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 전시전 후기
"곰돌이씨, 이런 아트북에 관심이 있으면 나중에 서울 아트북페어 보러 가봐요."
이 이야기를 올해 초순, 출판편집스쿨을 다닐 때 들었던 거 같은데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 내게 이런 아트북페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같이 수업을 듣던 동기분이셨다. 그때 워크룸프레스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트북페어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당시 설명을 들었을 때는 막상 아트북이 뭔지도 긴가민가했기에 교보문고에서 봤던 특이한 디자인의 도서들이 아트북인가? 정도로만 이해하며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트북, 수업이 끝난 이후 여러 북페스티벌과 아트북페어를 다녔지만 내게 아트북이란 아직도 모호한 존재다. 아름다운 책, 장정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 독특함을 선보이는 책, 때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책의 형상을 뛰어넘는 책. 사실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이 모든 개념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간 본 게 많아서일까. 이제는 무언가 머리에 그려진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서울 아트북페어는 같은 아트북페어였던 인천 아트북페어와 비교했을 때 더욱 아트북페어스러운 축제였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온 독립출판사들도 인천 아트북페어보다 더 아트북에 가까운 작품들을 많이 가져왔고, 더 재미있는 형상의 책들도, 재미있는 내용의 책들도 많았다. 오늘은 토요일날 방문했던 그 후기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서울 아트북페어는 북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열렸다. 주말이라 그런지 적지 않은 인원들이 방문했는데 이번 행사는 업계 사람들, 혹은 책에 관심이 깊은 독자들이 주목할만한 행사여서 그런지 가족 단위 방문객보다는 개인, 단체, 혹은 커플 단위의 방문객이 주를 이뤘다.
서울 아트북페어는 인천 아트북페어나 다른 북페스티벌에 비해 공간을 넓게 쓰고 있었다. 일부 북페어의 경우 부스와 부스 사이 관람객들이 왕래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좁아 사람이 조금만 몰려도 움직이기 곤란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런 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도 비교적 널널하게 다닐 수 있었다는 점은 굉장히 좋았다.
이번에 나온 작품들은 사진집, 애완동물, 음악, 미술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이 많이 나왔다. 인천 아트북페어에서 봤던 수많은 애완동물과 관련된 서적들, 그리고 굿즈 중심의 판매 방식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주제의 책이 주가 되는 느낌이어서 더 구경할 거리는 많았다고 생각한다. 주제가 한쪽으로 쏠리면 이 북페어가 누구를 주 관람객으로 삼고 있는지, 어떤 연령대의 트렌드를 쫓고 있는지는 해석하기 쉽지만 반대로 구경거리가 줄어든다는 말과 같으니.
그리고 또 하나 호평할만한 점은 외국인들도 많이 참가하는 축제였다는 점이다. 해외에 적을 두고 있는 출판사나 아예 외국인들이 부스에서 홍보를 하고 있는 출판사들, 도서의 컨셉도 국내와는 색이 다르지만 그렇기에 도리어 신선하다고 할 수 있는 책들을 가져와서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장르의 저변을 확장하는 부스 배치는 좋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관심이 갔던 부스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일단 이런 북페어에 늘 얼굴을 비추는 늘 보였던 부스들은 이번에도 참가했다. 이런 아트북페어에서 빠질 수 없는 워크룸프레스라던지, 북페어만 가면 '이번에는 부스 입점하셨을까.' 기대감과 함께 눈으로 찾게 되는 닷텍스트라던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재미있는 책을 만드는 돌고래라던지.
익숙한 부스들에 대한 이야기는 매번 입 아플 정도로 떠들었으니 다른 부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단 눈에 들어온 부스는 '임시제본소'였다. 임시제본소도 꽤 경력이 있는 독립출판사고 다른 행사에서도 종종 참여해서 책을 몇 번 봐왔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부스에 앉아계시는 작가님이 적극적으로 홍보하려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으셨고 볼 거면 봐라, 하는 느낌으로 편안히 앉아계셨다.
하지만 사진집, 일러스트와 같은 디자인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는 다른 도서들에 비해 작가님의 기본 필력 자체가 굉장히 좋은 거로 알고 있어 꾸준히 수요가 있는 부스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점심이 조금 지나자 부스 근처에 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작가님의 책을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 기웃기웃 지나다니며 봤던 책은 『극장칸』이라는 도서였는데 기차가 나오는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써놓은 책이었다. 취향은 맞았지만 많은 책을 살 수 없는 백수인지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라딘을 통해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임시제본소는 알라딘에서도 책을 팔고 있으니 여기가 아니면 못 구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는 장점도 있고.
부스 근처를 걸을 때 재미있는 기획이라며 사람들이 호평했고 나도 관심을 가졌던 기획은 『서울의 길거리 의자들』이라는 사진집이었다. 예전에 썼던 서평 『초예술 토머슨』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거기에서 주제로 다뤄지는 노상관찰학을 펼쳐보는 기획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기획을 보니 인천 아트북페어에 갔을 때 자신 주변의 라바콘을 관찰했던 사진집을 봤던 기억이 난다. 아트북페어마다 이런 노상관찰학에 대한 기획은 꾸준히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너무나도 익숙한 주위에 이름을 붙이는 행동들, 이게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하나의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네잎 클로버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위에 있는 세잎 클로버들을 사랑하는 시선도 필요하다.
그래서 주인장은 뭘 샀는가? 결국 실용 서적을 샀다, 『북디자인 101』. '정제소'에서 나온 신간이라고 한다. 구간에서 내용을 추가했는데 도저히 단가를 맞출 수 없어서 단가를 조금 올리셨다고 하시던가. 이번 축제가 디자이너들을 위한 축제였다고 말한 이유는 이런 디자인 관련 출판사가 적지 않은 수로 포진되었기 때문이다. 켈리그래피부터 타이포그래피, 북디자인 장정과 내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긴 책들을 가져온 출판사가 꽤 있었고 그중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 수준의 출판사도 있었다.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간 썼던 서평을 모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보기 위해. 내지 디자인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고 포트폴리오를 짜보려는 생각에 샀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취업 자체가 잘 안되고 있으니 이런 부분이라도 해서 잘 되게 해야지... 그리고 다른 분에게 이 책에 대해 설명해주신 편집자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번역도 직접 하고, 책 계약도 직접 따내셨다고 하셨다더라. 아, 제 2외국어를 배워야하나.
그 외에는 후원사로 참가한 이로시주쿠가 있었다. 만년필 잉크와 만년필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예쁜 색이 많아서 나도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하고는 했다. 당장 마음에 드는 색도 없었고 자주 쓰지 않는 만년필에 쓸 돈까지는 없어서 결국 돌아섰지만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눈이 갈법한 부스였기에 앞은 꽤 인산인해였다.
북서울 시립 미술관 지하 1층에서 하고 있는 전시회, 이번 전시는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이라는 제목의 비누 공예 전시회였다. 나는 이번 전시회가 무료 관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고, 나보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은은한 비누 향이 퍼진다. 그리고 내려가면 바로 보이는 게 하얀 천사상, 석고상인가 생각을 하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게 되지만 이후 다른 천사상을 만나면 생각은 급변한다.
아래에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비누로 만들어진 미술품들이다. 처음 보이는 천사상은 관객들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기 위해 하얀 석고상을 먼저 선보이고, 이후에 보이는 천사상들은 다양한 색의 천사로 석고상이 주지 못하는 매력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천사라고 하면 관람객들은 기독교의 천사만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그리스 로마 신화, 다른 종교에서 등장하는 천사처럼 다양한 천사가 존재하기에 이런 포인트를 여러 방면으로 표현하려는 시선이 돋보였다.
재미있는 부분은 액자 안에 전시된 작품이었는데, 액자는 평범하게 프레임을 사용했다 생각했더니 인근에 있는 큐레이터분께서 액자까지 모두 비누라고 설명해주셨다. 즉 프레임 느낌을 최대한 내기 위해 황금색 비누를 이용해 프레임을 짜고 그 안에 작품을 배치했다는 것. 하나하나 손으로 깎아서 프레임을 내셨을텐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고 큐레이터분께도 설명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저 중간에 있는 추상예술 작품이었다. 비누를 녹여서 틀에 부워 추상예술을 한 방식인데 이번 컨셉이 천사여서 그런지 하얀 비누는 빛, 파란 비누는 비둘기, 배경은 성령의 불로 보여 한편의 종교화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이건 내 자의적인 해석이지만 이번 컨셉과 어울리는 색 배치의 추상예술이 아니었나 싶다.
화장실에도 비누로 만든 공예품을 배치해놓고 아이들이 손 씻을 때 자유롭게 만질 수 있도록 유도를 했다고 하시는데, 아이들에게 미술관이 마냥 어려운 공간이 아니고 때로는 함께할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어필하는 측면에서 이번 전시회는 좋은 기획과 의도를 지닌 전시회가 아니었나 호평하고 싶다.
이번 행사에 방문해서 구경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행사였고,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집에서 가는데 1시간 50분, 오는데 1시간 50분, 도합 3시간 30분이 넘는 거리인지라 많은 시간을 두고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춘의역에서 출발하니까 한 번도 지하철을 갈아타지 않고 자리에 일찍 앉는다면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다는 점? 그게 아니어도 집중한 채로 책을 읽으며 갈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행사장에 가는 길에 읽은 책은 『자연스러운 건축』이었고 돌아오는 길에 읽은 책은 『1995년 서울, 삼풍』이었다. 『자연스러운 건축』의 서평은 근시일내에 바로 쓸 생각이다. 맨 처음에는 이번 독서 모임 북 큐레이터가 나라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읽은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쓰고 싶은 말이 떠올라서 서평으로 따로 다뤄보려고 한다. 그리고 『1995년 서울, 삼풍』은 공공장소에서 읽지 않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당시 사고 피해자 가족들, 도왔던 이들, 관계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인데 덤덤한 목소리와 대비되게 그 안타까움의 감정이 밀려와서 가만히 읽고 있으면 살짝 글썽이게 되는 책이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금방 읽고 서평을 써보려고 생각중.
그리고 부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아직 감기가 낫지 않아 목소리가 엉망이다. 약을 먹고 있다보니 컨디션이 늘 좋은 편도 아니고. 그래서 북페어에 가고 나서 구경을 하다 점심 먹고, 약도 먹고, 다시 장소에 방문했는데 몸이 좀 나른하게 눌려서 일찍 돌아온 감도 없잖아 있었다. 기왕이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은데 이래서야 다음 주에는 검도를 갈 수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