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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 Apr 05. 2021

이탈리아어 공부-어원 공부에 대해

결코 간단하지 않은 작업

어원 공부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아주 유명한 강사가 Frank라는 단어를 설명한 적이 있다. Frank족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Frank족이 도끼를 휘두르는 소리에서 유래되었고 그들이 워낙 예의범절을 모르고 자유롭게 지내서 여기에서 솔직한, 내지는 자유로운 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을 끝으로 어원을 알면 어휘를 쉽게 정복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사실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면, 비슷한 소리라고 같은 어원을 지닌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탈리아에서 하루를 뜻하는 단어는 giorno다. 때로는 dì라고 쓰는데, 이는 라틴어 diurnus에서 나왔다. diurnus(발음은 디우르누스)에서 giorno(조르노)로 점차 변형되어갔고, 형용사형인 dies(디에스)에서 날을 뜻하는 dì로 변해왔다는 것이다. dì 는 요일을 쓸 때 많이 쓰는데 mercoledì(수요일)처럼 요일의 뒤에 붙는다.


그럼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소리의 유사점을 보고 영어의 day도 같은 어원을 지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소리만 유사할 뿐 같은 어원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인도유럽어로 산스크리트어의 소리의 유사성 같은 게 있을지 모르지만, day는 라틴어의 diurnus에서 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소리만 유사하다고 모두 같은 어원을 가졌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어원 공부인 것이다.


소리가 같아도 다른 뜻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에도 동음이의어라는 말이 있다. 서양 언어라고 동음이의어가 없을까?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탈리아어로 고등어는 Sgombro(즈곰브로)다. 그러면 여기에 동사를 만드는 형태인 are를 붙이면 어떻게 될까? Sgombrare(즈곰브라레)는 그럼 고등어를 요리하는 것을 의미할까? 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Sgombrare의 어원은 Ingombrare에서 찾아야 한다. S가 접두어로 쓰일 때는 많은 경우 라틴어 Ex에서 변형된 경우가 많다. Ex는 영어로는 from, out of 정도가 되는데 대부분은 반대되는 의미를 표현할 때 붙는 경우가 많다.(매번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Ingombrare의 뜻은 어디에서 왔는가?


Ingombrare는 불어 encombrer라는 어휘에서 왔다, 라틴어 어원이 아니다. 불어 combre는 강가를 따라서 쳐진 경계선 내지는 목책을 뜻하는 어휘였다고 한다. 목책을 세워두는 행위이고 그 공간을 점유하고 차지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뜻은 Occupare una parte eccessiva di spazio(어떤 장소나 부분을 지나치게 점유한) 이란 뜻이 된다. 그런 점유한 것을 치우는 행위를 Sgombrare이고, 그래서 뜻은 "자유롭게 하다 내지는 치우다"가 된다. 그래서 낡은 것을 치우는 행위, 이사를 뜻하는 말은 sgomberi다. 길을 가다가 Sgomberi가 쓰여있다고 sgombro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어원을 잘못 유추하여 "아 저기는 고등어 파는 가게구나" 하고 앤틱 가게에 잘못 들어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라틴어보다는 그리스어


이탈리아는 라틴어를 쓰던 로마제국의 산실이지만, 로마제국이 발흥할 당시에 문화 선진국은 다름 아닌 그리스였다. 그런 영향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는데, 라틴어에서 이탈리아어로 직접 전해지는 과정에서 그리스어의 어원이 담긴 어휘들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뜻하는 말은 Liceo(리체오)이다. 이 어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장소 리케이온에서 왔다. 이탈리아어는 어느 나라 언어보다도 그리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사실 이탈리아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결국은 그리스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등대를 예로 들어보자. 영어에서 등대는 Light house라고 한다. 그럼 이탈리아에서는 뭐라고 할까? Casa della luce? 아니다. 이탈리아어로 등대는 Faro라고 한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에서 따온 말이다.


유럽에서 그리스 문화가 점유하는 위치는 중국 고대사나 춘추전국시대의 유교, 도교 등의 정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우위에 점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전공자들이나 알 법한 여러 그리스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탈리아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기 때문에 이해하는 방식이나 지식의 수준이 한국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물론 서양인들은 불교나 유교, 도교에 대한 지식과 한자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니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긴 하다.


이탈리아 서점을 가보면 그리스어 사전, 교재, 고대 그리스어 어휘집 등 그리스에 대한 서적과 정보가 매우 다양하고 많다. 이런 그리스의 문명과 언어는 라틴어로 변환되어 유럽 곳곳에 퍼져나갔고 게르만어 계열이 유럽 어원에 미치는 영향보다 그리스어를 품은 라틴어 계열의 언어가 유럽 언어에 미치는 영향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영어 어원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그리스까지 이어지게 되고, 정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어원을 추측하면 엉뚱한 것들을 배우게 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영어가 유럽 전체 언어에 미치는 영향은 근래의 것이지 절대 오래된 것이 아니다. 영어 자체의 철학적 어휘들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본다. 따라서 영어 어원이라는 것 자체가 영어라는 언어에 기원을 두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영어 어원을 공부할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그럼 어원 공부는 무의미한가? 아니다. 제대로 해야 할 뿐이다.


언어의 뜻을 유추하며 공부 하다보면 어휘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많은 영어 강사들이 이야기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노력도 별로 들이지 않고 좋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difficult가 왜 difficult인지를 설명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탈리아어로 difficile는 이탈리아어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di는 반대의 의미라면 ficile는 라틴어(이탈리아어) facile(쉽다)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지 않으니 어려운 것이다. 영어의 어원을 공부할 때 이런 것을 배우는가? 아니다. difficult는 그저 어렵다로 문맥이나 단어장을 통해서 꾸준히 학습되었기 때문에 굳이 어원을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Alberto Nocentini가 편찬한 L'etimologico(어원사전)에 들어있는 어원 유래는 총 27,000개의 어원을 담고 있다. 다 외울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재미로 탐구하는 것은 좋지만 이걸 다 외워서 언어를 정복하겠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너무 막연하고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어절로 떼어서 보는 노력은 좋다. 하지만 맹신해서는 안된다. Sgombro와 Sgombero는 다른 뜻이니까 말이다.


결국 답은 독서밖에 없다. 언어의 뜻은 말을 통해서 의미를 부여받고 맥락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정 어려우면 어원을 찾아봐야겠지만 결국은 맥락에서만 그 가치와 의미가 살아 숨 쉬는 것이다. 따라서 백번의 깜지와 어원 언어 암기장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다. 독서를 통해서 그 단어를 찾아보고, 구글 검색을 통해서 그 단어가 어떻게 이미지화되는지 찾아보는 것이 어원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다.


물론, 너무나 어려운 어휘가 있다면 어원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어원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오랜 기간 기억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재가 아니라면, 그저 유추하는 식의 어원 공부라면 지양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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