스타킹>의 저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전기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의 제목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 <미오, 나의 미오>의 한 구절이다. 자유롭게 노는 아이 삐삐를 탄생시킨 저자는 안정감과 자유가 인간이라는 식물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한 필수 요소라 주장했다. 독일서적협회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세상 그 무엇도 어린이가 열 살 이전에 받지 못한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속에는 첫째 아이 라르스를 낳은 후 떠나야 했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픔이 담겨있을 수도 있다.(라르스는 위탁모와 생활하다 조부모의 농장으로 옮긴다. 네 살부터 어머니와 지냈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아들딸이다.

아이들은 당신을 거쳐서 왔지만, 당신한테서 온 것은 아니다.

비록 지금 당신이 아이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그들이 당신의 소유는 아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지만 당신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당신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는 있지만, 영혼의 집까지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니까. 당신은 꿈에서조차 갈 수 없는 곳에.

당신이 아이들처럼 되려고 애써도 좋으나,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애쓰지 말라. 삶이란 결코 뒤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는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에 수록

 

아이들은 빌려온 존재와도 같아서 매일 최선을 다해 사랑과 존중으로 대해야 한다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칼릴 지브란의 글이 실린 신문 지면을 오려낸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가계부 뒷면에 아들 관찰 일지를 적기도 한다. <삐삐 롱 스타킹>은 출간 전 이미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였으며 딸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직접 책으로 만들기도 했다.

 

두 아이(라르스, 카린)를 키우고 주변 아이들을 접하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아이들의 세계에 대해 알아간다. 아이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교훈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서)

 

책을 읽으며 내 한 부분 죽어버린 이야기를 만난다. 나는 항상 내 상상을 터무니없는 일로 치부했다. 감정적이지 않게 노력했으며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기 위해 연습했다. 사는 것이 매번 연습 같았다. 맘충이라는 단어를 듣지 않기 위해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제지하기 위해서 고심하고 찡그리고 소리쳤다.

 

슬픈 이야기가 아닌데 눈물이 맺혔다. 내 죽어버린 이야기들과 작은 공간에서 까치발을 들며 생활하는 어린이들이 삐삐는 되지 못할 것 같아서. 자유로운 아이는 책 속에만 존재하는 듯싶어서. 감시자들이 여기저기 넘치고 어린아이에게도 어른과 똑같은 사회성과 예의가 요구된다. 모두가 피해자라서 숨죽이며 존재하는 듯한 시기.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

 

“내 마음 한구석은 고집스레, 쓰라리게, 지독하게 외로워. 아마 언제나 이럴 거야.”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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