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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 Mar 02. 2021

난 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가?

도대체 왜?

나는 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가?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숙제인 영어 공부는 참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한국어의 문법 체계와 영어의 문법 체계, 즉 어순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영어 공부를 많이 하고 TOEIC 문법 문제를 잘 맞히더라도 외국인을 만나면 내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가 들어오면 한국어로 번역의 과정을 거치고 발화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원어민의 단계인 생각 없이 말하기가 되지 않는다.


생각 없이 말한다는 것은 의견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소리다. 틀릴까 봐 걱정하거나 아니면 문법적 완벽한 문장을 머릿속에 만들어 놓고 발화를 하려 하지만, 아무리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발화해도 단 한마디에 무너져 버린다.  "What?"


영어도 이처럼 습득이 어려운데, 나는 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가? 참 우스운 것은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영어로 발화하는데 나아진 점은 없지만 독해능력이 매우 향상되었음을 느낀다. 일전에는 무슨 뜻인지 감도 오지 않을 영어 단어들이 100% 일치하지 않지만 그 의미를 지레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영어가 프랑스어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또한 프랑스어는 기본 문법의 틀과 어휘 자체가 라틴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라틴어의 직계 후손이라고 한다면, 다름 아닌 이탈리아어다. 현대의 이탈리아어는 민중들의 라틴어인 Volgare Latino를 토대로 토스카나 방언이 중심이 되어 단테에 의해 정립되었다고 본다. 결국은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난 이후에 라틴어와 비슷한 말들을 각 지방마다 다르게 써왔는데, 그것이 중세 문예부흥을 이끈 피렌체를 중심으로 통합되고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단테를 이탈리아어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탈리아어는 쉽지 않다. 제3의 외국어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선행 학습한 영어와 같은 언어로 인해 외국어를 접할 때 많은 간섭현상이 발생한다.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번역할 필요가 없음에도 그 과정을 거쳐서 한국어에 도달하는 과정이 불필요하게 생길 때가 많다. 참 미칠 노릇이다. 특히 뭔가 요상한 모양의 단어를 접할 때면 '혹시 영어로는 뜻이 무엇이었지?'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일하지 않지만 네덜란드어와 비슷한 문법 체계를 지닌 영어는 어찌 보면 네덜란드인들에게 매우 쉬운 언어다. 그들은 문법책을 사서 공부할 필요도 없고, 그저 Netflix 등 TV 영상을 시청하는 방법으로 쉽게 영어를 익힌다. 실제 수준도 원어민 수준에 근접한다. 일전에 네덜란드에 입양된 한인교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 한국에 대해 중립적인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어는 원어민처럼 해도 한국어는 아무리 공부해도 너무 어렵다고만 말했다. 결국 언어적 유사성이라는 것도 언어 학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 이탈리아어와 영어의 문법은 어떤가?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히 다르다. 어순도 다르고, 사용 방식도 다르다. 그저 어휘 자체에 내재된 어떤 의미가 라틴어의 공통분모를 가진다는 것 외에 그냥 다른 언어다. 그렇기에 이탈리아인들은 쉽게 스페인어를 배우고 프랑스어를 배우지만, 쉽사리 영어를 배우지 못한다.


이탈리아어는 유럽 사람들에게 쉬운 언어로 평가되는 편이다. 일단 글로 배우기에 읽는 방식이 매우 간편하고, 예외가 적기 때문에 초보자도 쉽게 접근하게 된다. 다만, 동사의 변화형을 접하고 나서는 그 수많은 불규칙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그런데 동사의 변화형은 라틴어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라틴어는 명사조차도 변화형을 가지기 때문에 더 많은 혼란을 야기한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프랑스어에 비해 변화 시 발음이 동일한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어는 다르게 쓰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음이 같은 변화형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는 프랑스어에 비해 어떤 인칭 변화를 가지는지 좀더 쉽게 파악 할 수 있다.


이탈리아어는 그 언어적 성질이 타 언어(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어어)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세상 그 어떤 언어보다 과거 서구세계의 기틀을 확립했던 라틴어의 유산을 오롯이 간직한 언어이다. 그렇기에 이탈리아어는 세계에서 가장 화자가 많은 언어 중 하나인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되는 동시에 라틴어라는 고대 세계의 언어를 간접적으로나마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의 도시 Köln은 로마제국 시대에 라인강을 두고 게르만족과 대치하던 로마인 거주 지역이었다. 라틴어 Colo는 경작하다는 뜻의 Coltivare 내지는 경작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의미의 거주하다는 뜻의 abitare를 뜻한다. 그 이름과 유사한 Colonus는 사실 남을 위해서 경작해주는 사람을 뜻한다. 그렇기에 Colonia는 공장을 뜻하는 fattoria로 쓰이기도 하고 영어의 식민지를 뜻하는 Colony가 된다. 쾰른의 고대 로마 시절 정식 명칭은 Colonia Claudia Ara Agrippinensium라고 한다.


첫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짓고 싶다. 세계의 두 축인 동양과 서양, 그중에서도 서양의 '문사철'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결국 시작점과 종착점은 그리스와 로마가 될 수밖에 없다.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에 근원은 언제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서양의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면 로마제국의 설립과 그들이 가졌던 사고방식, 문화, 예술을 간과할 수 없으며 이는 결국 그리스까지 이어지며 그러한 고대 문화는 서양인들의 정신과 문화 속에 깊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탈리아어 공부는 그 비밀의 문을 엿볼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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