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시인, 선생님, 신앙인, 리더, 내 이름은 뭐니?
박완서 선생님이 그랬다.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라고.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느끼는 바가 많다.
나처럼 ‘혼자’, 알아서’ 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줘야 한다’는 개념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네가 마땅히 알아서 해야지…’
‘알아서 하는 사람’은 ‘알아서 하지 않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앙을 시작하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내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전의 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줄 알았거든. 아는 것이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한고비를 겨우 넘기고 나니 이제는 「제대로 알고, 모르고 있는 자들을 가르치라」거대한 아리령 고개가 눈앞에 펼쳐졌다. 고개 앞에는 ‘세상줄을 끊을 것’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급한대로 세상줄이라 생각했던 직장을 한번 때려쳐봤다. 일년간 일하지 않고 제대로 알려,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해봤다.
소경, 눈에 뵈는 것이 없어 당당했던 무식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하나씩 드문히 떠올랐다. ‘아 쪽팔려-.’ 뭐 어쩔 수 있나. 다 내가 했는데, 그것도 내모습인데. 나는 내편이야.
빛이 내안에 들어오니 세상이 점차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일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조금씩 다리에 힘이 생겨 어느날엔 절뚝절뚝- 어느날엔 종종걸음으로 산행길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안내방송이 나왔다. 부상을 입었거나 산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라는.
저기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거에요. 누구 돕는거. 내가 불우이웃인데 누가 누굴 돕습니까. 그냥 리더말고 친구 할게요.
어쨌거나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아는 것이 없으므로-. 그것이 첫교훈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잊어. 그렇게 뼈아프게 배웠는데.
리더가 되었다. 동시에 알바 한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하나님. 놀라우신 분. 네. 뜻대로 쓰소서-.
부업으로 20명정도의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을 맡고 처음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 일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아- 진정 시인이 되고 싶다.
“너는 작가가 되겠다는 애가 성경을 몰라서 무슨 글을 쓰겠다는 거니?”
이 한마디로 나는 약 10년전 신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겨우 이만큼 컸다.
「제대로 알고, 모르고 있는 자들을 가르치라」는 받은 사명의 쉼표 앞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쉼표 뒷 부분은 도저히 자신이없다.
자신이 없으면 안해버리는 고집의 강도가 계20장의 큰 쇠사슬 맞먹어 버리니 입 좀 떼라고 알바 선생님이 되어 비로소 누군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타인의 이름을 알아보는 연습이 마침내 시작됐다.
집 주변에 이름 모를 예쁜 꽃이 많다.
난 현인이야.
넌 이름이 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