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온 형님부터 막내 동생까지
벌써 10월이 찾아왔습니다. 긴 연휴가 시작되었어요. 저 같은 백수는 이번 연휴에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미뤄둔 글을 하나씩 쓰기로 했습니다. 읽은 책 이야기도 좋고, 최근에 본 영화 이야기도 좋고('어쩔수가없다'를 보고 왔는데 아마 이에 대한 이야기도 하나 쓰지 않을까 싶네요.), 최근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고... 벌써 이렇게만 썼는데 3편이네요?
오늘은 그 첫 이야기입니다. 이번 연휴 전후로 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돌아온 정대리, 아는 형부터 시작해 추석이라고 잠시 올라온 막내 동생, 그리고 연락이 오는 옛사람들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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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온 형님하고는 인연이 꽤 깊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들어갔던 글쓰기 커뮤니티의 카페장이셨던 형인데 그때부터 이어진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 내려온 거죠. 당시의 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어요. 컴퓨터가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PC방이 유행처럼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아직 책을 더 좋아했기에 수업이 끝나고 PC방에 가기보다는 도서관에 들르고는 했고, 그게 아니라면 주위 친구들과 뒷산에 오르면서 장난을 치는 아이였지요.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이 커뮤니티에 들어간 이후부터였습니다. 판타지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아이는 더 나아가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 했고, 소망이 그를 그 자리로 이끈 거지요. 제가 처음 들어간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신기했습니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소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커뮤니티에 이야기 꽃을 피웠거든요. 당시의 제가 그 사이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그냥 제가 읽었던 책 이야기를 나누며 귀동냥으로 듣고는 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카페장이었던 그는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그 자리를 저에게 물려줍니다. 그래서 4대째로 이어진 카페장이 제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후에 다른 이에게 카페장 자리를 물려줬냐고 물으신다면 안타깝지만 이후에 해당 카페가 있던 사이트 자체가 망해버려서 제 대를 끝으로 카페는 망해버렸고, 당시 연락이 이어졌던 사람들하고만 카카오톡을 통해 안부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여기 있는 모두는 아니어도 글에 관심을 가진 일부는 글밥을 먹고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중 글밥을 먹고살려고 했던 사람은 단 한 명이었고, 그마저도 잘 풀리지 않아 끝내는 그 길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공학자, 프로그래머와 같은 글밥과는 사뭇 거리가 먼 사람들이 되었죠.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제게 잘 지내고 있냐고, 일은 시작했냐고 물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아직 새 일을 시작하지 못했어요. 이제는 정비사 일도 알아보고 있는데 저를 찾는 곳이 없어서 쉽지 않더라고요. 사실 그래서 형을 만나러 나갈까 말까,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결과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면 나가서 그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나 형은 모든 자리가 끝나고 제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지금 자기 나이쯤 되어서 주위 친구들을 만나면 전부 가족이 있어서, 아이가 있어서, 만나주지 않거나 만나도 점잖게 잠깐 커피 마시는 정도가 전부라고. 아직도 마음 놓고 편하게 놀 수 있는 사람은 젊은 우리밖에 없다고.
생각해 보면 제가 중학생이던 당시 그는 대학생이었으니, 이제 30대 중반을 넘긴 그의 주변에는 가정을 꾸리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즐겁게 놀기 위해 만나도 다들 머릿속으로 집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거고, 버스 막차가 올 때까지 놀 수 있는 사람들도 없었겠죠. 그리고 이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제 장점인데, 제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부터 노래방에서 쇼하는 것까지 노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거든요. 그러니 그날만큼은 즐겁게 즐기다 가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 모임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또 모르겠습니다. 저는 글쓰기 카페의 인원들 중에서도 대구에서 가끔씩 술 마시던 사람들을 대구패밀리라고 따로 또 묶어서 이야기하고는 합니다. 대구에서 술을 마시던 대구패밀리는 이제 서울, 경기, 울산, 브라질,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만나고는 하니까 아직은 괜찮겠지요. 하지만 내년, 내후년이 되면서 가정을 꾸리고 점점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늘었을 때도 지금처럼 편하게 만날 수 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연락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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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막내가 집에 올라왔습니다. 막내는 저희 집의 자랑이에요. 저보다 똑똑한 아이였고, 선생님이 되기 위해 정진하고 있는 동생이니까요. 동생은 지금 선생님이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준비하고 있는 지도 조금 되었어요. 곧 올해 시험도 있다고, 아버지는 제게 귀띔을 주셨고 저는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 동생을 맞이하러 차를 끌고 나갔습니다.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어요. 그냥 내가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했고, 공항 라운지에서 일했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새벽을 뚫고 공항으로 가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고 우리 점심으로 햄버거 먹을까 하는데 같이 먹으면 어떻겠냐, 그런 쓰잘 때기 없는 이야기들. 동생은 크게 웃지도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귀찮지는 않은 듯 제 이야기를 들어줬습니다.
사실 그런 아이였어요. 어린 시절부터 말 수가 많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으면서도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아이였어요. 저와는 달리 운동도 나름 좋아하던 아이였고 그 시절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학생들의 수준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공부도 꽤 잘하는 아이였어요. 그러니 주위에서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여학생도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남 모를 시리어스한 매력이 있는 동생이었던 셈이죠.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엄청 동생을 아끼는 사람처럼 보이려나요.
그는 집에 와서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랑 사고 싶은 물건에 대해 몇 마디 나누고는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죠. 저는 멀리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음날 그가 집에 갈 수 있도록 차로 배웅을 나갔습니다. 저는 언젠가 그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리라 믿고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제 길을 가고 있지 못하니 남 이야기라고 쉽게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우직한 그이기에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그가 선생님이 되지 못한다면 그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저는 막내가 군대에 입대할 때 굉장히 무섭고, 또 두려웠던 기억이 나요. 제가 있었던 군대는 위험한 곳이었거든요. 상하 위계질서를 빌미로 사람을 하대하고, 괴롭히는 곳이었거든요. 그래서 동생이 힘들지는 않을까, 나쁜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걱정했던 거죠. 하지만 그는 제 걱정과는 달리 아주 평범하게 군생활을 마무리했고, 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즐거운 군생활을 보냈다고 해요. 제 걱정은 기우였던 셈이죠.
그가 선생님이 되지 못해도 아마 그는 또다른 자신의 길을 찾아 걷게 되겠죠. 제 걱정과는 달리 훨훨 날아 더 좋은 곳으로 떠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언제나 그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못난 형이라서 저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생겨난 마음일 거에요. 저처럼 한동안 방황하지 않을까, 저처럼 군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저처럼 새로운 꿈때문에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문장을 썼다 지우다 썼다 지우다, 주저리주저리 떠들던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고민하다 끝내 이렇게 닫아봅니다. 그래도 그는 저보다 잘 헤쳐나가겠죠. 그가 자리잡을 때까지 저는 뒤에서 밀어주고 응원하다 언젠가 그의 바운더리에서 떠나겠지만, 그때 동생이 저를 좋은 형이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