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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Apr 10. 2024

아이의 삶

초록 반바지 사이로 손이 들어왔을 때 S의 방이었다.  창문으로 비쳐드는 달빛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커다란 짐승이 웅크려있다. 커다란 검은 짐승이 내 옆에. 다리를 오므리고 S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눕는다. 손은 짐승에게로 돌아간다. 숨죽인다. 기척이 없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닫힌다.

 

나 이제 S 집에서 안 잘 거야.

왜?

그날 있잖아. 빨리 집으로 돌아간 날

그래, 일어나 보니까 너 없더라.

자다가 깼는데  S 아빠가 날 안고 있었어.

정말?

응, 그래서 울면서 집으로 갔어.

 

동그란 O의 눈이 더 동그래진다. 놀란 심정이 전해진다. 열두 살치고 O의 발육상태는 남다르다.

 

엄마가 시골에 갔으니 우리 집에서 자자는 S의 말을 거절하지 않은 것은 외양이 들어간다. O처럼 예쁘지 않으니까, 여성스럽지 않으니까. 일하는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을 하는 S의 부탁을 모른 척하고 싶지 않다. 밤에 함께 있으면 집안일이나 다른 식구들의 방해 없이 원 없이 이야기하며 놀 수 있다.

 

피곤에 절은 허스키한 목소리도, 그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도. 당연하다는 듯 불만 없이 집안 살림을 해내는 것도, 과자가 두 개 있으면 하나는 꼭 나를 주던 착한 심성도. 그때 역시 나는 눈 쌓여 곧 부러질듯한 나뭇가지였고 S는 해였다. 매일 식구들에게 맞아도 나를 보며 얼굴에 가득하던 미소. 우리 집에서 자자는 말을 거절할 때 S의 표정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다.

 

S의 엄마가 시골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내가 있으면 S의 가족은 S를 때리지 않는다. S의 엄마가 저녁을 차려주고 고구마나 튀긴 밀가루 같은 간식을 방으로 들여 준다.

 

엄마가 시골에 간 주말에 S가 친구들을 부르는 것은 짐승의 존재로 인해서 일 수 있겠다, 막연히 생각했다. 밤이라는 어두움 속에서 아이라는 것을 딸이라는 것을 구분해 내지 못하여 짐승이 되었을 테니. 초록 반바지를 입고 잔 밤 짐승의 존재를 S에게 말하지 않은 것처럼 S 역시 나에게 짐승의 존재에 대해 말해온 적은 없다. 알았다 하더라도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우리는 아이였다. 서로에 대한 애정만으로 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는. O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 간 날, O의 엄마는 O를 혼냈다. 나는 엄마에게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동네 남자아이들이 주먹으로 얼굴을 치고 발로 차더라도 침묵을 지켰듯이 멍든 얼굴로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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