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 Dec 06. 2023

07. 마지막 공연

동네에 낙지 요릿집이 있었다. 신혼 시절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자주 갔던 곳이다. 그러다 다른 맛집을 발견하면서 자연스레 발길을 끊었었다. 최근에 남편이 기력이 쇠해진 것 같다며 그 식당을 찾았다. 자리를 오래 지켜왔던 만큼, 그 식당의 낙지 요리는 맛도 양도 변함이 없었다. 그 이후로도 그는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그곳엘 가자고 했다. 그날도 그랬다. 어김없이 그는 낙지 비빔밥을 입에 가득히 채워 넣으며 그의 어깨에 그득히 얹힌 피로 보따리를 살짝 내려놓았다. 이상한 건 나였다. 그날 나는 밥을 많이 먹지 못했다. 다음에는 다 먹으리라, 하고는 꽤 많이 남긴 채로 나왔다. 불행히도 다음은 없었다. 그 식사가 그 식당에서의 ‘마지막’이었다. 다음날, 사장님은 행복하시라는 문구와 함께 안녕을 고했다.


마지막은 대개 당황스럽다.


나에게는 계절을 느끼는 방법이 두어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산책하면서 나뭇잎의 색 관찰하기, 숨 크게 들이마시면서 풀 비린내 느끼기, 그리고 랑데북 콘서트에 가기.

이동진 평론가가 오랜 시간 동안 진행해 온 북 콘서트이다. 그곳에서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는 마치 계절의 수문장 같다. 그가 계절의 문을 열어주면, 나는 신나게 들고나간다. ‘아, 이제 가을이구나!’ ‘벌써 겨울이구나!’ 하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 겨울맞이는 이상했다. 밥을 다 먹지 못했던 날처럼. 겨울공연이 11월로 앞당겨져 하마터면 예매도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무던했던 나는 ‘이번에는 빨리하나 봐’ 하며 표를 샀다. 같이 갈 친구에게 일정을 일러두었다. 나의 노력은 거기까지였다. 여느 때와 같이 그 이상의 정보는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가서 즐기기만 하면 되는 자리였으니까.




겨울 초입치곤 제법 쌀쌀해진 목요일 밤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아끼는 동생으로부터 날이 추우니 퇴근 조심히 하라는 연락이 왔다. 나 지금 토크콘서트 보러 가, 하면서 그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려고 검색창에 ‘이동진 랑데북’을 쳤다. 그러고 나서 발견했다. “8년간의 대장정 마무리” 세상에,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알고 보니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곳곳에 씌어있었다. (심지어 예매 페이지에도 쓰여있었다!)

마지막이란 걸 알게 되니 마음이 괜스레 조급해졌다. 굳이 손가락을 굽혀보기도 했다. 내가 몇 번이나 봤더라. 하나, 둘... 오늘까지 합하면 여섯 번째. 지난 시간 되씹어보았자 변하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내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은 더 이상 굽혀지지도 펴지지도 않았다.

  

그의 공연은 주로 게스트와의 토크로 이뤄졌지만, 관객과 함께하기도 했다. 오픈 채팅창에서 질문을 하면, 게스트와 함께 질문에 대한 담소를 나누며 답변을 해주곤 했다. 그 코너를 떠올리며 나는 갑자기 비장해졌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질문을 해야지. 마지막을 생각하고, 질문을 생각했다. 친구를 만났고, 함께 공연장에 들어섰고, 막이 올랐고, 공연이 한 시간이 지난 무렵까지도 나는 어떤 질문을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마침내 나는 용기 내서 휴대폰 자판을 두드렸다. 꾹꾹 눌러 자판 소리라도 날 듯한 기세로.


-여한 없이 가뿐했던 ‘마지막’이 있으셨다면 언제였는지, 그때 감회는 자세히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운 좋게도 그가 내 질문을 읽어주었다. 그는 나의 질문을 정성스레 읽어줄 뿐만이 아니라, 예쁘게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영화 속 주인공 중의 하나인 마크는 친구의 연인인 줄리엣을 사랑한다. 마크가 줄리엣에게 스케치북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끝내고자 할 때, 줄리엣은 그에게 키스를 한다. 마크는 그녀와 헤어지면서 나직이 속삭인다.

Enough, enough now.

그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었단다. 오랫동안 알아왔으며 다방면에서 정말 죽이 잘 맞는 친구가 있었단다. 그러다 모종의 이유로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했단다. 그때, 영화에서처럼 ‘이너프’란 단어가 떠올랐단다. 그렇게 그 친구와는 마지막이 되었단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나는 그가 부러웠다. 아직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으므로. 돌이켜보면 나의 마지막은 잔여물 투성이었다. 대상을 향한 건강치 못한 감정의 얼룩은 마음은 어디에서나 발견되었다. 하다못해 남기고 나온 낙지비빔밥을 나는 평생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나도 그리 말해보고 싶어졌다. 당신과의 관계가 충분했다고. 더할 나위 없는 마지막이었다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어느덧 흐르고 흘렀다. 무대는 끝이 났고 그들도 사라졌다. 이윽고 우리도 떠밀려 나오듯이 문을 나섰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나에게 선배는 그를 만날 또 다른 기회가 분명히 있을 테니 너무 슬퍼 말라 말해줬다. 그렇다. 문이 닫힌다는 것은 다른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것이리라.

쉽진 않겠지만 나도 그를 따라 해 본다. “랑데북”이란 소중했던 경험의 문을 닫아본다. 그리고 그를 따라 조용히 속삭여본다. enough. 그 와의 새로운 문이 또 열리기를 바라며.

  

이동진 평론가님, 공연 관계자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주, 충분히.'


랑데북, 안녕히

2023. 11. 16.

매거진의 이전글 06. 탭댄스를 배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