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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Jan 27. 2024

갈라진 마음

자기 신뢰

좁은 공간 안에 많은 사람 모였다. 생김새, 목소리, 표정, 행동, 옷차림 모든 것이 다르다. 어느 것 하나 엇비슷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빛깔, 다른 성향, 다른 색깔, 다른 직업, 다른 취향 각기 다른 목적과 지향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도 하나의 그림 만들어진다. 사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미 낯선 것들에 둘러싸인 세계를 살고 있다.


무리 속에 다른 색을 지닌 사람, 무리에서 살짝 비켜서 다른 말을 하는 사람 태도를 껄끄러워한다. 타자방식을  수하지 못한다. 이미 익숙해졌는데 다른 변화는 필요 없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이보다 더 나은 길이 있다고 말하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손가락질한다. 경직되고 고정화된 사고에서 벗어날 라고 되묻는 너의 질문긍하기보다 맞서려 한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무시하고 폄하하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시도에서 오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 자의 의도를 해석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다른 말 가진 도전적인 속성을 위협으로 는 것이 본능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이고집할수록 내 세계는 비좁아지고 편협해질 것이다. 를 수밖에 없는 타자의 말을 수용할 때 나의 세계는 확장된다. 이미 검증된 안전하고 안락한  대신 낯설고 서툰 을 선택 용기가 나를 성장하게 할 것이다. 내가 몰랐던 타인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것, 낯선 세계의 혼돈으로 빠지기를 결심하는 것이 진짜 배움다.


사람에 대한 평가 내 의견 제시했다.  부정적인  의견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불안다. 모든 일 나 때문에 생이라고 믿는 관계사고 빠진다.  내가 개인의 역량을 평가할 만한 자격이 되는 것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오만하지는 않았을까? 성급하고 편협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자기 결정에 대한 의심이 고개를 들 나를 괴롭힌다. 내 눈에 들보가 있는 것을 알면서 당신 눈에 티끌을 뽑아내겠다고 덤벼든 것은 아닐까? 하고 자기 검열에 빠진다. 서툰 정의감에서 시작된 용기가 타인을 해치는 무기가 된 것은 아닐까 걱정다. 타인을 아프고 불편하게 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성향 때문이다. 그래서 뜻밖의 결과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불안에 휩싸인다. 의심에 찬 눈초리로 스스로에게 자꾸 되묻는다. 사적인 감정이 없었다는 말이 공정했다는 말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말이 궁색하게 느껴진다. 가장 큰 두려움은 이 잣대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내게로 돌아올까 하는 것이다. 설익은 진실이 나를 발목 잡을까 봐 겁이 난다.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이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결벽이다.


아이의 실수나 결점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지적하고 꾸짖으며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그 사람, 그의 말을 피하지 못하는 아이들,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버려 두고 잔소리 방패 삼아 그에게 맞서보지만 이것이 과연 최선인가 싶은 자괴감이 든다. 뒤돌아서면 남이 되는 가벼운 관계가 될 수 없는 우리는 아이라는 핑계를 둘러대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모르는 척하고 있다. 억지로 붙여놓은 부부관계는 아이들에게도 믿음직한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갈라져있다. 이렇게나 비겁하고 미련하게 살면서 아이들이 안좋은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뒤틀리지는 않을까 염려한다. 더 이상 상처받을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결정도 없다. 삶의 순간 나를 관통한 직관을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내 선택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정도 최선이 될 수 없다. 


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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