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나고 대학까지 부산에서 나온 나는 부산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종종 참석한다. 큰 아이만 데리고 참석하다 이번엔 5살이 된 둘째와 결혼식 참석 겸 당일치기 부산 여행을 떠났다. 장난꾸러기와 부산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과 기대를 한 아름 안고 아침 7시에 셔클을 탔다. 하늘이 도왔는지 대기 시간 없이 BRT를 타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곯아떨어질 거라 예상했지만 아이는 쫑알 쫑알 도로 위의 차에 대해 얘기하기 바쁘다. 엄마를 독차지해서 신난 모양이다. 둘째는 버스에서 내려 걷기를 거부하였고 대전역까지 업고 이동했다. '엄마 핫도그 진짜 맛있지? 내 것도 먹어봐' 업고 가는 동안 등에 100번쯤 뽀뽀를 해주고 케첩이 잔뜩 묻은 입으로 한 입 권하는 둘째가 사랑스럽다. 1년에 10번 정도 고속 열차를 이용한다. 그때마다 아들들은 자판기 앞에 붙어있거나 보조 좌석을 차지하고 빈 복도를 뛰어다녔다. 1시간 30분의 소요 시간이 3시간처럼 느껴지는 날들이었다. 둘째는 이전의 모습을 잊은 듯 엄마 옆자리에서 얌전히 간식을 먹으며 만화를 봤다. 공공시설을 수월하게 이용할 때 아이들의 성장을 몸소 느낀다. 혹은 에코백에 가득 챙긴 간식을 혼자 독차지한 까닭일 수도.
부산역에 내리니 포근한 공기가 반갑다. 따뜻하고 다이나믹한 부산에 도착했다. 아드님이 지치기 전에 얼른 버스를 타고 해운대로 이동했다. 버스 안은 따뜻하다 못해 후끈후끈했는데 열이 많은 둘째는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내복 차림에도 답답하다며 성화였다. 겨우 달래서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결혼식 4시간 전에 출발했는데도 새신랑 얼굴 보기가 빠듯하다. 안 간다는 둘째를 둘러업고 식장에 들어갔다. 깜깜하고 조용한 결혼식장에서 둘째의 목소리와 부산한 행동이 눈에 띄었다. 둘째를 핑계로 식을 뒤로하고 뷔페 먼저 갔다. '부산 뷔페 진~짜 그리웠다. 이기 바로 뷔페지!' 세종시엔 호텔 뷔페가 하나밖에 없고 그마저도 회전이 안 되는 곳이라 식탁 다리 부러지는 푸짐한 뷔페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둘째가 좋아하는 단호박, 새우, 수프, 만두, 잡채부터 담아서 앉혀놓고 내 몫의 해산물과 회를 가득 담았다. 오늘따라 영상을 열심히 봐주는 둘째가 얼마나 고맙던지.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고 세상에 이게 뷔페 음식이라니, 뷔페 때문이라도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따 새신랑을 만나면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해야지. 지겨워졌는지 뷔페를 활보하는 둘째를 안고 식장으로 올라가니 마침 단체 사진 시간이었다. 역시 우리 둘째는 결혼식 체질인가 보다. 버진 로드를 뛰어다니는 둘째를 겨우 안고 첫 컷을 찍고 빠져나왔다. "엄마 여기 보라고! 엄마 내 얼굴 쳐다봐!" 난리가 난 둘째를 데리고 한 컷이라도 찍은 게 다행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찾은 뷔페는 역시나 감동이었다. 디저트도 다양해서 둘째 입에 케이크를 쏙쏙 넣어주며 한 시간 넘게 버텼다.
서면에서 친정 엄마를 만났다. 친정 엄마도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참여하고 오는 길이었다. 둘째가 엄마를 독차지하여 신난 것처럼, 나도 친정 엄마와 함께 있으면 신나고 마음이 편하다. 엄마 친구의 딸이 전포동 카페 거리에 디저트 카페를 개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향했다. 사춘기 이전에 함께 놀던 언니와 동생이었다. 언니와 동생은 이전의 기억과 똑같이 반가운 모습이었지만 이전처럼 살갑게 인사하기가 부끄러웠다. 그들이 개업한 카페는 엄마에게 들은 것보다 더 세련되고 근사했다. 엄마 찬스로 대파 아이스크림을 포함하여 디저트를 가득 주문했다. 섬세한 디자인에 알싸한 대파향의 바삭한 크래커와 부드럽고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엄마, 부산 오니까 진짜 좋다."
둘째가 지겨운지 나가자고 아르릉 아르릉 호통 시동을 건다. 아이를 업고 전포동 카페거리를 구경했다. 골목마다 신기하고 예쁜 상점과 음식점으로 가득 찼다. 아가씨 적에 푹 빠졌던 구제 옷 가게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둘째님의 호통이 두려워 잠자코 지나쳤다. 둘째는 업힌 채 졸았고 NC 백화점에서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곤히 잠들었다.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자유시간을 얻어 아이쇼핑을 했다. 주말 낮 번화가에서 쇼핑을 하다니 꿈만 같다. 아이쇼핑을 두 바퀴 돌고 소매가 짧아진 첫째 아들의 옷만 7장 골랐다. 부산까지 데리고 나온 건 둘째인데 첫째의 옷만 사서 미안했다. 아이가 옷차림에 신경을 쓸 때부터 새 옷을 사주고자 마음먹었지만, 첫째 아이의 옷을 살 때마다 둘째와 셋째 아이에게 미안하다.
돌아가는 기차 시간이 다가오고 걷기엔 아이가 너무 무거워서 친정 엄마와 일찍 헤어졌다. 부산역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는 피곤한지 연신 내 품을 파고들었다. 기차역에 도착하고서 아이는 다시 할머니에게 가자고, 재밌는 곳에 가자고 엉엉 울었다. 앉아서 안아주면 '일어나서 안아야지!'라며 엉엉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물려 겨우 달랬다. 당일치기 여행이 벌써 끝난 게 아쉬웠나 보다. 그래도 우리에겐 고속 열차 매운맛 여정이 남아 있잖아. 일요일 저녁 서울행 기차는 만차이다. 꽉 찬 열차 안에서 2시간 동안 조용히 갈 수 있을지 걱정됐다. 다행히 옆자리 할머님이 배려해 주셔서, 아이가 영상을 잘 봐줘서 조용히 무사히 오송역에 도착했다. 아이가 영상을 보는 동안 비치된 ktx 매거진도 다 읽었다. 최고의 여행이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울지 않고 잘 웃던 싱겁이 둘째는 얌전한 고양이 같았다. 너무 순한 둘째 덕에 셋째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얌전하던 둘째 고양이는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호랑이가 되었다. 11개월 무렵부터 둘째는 눈을 까뒤집었는데, 밥 먹다가 갑자기 눈을 까뒤집는 둘째를 보고 놀라서 동영상을 찍고 소아과에서 상담했다. 의사는 소발작일 수도 있으니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뇌질환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던 내게 둘째의 눈 뒤집기는 청천벽력 같았다. 하지만 둘째의 눈 뒤집기는 꼭 엄마의 반응을 보고 놀리는 것 같았는데 설마 11개월 아기가 엄마를 놀리려고 눈을 뒤집겠어라고 의심했다. 그의 눈 뒤집기는 지금도 계속되는데 용변을 볼 때면 엄마를 불러다 놓고 눈을 몇 번씩 뒤집는다. '엄마 무섭지? 괴물 같지? 엄마도 해봐' 아주 엄마를 놀려먹는다.
그의 이런 천진난만하고 장난스러운 성격 때문에 육아가 힘겨운 날이 많았고 그만큼 허탈함을 더한 웃음도 많았다. 연년생 형과 함께 키우느라 둘째의 발견, 깨달음, 호기심에 충분히 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래서 둘째가 더욱 엄마를 찾고 옆에 머물려고 애쓰는 거겠지. 당일치기 여행을 통해 둘째에게 나를 오롯이 내어주고 아이의 말을 들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다둥이 선배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둘째에게 못 해준 게 가장 아쉽고, 그 와중에도 잘 커준 둘째에게 고맙다는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장난꾸러기 애교쟁이 호랑이를 꽉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한 번 더 이야기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