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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Sep 23. 2024

30.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외 1권 - 문학동네

1913년 세기의 여름 - 문학동네

 서평에 쓸 책들을 읽는 동안 여름을, 가을을, 여름을 보냈다. 주위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며칠 전만 해도 가을이었는데 벌써 여름이 왔다고. 확실히 20도 남짓의 기온까지 떨어졌다가 추석 전후로 30도 위까지 치솟는 비정상적인 날씨기는 했지만, 이런 농담이 진짜 통하는 세상이 오다니.


 그리고 실제로 이 책들은 꽤 오래 붙잡고 있었다. 여름을, 가을을, 여름을 보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거의 이번 달의 절반 내내  잡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유명인사의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10년 전에 나왔던 『1913년 세기의 여름』은 당시의 예술사를 보여주는 좋은 예술서라고. 자신이 책을 추천한다면 꼭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고. 당시에는 그 인물이 꽤나 저명한 인물이었어서 믿음을 가지고 이 책을 처음 마주했던 거 같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그 말은 조금 틀렸다고 말하며 몇 가지 짚고 가려고 한다.


 하나, 이 책은 단순한 예술서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당시의 시대상을 관통하는 예술서의 탈을 쓴 역사서에 가깝다. 이는 아마 저자가 생각했던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둘, 그렇다고 예술서로서의 가치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폭과 범위가 너무 방대하고 때로는 모르는 인물들이 너무 가득하게 이야기를 채워 괴로울 정도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고봉밥이라는 말이다.

 셋, 10년 전에 나왔던 『1913년 세기의 여름』과 최근에 출간한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은 비슷한 전개방식을 채택했지만 조금 다른 성향을 보이는 책이다. 그러니 두 책이 똑같거나 많이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 접근하면 더 괴로울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지만 결국 두 책을 엮어서 서평을 쓰려고 했던 내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실로 괴로움 가득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들의 이야기를 묶어서 빼곡히 적으려고 한다. 오늘도 분량 초과다.


 1913년, 그리고 1929년부터 1939년까지. 혹시 이 년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상할 수 있겠는가? 의외로 이 년도는 세계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다. 바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직전 연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년도 배치부터 이야기의 전개까지 독자에게 어느 정도의 지식풀을 가지고 접근하기를 기대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부족한 내 지식을 간단하게 짚어가면서 이야기하자면 대충 저자가 생각하는 최저의 지식풀은 이 정도다.


 벨 에포크, 당시의 문예사조, 모더니즘 문화의 전조, 이 정도에 대해 간단하게 알면서 접근하라. 1913년이라는 년도의 배치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있다. 여기까지 알았다면 첫 책 『1913년 세기의 여름』을 펼쳐도 좋다. 그래야 처음 이야기의 첫 포문을 여는 루이 암스트롱의 이야기가 이해가 갈 테니까. 위 도서는 1913년의 1월부터 12월까지의 일들을 월별로, 하지만 날짜는 산발적으로 배치해서 300명이 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흐름대로 풀어나간다. 루이 암스트롱, 쇤베르크, 프로이트와 융, 카프카, 수많은 인상주의 화가들, 마르셀 뒤샹, 로뎅과 같은 예술가들, 거기에 히틀러와 스탈린, 당신이 아는 예술, 철학, 유명인들이 당신에게 삶의 단면을 훔쳐보는 것이다.


 이런 전개방식은 독자의 입장에서 다소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간단히 생각하면 어떤 소설 작품을 읽는데 거기에 인물이 300명 정도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비슷한 시간축, 비슷한 공간축을 공유할 뿐인 인물 300명이 각자의 시간선에서 무차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 이렇게만 설명하면 너무 괴롭고 재미없는 책처럼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괴로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어쨌든 이 책을 펼친 독자는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니. 그렇다면 그냥 그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편승하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힘을 주면서 일일이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이런 전개는 다소 생소하고 낯설고 때로는 독자를 괴롭게 하지만 반대로 시대의 변화를 유의미하게 느끼게 해준다. 실제로 1913년은 이미 문화는 포화상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넘치는 상황이었다. 다들 돈이 넘쳤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시대였다. 미국은 끊임없이 돈으로 금자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고 예술이 가장 높은 곳부터 가장 낮은 곳까지 보급이 되어 있는 시대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전쟁의 전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1월부터 12월까지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전쟁이라는 키워드가 머리 한구석에서 점점 커져간다. 마치 공기가 계속 주입되는 풍선처럼. 예술가들은 서로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정계에서는 이미 전쟁에 대한 밑준비를 계속 쌓고 있는 것이다.


 첫 책은 루이 암스트롱이 포문을 열었으니 루이 암스트롱으로 다시 이야기가 끝난다. 도둑이었던 한 아이는 이제 트럼펫으로 꿈을 꾼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리고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1929년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으로 넘어간다. 다음 책은 조금 더 난해하다. 목차는 1933년 전, 1933년, 1933년 이후로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서 1933년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작가는 다시금 목차에서 독자가 가지고 가야 할 최소한의 지식을 짚으면서 넘어간다. 바로 나치의 집권 시기이다.


 이제 배경은 유럽 전반에서 시작해 독일로 포인트를 좁혀나간다. 시작은 전작보다 더 난잡하고 괴롭다. 더 많은 인물들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불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여성 문화의 대두와 기존 젠더의 틀에 대한 도전, 양성애와 동성애가 공공연해진 사회 문화의 흐름. 이런 이야기가 약 300페이지가량 유지되니 전작과 똑같이 생각했던 독자라면 조금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작보다 이야기가 더 정제되지 않은 느낌으로 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재미있는 흐름 하나를 캐치할 수 있다. 바로 나치의 집권 전, 직후, 후의 문화 변화 폭이다.


 신여성 문화의 대두 이후로 여성은 가부장적인 남성 문화를 벗어나 자유로운 각자의 객체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한다. 그들은 더 이상 가족이라는 형태에서 남성을 보필하는 배우자 역할을 벗어나 스스로 일어서는 인물이 되려고 하고, 그런 흐름 속에서 남성이 없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까지 꿈꾼다. 실제로 성공할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드는 인물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꿈은 나치 집권기 이후로 완전히 박살 난다. 나치 집권,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장검의 밤(작품에서는 큰 검의 밤이라고 번역했는데 적어도 큰 칼의 밤이나 장검의 밤으로 번역하면 좋겠다)을 지나면서 게슈타포들은 수많은 예술가들과 정치, 철학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씌워지는 가장 많은 죄목은 단 하나다. 풍기문란, 동성애와 같은 풍기문란 행위를 하는 불순분자.


 1933년을 전후로 그은 선은 광기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가장 적합한 선이다. 지금 시대의 입장에서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동성애, 양성애, 공공연한 일부다처제부터 불륜을 하겠다고 배우자에게 선언하는 괴상망측한 행위까지. 이 모든 게 존재하던 시대가 나치의 등장 이후로 갑자기 사라진다니. 갑자기 말고삐를 잡아챈 듯한 가쁜 뜀박질을 끝내면 마지막 피날레가 장식된다. 독일에 있던 수많은 예술가들이 전 세계로 망명을 떠나는 장면. 여기까지가 문화예술사가 보여주는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다.


 두 책은 모두 저자가 배치한 허들을 넘어야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시대 전후의 사정을 알아야 하고 문화 예술적인 트렌드, 당시의 인물들, 시대상,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문예사조까지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허들을 뛰어넘는다면 이 책은 실로 뛰어난 문화예술사, 역사서가 된다. 물론 모든 인물을 알지는 못하기에(권당 300명이 넘는 인물을 알기는 힘드리라 생각한다) 필연적으로 지루한 부분이 생긴다. 때로는 시대의 흐름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와 이건 TMI인데, 괴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간다면 시대의 재미있는 모습이 눈에 보이게 된다. 그리고 예술사는 전쟁사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라는 너무 당연한 사실도 다시금 인식하게 되고.


 책에 대한 추가적이고 필요 없는 이야기를 몇 가지 덧붙여보자면 1913년에는 친부 살해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온다. 이는 프로이트와 융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이야기이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인데 저자는 당시가 정신분석학적으로 꽃을 피운 시기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 키워드를 굉장히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 아나라는 그녀의 딸이 나오는데 정신분석학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익히 들은 안나 프로이트가 아나라고 번역된 것이다. 번역이 나쁜 건 아닌데 큰 검의 밤도 그렇고 아나도 그렇고 디테일에 대해서는 눈에 밟히는 점이 있었기에 이런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본다.


 그리고 근래 글항아리에서 나온 『나쁜 책, 금서기행』에서 금서로 나온 『북회귀선』의 인물 헨리 밀러도 두 번째 책에서 나온다. 어떻게 이런 발칙한 책을 쓸 수 있었나 생각했는데 그의 삶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가 재미있게 담겨있어서 그 부분을 조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추석에 이 책들을 포함해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해도』와 그 스핀오프 격 작품을 읽었다. 아마 다음에는 저널리즘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그 외에는 독서모임에서 이야기할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거 같다. 이번 달에도 벌써 6권이 넘는 책을 읽은 걸 봐서는 9월 독서 리뷰, 프리뷰도 엄청 길어져 굉장히 쓰기 괴롭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그런 이유 때문에 책을 멀리할 수는 없으니 힘내서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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