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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선생 Apr 04. 2023

주말 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은 이유

남편과 아들이 3주 동안 베트남으로 떠났다.


남편은 사십 대의 시작과 함께 육아휴직을 했다. 삼십팔 살의 그는 짠 내 나는 아내와는 달리 인도어 골프 레슨을 받으며 부내나는 육아휴직 생활을 했더랬다. 그랬던 그가 사십 살이 되니 인생이 뭔지 모르겠다며 의욕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나마 아이 셋을 내세울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말에 안도하면서도 그의 의욕을 꺾은 장본인이 나인 것 같아 미안했다. 빛나는 시절을 육아에 쏟아낸 남편의 흰자위가 더욱 창백하다



신혼시절, 욕심쟁이 아내는 잠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편 손을 억지로 끌고 시민대학에서 인생수업을 들었다. 인생수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의 버킷리스트였다. 아내와의 여행, 자녀와의 여행, 혼자만의 여행을 꼭 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떠올랐다.



여보 가세요. 큰 아이 이름으로 휴직했으니 큰 아이 데리고 떠나세요. 벌이가 적으니 물가가 싼 나라에서 실컷 누리고 오세요.



올 2월에 베트남에서 기분 좋은 가족 여행을 했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했으며 한국인이 많이 선호하는 여행지인 베트남은 노후에 지낼 장소로도 괜찮아 보였다. 또 치안이 안전하고 부지런한 시민성에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베트남 사람들이 마음에 든 터였다.



남편은 여러 여행지를 비교하다 베트남을 선택했고 6살 큰 아들과 중학교 동창과 함께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남편은 당연히 쉼과 여유가 있는 여행을 계획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일정 중간에 다른 친구가 합류하고 마지막엔 시부모님도 함께 하는 대장정을 계획했다. 남편의 추진력에 깜짝 놀랐다. 정말 재밌고 추억이긴 할 텐데, 아이가 건강하게 일정을 소화할지 걱정이 앞선다.



그들이 떠나기 한 달 전, 남편에게 여행을 권했던 나는 여유가 넘쳤다. 남편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우고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남편과 큰 아이 없는 3주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통 크고 멋진 아내이고 엄마인 척했다. 그 모습에 스스로 취했다. 그리고 내년엔 내가 둘째 아들을 데리고 떠날 거라고 너스레를 떠는 여유도 보였다. 나는 보통 엄마들과 다르단 말이여.


그들이 떠나기 2주일 전,

남편이 하던 설거지와 빨래, 분리수거를 도맡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집안일도 그렇지만, 막 이 앓이를 시작해 밤잠을 설치는 막내와 조금만 걸어도 엄마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제 발로 걷지 않겠다는 둘째 아들을 건사할 자신이 없었다.



남편의 친구 집에서 온 가족이 얻어 자던 날, 어른들만의 수다를 떨고 싶어 애들 재우다 잠들면 꼭 깨워달라고 남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날 밤 남편은 날 분명히 깨웠고, 나는 남편에게 "아 왜" "아 어쩌라고" "아 뭐" 하며 험한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날 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농담처럼 지난밤 이야기하는 남편에게 마음의 소리를 들켜서 당황스러웠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나. 나의 전투력은 남편을 삼켜버릴 것처럼 커졌다.


남편이 떠나기 일주일 전,

남편에게 생색을 내고 싶었다. 여행 전 가족 추억을 쌓는답시고 가족 추억 쌓기 강행군을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동육아 나눔터 보드게임 프로그램, 조천 벚꽃놀이, 호수 공원에 꽃놀이를 다녔다. 게다가 퇴근하고 바로 아이 셋을 하원해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귀가하는 강행군이었다. 보드게임 수업 시간 맞춰 이동하느라 발을 동동거리는 나와 대비되게 여유롭게 차에 앉아 핸드폰을 보는 남편에게 온갖 짜증이 났다. 평소에 아이들을 돌보느라 이리도 바쁘고 정신없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듯이, 남편에게 "당신 왜 그래? 요즘 우울해?"라고 말을 던졌다.

순간 나 요즘 우울하구나. 많이 불안하구나, 내 모습이 보였다.



나의 불안은 친정 부모님에게도 불똥 튀었다. 평일에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애들을 봐주지만, 주말엔 꼼짝없이 내가 애들을 돌봐야 한다. 주말이 두려워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고 부모님의 일정에 맞춰 여행 일정을 짰다. 믿었던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결혼식과 친구 모임, 직장 일로 주말에 못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내가 부모님께 다음 주에 오실 수 있냐고 물은 후에야 약속이 생겼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줬다는 서운함과 친구 모임보다도 못한 딸과 손주들이라는 생각에 온갖 실망을 표현했다. 어찌 됐든 이제 육십 대를 맞이하는 부모님이 친구들과의 시간이 소중하고 가족 행사가 중요하단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론 계속 꿍해있다.



남편의 사십춘기를 챙기다 나의 삼땡춘기가 시작될 것 같다. 남편이 행복해야 나와 아이들도 행복하고 가족이 바로 설 거란 생각에 남편의 여행을 응원했지만,

지금 나는 굉장히 불안하다.

조금만 건드려도 움츠러들고 멍든다.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건강한 모습으로

4월 25일에 만날 수 있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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