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지하철
때로는 코끝을 시리게 할 만큼 차갑기만 해 보이는 세상에도 따뜻한 사람이 있으니 우리는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예전보다 많이 차가운 것 같다.
함께라는 생각보다는 각자라는 생각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많이 자리 잡은 것 같다.
그건 그만큼 우리에게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부족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 따뜻한 사람들이다.
지친 삶 속에 차갑게 보일 뿐 모두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시리도록 차가운 세상이 다시 온기로 가득해 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시작한다.
얼마 전 지하철 역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 갑자기 불쑥 다가와 5만 원 지폐를 건네며 돈을 충전해 달라고 하시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약속에 늦어 얼른 역사 입구로 들어가야 했지만 차마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우리 할머니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기계에 지폐를 넣고 충전을 하는 그 짧은 순간 처음 본 할머니는 몇 번이고 어린 나에게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셨다.
30분 넘게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른다는 말뿐이라 당황스럽고 힘들었는데 고맙다면서 말이다.
왠지 모를 애틋함과 작은 도움에도 너무 고마워하시는 할머니의 진심이 전해져 내 마음이 두둑히 기뻐지는 것을 느꼈다.
환한 마지막 인사를 뒤로하고 교통카드가 충전이 되는 몇 분의 짧은 만남이 끝나자마자 숨 가쁘게 지하철 좌석에 앉았다.
그제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기쁨과 뿌듯함이 아닌 나의 주저했던 표정과 마음이 떠올랐다.
처음 할머니가 덥석 내 옷가지를 잡았을 때 당황해서인지 아니면 바빠서인지 꽤나 굳어있었던 나의 표정.
모두가 지나쳐 가는데 약속에 늦을까 봐 잠시 고민했던 마음.
혹시 이상한 사람은 아닌가 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던 행동까지.
모든 게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과연 나는 따뜻한 사람인가?
작은 도움의 요청도 거절할까 고민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도 지나쳐가는 저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른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먹고살기 바빠 여유가 없는 젊은 청년일 뿐이라는 걸 말이다.
우리는 저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꼭 도움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어떠한 순간에 꼭 한 번씩은 말이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나도 다른 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따뜻한 행동이 계속 순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 차가워 보이는 바쁜 사회에서도 따뜻한 도움이 계속 피어나 온기를 나누며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서울 상경 에피소드를 풀며 글을 마치려 한다. 우리 엄마는 서울에 갓 상경하셨을 때 너무 낯설고 속상하셨다고 하셨다. 지하철역에서 출구를 묻는데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기억이 지금도 충격으로 기억에 남아있다고 하신다.
시골에서는 물어보면 옆집 이웃처럼 친절하게 자신일처럼 다 알려주는데 너무 차갑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이제는 서울살이에 적응해서인지 나와 멀리 쇼핑을 나왔다 길을 잃어도 주변에 묻는 것보다 내가 찾는 게 삐르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바쁘디 바쁜 도시생활이 우리의 삶의 방식을 각자도생으로 변화시키는 것 같다.
하루 하루 살아가기도 바빠 잠깐의 따뜻한 마음을 나눌 여유도 없을때가 많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마음도 나를 돌볼 수 있는 마음도 다시 따뜻하게 생겨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바쁘고 차가운 도시에도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들이 따뜻하게 피어난다면 충분히 온기를 느끼며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도 언제나 혼자가 아닌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이니까요.
모두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