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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게임을 하다 문득 깨달은 사실

초등학생 아이들과 같은 게임에 빠져들다니

요 며칠 애들과 원신이란 게임에 흠뻑 빠져들었다. 스마트폰이나 패드로 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인데 생각 외로 잘 만든 게임이다. 스타크래프트 이외엔 깊게 빠져든 게임이 잘 없었는데, 오랜만에 게임의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마흔 중반에 소년 시절에나 느꼈던 게임의 설렘을 다시 느끼고 있다.


음악도 고급스럽고 캐릭터의 움직임, 중간 광고가 없는 점까지  공들인 게임이라는  느껴진다.  덕에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3학년 , 아빠인 나까지 셋이 함께 게임에 빠져들었다. 종종 아이들이 나의 태블릿이나 패드를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함께 빠진 적은 없었는데(잠깐 놀아주는 정도는 했었지만), 이렇게 자발적으로 빠지게 되다니. 이젠 아이들보다  캐릭터의 레벨이 제일 높은 지경이다. 애들이 잠들고 나면 아빠는 새벽 3~4까지 게임에 빠져있다. 애들이 게임에 중독 되질 않길 바라며 시간을 제한하던 아빠가 외려 게임에 중독되다니. 미안하다 얘들아!!


중학생 시절, 친구집에서 한참 재밌게 했던 프린세서 메이커와 닮은 느낌의 게임이다. 액션 위주의 프린세서 메이커라 느껴진다. @원신 캡쳐


오늘은 육아에 지친 아내에게 휴식도 줄 겸, 두 아이들에게 게임의 갈증도 풀어줄 겸, 내 연구실로 애들을 데리고 왔다. 나는 오늘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애들과 아내에게 점수를 잔뜩 얻는 날이다. 밀린 업무를 처리할 겸 아이들을 데려왔을 뿐인데, 애들은 오늘 맘껏 게임을 하고, 아내는 오래간만에 휴식을 얻으니 일석삼조다.


애들과 같은 게임에 빠져 있으니 대화 거리도 풍성하다. 그러다 문득 첫째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레벨 몇 짜리 적들까지 싸워봤어? 내 캐릭터가 레벨 100 되면 좋겠다. 그럼 금방 적들이 쓰러질 텐데”
공격력이 낮아 중간 보스 공략이 힘든 딸이 물었다.

“레벨이 높아져도 비슷하더라. 내 레벨이 높아진 만큼 적들 레벨도 높아져서 오더라고”

“내 캐릭터가 레벨 100이고, 적들이 레벨 1이면 좋겠다. 그럼 공격 한방이면 다 사라질 텐데”

나는 습관적으로 애들 말에 대꾸한다.
“그럼 재밌을까? 상대는 공격해도 내 캐릭터는 아무런 피해도 없고, 내 공격 한 번이면 상대가 다 쓰러지면? 너무 시시해서 적들 공격도 안 피하게 될 걸? 나중엔 화면도 안 보고 버튼을 누를 걸”

딸은 금세 수긍한다.
“어, 진짜 그렇겠네. 그러면 재미없겠네”
그래봐야 겨우 츄츄족이나 상대하는 수준.



그런데 정작 그 말 끝에 깨달은 건 나인 것 같다. 이렇게 글로 남기려는 속셈을 보니. 대화 속에서 배운 건 오히려 이쪽이다. 삶에서 진짜 재밌는 건 결과가 아니다. 레벨을 100을 얻어봤자 지금과 무엇 달라질 것인가?


노을이 비친 봉하 호수. 소도시에 느리게 살며 안분지족 하고싶지만, 늘 흔들리는 나.


나는 그동안 얼마나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었나. 그것과 거리를 두길 바라면서도 금세 주변과 비교하며 그 가치가 흔들렸었나 새삼스러웠다. 과정에 충실하고자 하면서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얼마나 실행에 옮겼었던가? 마흔 중반쯤 돼서야 하나 실행하는 것이 ‘술을 적당히 마시기’ 정도이다. 과음하지 않은 지 십여 년이 되어가지만 이제야 제법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음주를 조절하는 수준에 들어선 것 같다. 오랜 벗과 즐거운 만남에서도 음주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으로만 역할하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동안 얼마나 결과와 과정이 바뀌었던가? 물론 이것도 완전히 잘 지킨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젠 상당히 몸에 익은 태도로 남았다.

늘 과정에 충실하기 위해 카톡 프로필에 ‘빗질을 할 땐, 빗질을 하라’라는 선문답을 상태 메시지로 남기면서도 그렇지 못했던가?


주변에 지인들이 좋은 집을 가진 것 보고,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걸 보니 부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던 지난 얼마 간의 마음을 내려놓아 보기로 다짐한다. 그 결과를 쫓기 위해 불편했던 마음을 다시 내려보기로 한다.


딸과의 대화를 통해 다음의 배움을 얻는다.


그래, 레벨 100이 돼도 다시 강한 적들은 나타날 테고, 경제적으로 성취를 얻어도 다시금 얻고자 하는 게 보이겠지. 결과에 매몰되어 그 과정을 너무 험난하게 만들진 말자
한번뿐인 삶, 게임하듯 즐겁게 살자.

성급히 레벨만 높이기 위한 게임이 고역이듯 그때그때 즐기며 인생을 살아가자. 좀 모자라고 부족해도 괜찮다. 지금처럼 쉬엄쉬엄 느긋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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