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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Jul 20. 2023

루이 13세의 궁정발레

17세기 프랑스의 궁정 음악


클래식 고음악 음반 소개


음반명: 루이 13세의 오케스트라 1601-1043

연주자: 조르디 사발(지휘), 르 콩세르 데 나씨옹(오케스트라)

레이블: 알리아 복스 Alia Vox




오늘 이야기는 17세기 프랑스 궁정발레(Ballet de Cour)에 대한 것이다. 궁정발레는 17세기 프랑스에서 발달한 음악극으로 나중에 오페라 형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시기 궁정음악은 대부분 발레 음악이었는데 발레는 패셔너블한 쇼이자 상류층의 여흥이었으며 동시에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치적 수사로 활용되었다. 지휘자이자 음악학자인 조르디 사발은 아카이브 기록에 기반해 루이 13세(Louis XIII, 1601~1643) 시대의 춤곡을 재현했다. 그당시 발레음악중 악보가 전해지는 것은 단편적이고 희소하지만 루이 14세의 사서이자 음악가였던 앙드레 필리도르(André Danican Philidor the elder, 1652-1730)는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전 시대에 제작된 음악 필사본을 수집했는데, 그가 남긴  <앙리 3세, 앙리 4세와 루이 13세 재위기의 대관식, 결혼식, 기타 장대한 행사를 위한 옛 음악과 왕실 여흥을 위한 몇개의 협주음악>(1690)이라는 긴 제목의 자료에는 루이 13세의 탄생부터 결혼식, 대관식에서 연주된 음악과 1627년에 열린 왕의 연회 음악까지 기록되어 있다. 지휘자 조르디 사발은 이를 연주해 <루이 13세의 오케스트라 1601-1643>라는 제목 아래 왕의 일생을 스토리텔링하는 음반을 발표했다.


아르바함 보스 <무도회>, 1634


루이 13세 궁정의 중심 예술은 발레였다. 종교음악을 제외하고 세속적 영역에서 음악은 춤을 추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루이 13세는 발레, 노래에 능했고 심지어 작곡까지 했을 정도로 음악과 춤을 사랑한 군주였다. 왕의 외과의사가 남긴 일기에 보면 그의 어릴적 음악 사랑에 대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전속 류트와 바이올린악사가 수시로 왕의 곁에서 음악을 연주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류트 연주를 집중해서 들을 만큼 음악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발레를 익힌 후에는 스스로 무대에 올라 춤을 추었는데 이런 습성을 보건데 루이 14세의 발레와 음악 사랑은 가문의 유전적 내력으로까지 보인다. 루이 13세는 <발레 드 마담 Ballet de Madame(1615)>과 같은 작품에서는 신성한 태양으로 출연했고,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메세지를 담은 1617년 1월 29일 루브르궁 무대에서 상연된 <르노의 구원 la Délivrance de Renaud>에서는 불의 악마 역할을 췄다. 기록에 남아 있는 가장 최초의 궁정발레는 루브르궁에서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기획한 <여왕의 희극 발레 Ballet Comique de la Reine >(1581)인데 프랑스 궁정발레의 기원은 이탈리아 카니발이나 무용극 형태가 앙리 2세와 결혼한 메디이 왕비에 의해 소개되었다고 보고 있다. 메디치 왕비는 '궁정 축제'라는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연회를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발전시켰다. 가면을 쓰고 춤과 연극을 하는 무대극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474년 로마에서 열린 쇼였는데 이는 1512년경 영국 왕실로도 건너가 가면극(masque)이라는 영국 특유의 음악극을 낳았다.


앙리 3세, 앙리 4세, 루이 13세 재위 기간동안 약 80편 이상의 궁정발레가 창작되었다. 프랑스 궁정발레는 시, 기악음악, 보컬음악, 춤과 무대예술이 결합한 종합예술이었다. 각 막은 낭독조의 노래로 시작해, 시를 읊고, 대화가 이루어지며, 합창이 등장하고 이어서 메인 장면인 발레와 판토마임이 진행된다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는 가면을 쓴 귀족 댄서들이 나와 춤을 추거나, 국왕이 직접 춤을 추며 '그랜드 피날레'를 마무리했다. 왕비가 궁녀들과춤을 추는 경우도 있었다. 왕은 독무를 통해 군주의 권력을 과시했고 종종 신화적인 알레고리 속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궁정 귀족들과 함께 춤을 추며 정치적 연대의 상호작용을 은유하기도 했다. 이런 거대한 무대는 그 당시 권력의 작동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 음반은 어떤 궁정발레 작품을 연주한 것인가?




1617년 루이 13세가 출연한 궁정발레 <르노의 구원> - dessins from Étienne Durand (1585-1618)



음반의 첫 곡은 <어린시절 왕세자의 음악 Musique de l'enfnace de Daupin>인데 루이 13세의 탄생을 축하는 음악이다. 파반느, 가이야르, 브랑르 같은 그 당시 춤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의 소릿결은 현악기가 주도하는 현재 음악과는 매우 다르다. 오보에, 트럼펫, 호른, 백파이프, 리코더와 같은 관악기가 사용되었고 현악기는 없다. 그 결과 음악의 질감이 부드럽고 풍요로우며 힘차다. 또한 춤곡의 리듬을 북, 탬버린 등이 적극적으로 맞추고 있기 때문에 경쾌하면서 리듬있는 힘을 강조했다. 춤곡이라고 요란한 리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파반느는 2박자의 느리고 장중한 춤곡이라 행사의 권위를 더할 수 있는 음악이었고, 반대로 가이야르는 발을 힘차게 움직이며 추는 빠른 춤곡이라 이 두 곡은 자주 교차로 연주되었다.  


1610년 10월 17일 루이 13세의 대관식때 연주된 음악(Musique pour le Sacre du Roy)은 오보에와 백파이프가 주선율을 연주하다가 탬버린이 등장하는 가벼운 춤곡으로 마무리 되는데 오늘날의 대관식을 생각해 보면 매우 소박한 음악이다. 이런 질박한 느낌, 간소한 앙상블이 16-17세기 음악의 전반적인 인상인 것 같다.   


1615년 11월 28일 루이 13세와 오스트리아의 공주 안느 도트리슈(Anne d'Autriche)와의 결혼식에서 연주된 <루이 13세 결혼식을 위한 음악 Musiques Pour Le Mariage de Roy Louis XIII>(1615)은 장중한 춤곡인 파반느로 시작하는데 신성한 결혼식의 엄숙함을 전달한다. 행사의 절정은 기마병들이 일정한 대형을 갖추고 회전목마처럼 돌거나 교차로 움직이며 벌이는 춤인 '르 그랑 카루셀 Le Grand Carousel' 이다. 리드미컬한 드럼 연주로 시작해 오보에가 연주하는 느릿한 선율, 이어지는 빠른 춤곡은 마치 마장마술 경기를 보는 듯 말의 우아한 걸음걸이를 떠올리게 한다.


<루이 13세에게 바치는 24대의 바이올린과 12대의 오보에 합주>(1627)는 왕의 여흥을 위한 음악으로 많은 악기를 사용해 웅장함을 강조했는데 당시.유행하던 여러 발레곡에서 선별한 음악을 배치했다. 흥미로운 것은 각 곡에 '스위스인 Les Suisses', '아메리카인 Les Ameriquains'과 같은 제목이 붙어있는데 이런 제목을 가진 춤곡은 '국가의 발레 Ballet des Nations'라고 불렀다. 외국인 분장을 한 댄서들이 왕실 무대에 등장해 퍼레이드를 벌였는데 프랑스의 국제적 영광, 해외로 뻗어나가는 왕의 통치력을 상징하는 상징으로 외국인 분장이 활용되었다. '님프 Les Nimphes'라는 제목의 발레곡은 아마도 목가적 취미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당시 궁정발레의 주제가 고대 신화, 목가적 취미, 정치적 선전에서 온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왕실 음악 1643~1650>은 7년 기간동안 유행한 궁정음악을 모았다. 가보트, 사라반드, 쿠랑트와 같은 17세기에 유행한 춤곡을 모은 모음곡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오늘날로 치면 디스코, 힙합, 브레이크 댄스 등을 등을 모아놓은 꼴이다. 그런데 일부 곡에 붙여진 제목이 재미있다. <1643년 영국 여왕의 쿠랑트>, <오르페우스의 눈물을 위한 판타지>, <사랑의 황제>라는 제목을 보면 어떤 문맥에서 공연된 발레음악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643년이면 찰스 1세 재위기인데 영국 여왕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사랑에 빠진 황제의 이야기, 즉 목가적 사랑 혹은 기사도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가? 오르페우스는 리라의 명인으로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아마도 신화적 알레고리를 가진 발레극에서 발췌한 음악으로 추정된다.  


놀랍게도 이 음반에 실린 모든 곡이 춤곡이다. 바로크 시대에는 춤곡이 유행했고 춤곡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었는데 프랑스에서는 궁정발레라는 왕실의 퍼포먼스와 결합되어 춤곡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루이 13세 시대는 프랑스가 중앙집권적 권력 형태를 갖추며 강력한 군주 국가의 기틀이 세워지는 시기였다. 이때 발레와 음악,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궁정발레 퍼포먼스, 왕실 행사 때마다 연주되는 춤곡은 모두 패셔너블한 쇼를 통해 왕의 통치력을 과시하고, 모든 궁정인들을 이벤트에 참여시켜 군주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행사였다. 이 음반은 바로 이런 시대, 프랑스가 근대 국가의 기틀을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발레음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보기 드문 내용의 음반이다. 어쩌면 음악을 감상하는 재미보다 루이 13세를 둘러싼 문화적 컨텍스트가 더 흥미로운 음반이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4Kw6qg4RZZM

조르디 사발 지휘의 <루이 13세의 오케스트라>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o16ji3Uwidk

루이 13세가 작곡에 참여한 <르 발레 드 라 메를래종 Le Ballet de la Merlaison(1635)> 재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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