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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Nov 17. 2023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

좌절

일교차가 심해지고 이른 겨울추위가 찾아오면서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다. 아이들과 밀착된 나도 감기를 피하지 못했다. 멈추지 않는 기침과 근육통, 인후통에 시달렸다. 유자차와 귤을 먹고 아이들과 내 몸을 번갈아 돌보며 주말을 보냈다. 며칠 만에 찾은 체육관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복을 입는 순간 나는 고유한 존재가 된다. 엄마도 아내도 여자도 팀장도 아닌 그저 나라는 사람이 된다.

타인에 대한 의무감과 압박감이 없는 느슨한 관계에서 나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인한다. 슬며시 미소가 흘러나올 정도의 조심스러움으로 과하지 않은 다정함으로도 지속가능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체육관에서 배운다. 체육관에서 주짓수 수련은 나를 즐겁게 하는 삶의 영역이 되었다. 숨을 몰아쉬며 땀을 흘리는 일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오랜만의 수련이어서인지 몸이 부드럽지 않았다. 좀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공격당하고 도망치는 것이 일상인 초보 수련생이었지만 백일을 넘기면서부터는 기술도 자신 있게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스파링이 잘 되지 않았다. 같은 기술에서 머물며 우물쭈물하다가 나아가지 못하고 공격당했다. 내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고민하기 바빠서 상대를 보지 못했다.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상대의 움직임은 놓치기 일쑤였다. 상대의 몸에 집중하지도 내 몸을 조절하지도 못했다. 너무나 쉽고 빠르게 공략당하고 항복했다. 방어할 새 없이 눌려서 도망치려고 몸부림쳤다. 순식간에 덮쳐오는 상대를 밀어내려 바둥거렸다. 5분의 스파링 시간 동안 비슷한 상황에서 깔리고 엎어지고 뒤집어지기를 반복했다.


능숙하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시도는 쉬우나 익숙해지기가 어려운 더디고 서툰 몸짓이 원망스러웠다. 이 정도 스파링쯤이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내 몸을 손쉽게 다루는 선배 수련생이 얄밉기만 했다. 대수롭지 않은 듯한 그의 태도에 약이 올랐지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이렇게 쉽게 무너지고 꺾이고야 말다니 나의 설익은 움직임이 한심스러워서 부끄러웠다.


"너는 몸이 약해서 그런 일은 하면 안 돼. 힘든 일은 못할 거야. 할 수 없을 거야. 하지 마" 어린 시절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작고 조그만 체구로는 약해서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거라는 전제는 엄마의 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을 이유로 많은 경험을 제한당했다. 그 말에 정서적으로 압박당했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을 피하려고 그 말에 기대기도 했다. '너는 약해서 그런 일은 못해. 힘들어서 안돼. 어려운 일은 못 해.' 검증하려는 노력없이 그것으로 나를 정의해버렸다. 성공의 경험이 축적될 시간이 부족했다.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고 주저한다. 시작도 전에 실패를 예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와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용기의 한계를 스스로 느끼지 못했다. 어렵고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없애버릴 근거를 찾아야 했다.


엄마가 정해놓은 전제가 싫었다. 그것을 넘어서고 없애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여리고 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자아상을 과대하게 부풀렸다. 할 수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바꾸며 경계를 흐트렸다. 스스로에 대해 높은 기준을 세우고 결과와 성과에 집착했다. 그래야만 잘못된 전제를 무너뜨리며 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넘어설 수 없고 달성할 수 없는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결과를 지연시켰다. 실패가 두려워서 높은 기준을 세우고 결과로부터 멀어졌다. 약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싶었다. 그녀가 내게 부여한 정의에 맞서느라 실제의 나를 온전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인정해 버리면 그것이 내 실체가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렇게 되는 것이 싫었다. 실제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려는 강박에 반대방향으로 내달렸다. 내 기준에서 내 삶이 만족스러워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했다. 완벽에 대한 집착, 나의 결함을 감추려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지나치게 나를 지배하려 했다. 성공이 너무 하고파서, 강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조직의 중심에 서고 싶어서 겁 없이 덤비고 생각 없이 뛰어들었다. 다른 나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길고 지난한 과정을 즐기지 못하게 했다. 한걸음에 가고 싶은 마음에 쉽게 지치고 무너졌다. 악을 쓰고 버티는 마음은 나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했다.


엄마의 평가를 부정하려고 나를 부정하고 부풀렸다. 자신을 포장하며 허세를 부렸다. 실제의 나를 외면하고 들여다보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엉뚱한 틀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채찍질했다. 마냥 칭찬받고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아이처럼 굴며 조바심을 냈다. 일방적이고 비현실적인 기대였다. 성공만이 나를 증명하는 것인 양 헷갈렸다. 세상에는 눈부시게 잘나고 유능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나라는 존재도 생각보다 훌륭하지 않고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부족하고 엉성한 내 모습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조금 더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질 수 있다. 살다 보면 비난받을 일도 많고 혼날 일도 많다. 실패를 전제하지 않은 도전과 욕망은 자만과 교만의 시작이다. 좌절 없는 성공은 신기루다. 성공을 의식하지 않을 때 최대치의 결과를 발산할 수 있다. 나에게는 평가 없는 온전한 시간 속에서 더 많은 기다림과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열등감, 질투심, 자괴감과의 기나긴 싸움을 견뎌낸 꾸준한 노력만이 나를 원숙하게 만들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우물은 세상의 전부다. 우물 밖의 세계를 몰라 우물이 전부인 개구리 우물 안에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우물을 박차고 뛰쳐나와야 우물 속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에게 전부였던 세계가 무너져야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들, 아무런 청탁 없이 이 세계로 내던져진, 유한한,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어두운 극 사이에 처박힌, 해명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불안으로 가득 채워진, 아무것도 아닌 피조물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피투성>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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