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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줌스 May 13. 2022

게임디자이너는 매일 게임해요?

고인물 게임디자이너는 오늘도 새로 배운다

아이들이 종종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빠는 회사에서 뭐해요?'라고 물으면, '회사 동료들이랑 어떤 아이디어가 더 재밌을까 회의하고, 아티스트가 그린 그림 보면서 게이머들은 어떤 캐릭터를 더 좋아할까 회의하고, 프로그래머에게 이런 기능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을 하지.'라고 일러준다. 그럼 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다음 질문을 물어본다.

아빠는 회사에서 맨날 게임해요?


코로나19로 거의 2년 가까이 재택근무를 했다. 아이들도 원격수업을 하면서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때마침 포커스 그룹 테스트(FGT)를 앞두고 있어 매일 새 빌드를 테스트하고, 수정사항을 찾아 일감으로 등록하는 업무를 진행 중이었다. 뒤에서 아빠가 일하는, 아니 근무시간에 실컷 게임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의 표정은 존경심 그 자체였다. '와! 좋겠다! 하루 종일 게임을 하다니!' 특히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 큰아이는 쫒아내지 않으면 안 될만큼 푹 빠져 바라보았다. 입 모양이 조물조물 '한 판만 해보면 안되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멍하니 은퇴하고 뭘 하고 살면 행복할까 생각해본다. 하루종일 게임만 해도 좋을까? 지금 생각엔 하루종일 게임만 해도 너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신작 게임은 끝없이 출시 되니 한 달에 게임 두세개만 구매하면 다른 취미생활은 하나도 필요 없을 것 같다. 집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고, 굳이 취미생활을 위해 원치않는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쏟을 일도 없다. 이 얼마나 경제적이고 안전한 취미생활이란 말인가!


광명시 @줌스


다시 돌아와 게임디자이너는 매일 게임 하는가? 당연히 게임디자이너마다 다르다. 아무래도 미혼의 게임디자이너들이 더 많은 시간 게임을 한다. 함께 일하는 게임디자이너 S는 퇴근 후 매일 새벽 2~3시까지 게임을 즐긴다. 주말에도 많은 시간 게임을 한다. 물론 미혼이다. S는 경력 3년차의 주니어인데, 팀에 합류한 뒤 경쟁력을 높히기 위해 전략적으로 레퍼런스 게임을 3,000시간 가량 플레이 했다고 한다.


나도 결혼하기 전에는 엄청난 게이머였다. 회사에서 먹고 자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2000년대. 업무를 마치면 바로  자리에서 DAOC(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 WoW 로그인 했다. 회사 동료들과 파티를 만들어 새벽이  때까지 가상세계  역할놀이에  빠졌다. 그러다 책상머리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출근시간이 되면 앉은 자리에서 바로 일을 시작하곤 했다.


지금은 아내와 시간도 보내야 하고, 아이들에게 게임만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없기 때문에 절제하고 있다. 하더라도 적당한 시간에 게임을 중단한다. 취미생활로서 모범적인 게이머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대로 털어 놓자면 적당한 시간에 게임을 끄는 것이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으면 딸아이가  재밌는 질문을 한다.

아빠 그 게임은 일로 하는거예요? 재미로 하는거예요?


사실 대부분의 경우 재미로 하고 있는 것이지만 게임디자이너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답하곤 한다. "어. 아빠가 다음주에도 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재미로 하는거고, 다른 게임을 하고 있으면 일로 하는거야."


그럼 회사에서는? 역시 진리의 사바사, 케바케지만 나는 눈치 보지 않고 게임을 한다. 물론 스스로 엄격하게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 되는 게임일 경우에만 한다. 어쨋든 근무시간에 게임을 할 수 있다니! 친구들은 이런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가 부럽다 하지만 큰 자유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근무시간에 게임을 하건 말건 스케쥴과 퀄리티는 엄수해야 하기 때문에 대체로 일과 중에 맘 편히 게임 할 시간은 없긴 하다.


결국 이런저런 사유로 게임을 맘껏 하고 있지는 않다.(물론 내가 만든 게임이 출시했을 땐 다르다. 내가 만든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하는 것은 게임디자이너의 업무 중 하나이고 좋은 게임디자인을 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대신 게임 수집을 즐기고 있다. 라이브러리에 구매한 게임을 넣어두고 언제가 플레이 해야 할 부채로 남겨 놓는다.

가끔은 대책 없이 게임하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그 때. 한번 켠 게임은 끝판왕을 깰 때까지 뜬 눈으로 지세우던 그 시절이 그립다. 물론 이제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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