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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샴스 Sep 17. 2023

우리의 일과

세계여행자 커플

 체리<*애인의 별명>의 입술이 내 볼에 닿았다가 떨어진다. 지금은 새벽 여섯시가 조금 넘었을 것이다. 내가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려면 아직 두시간은 더 남았다. 우리는 같이 여행한지 반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깨어나는 시간과 잠드는 시간이 서로 다르다. 나는 막 잠에서 깬 체리가 내 볼에 입을 맞추는 느낌에 아주 잠시 잠에서 깨어난다. 이제 체리는 내 옆자리에 쿠션을 하나 더 세우고 책을 읽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난 그의 팔을 잡거나 밤새 에어컨 바람에 시원해진 뱃살에 손을 두르고 다시 잠에 빠져든다. 가끔씩 손을 꼬물딱 거리면서 그가 내 옆에 있다는 걸 상기한다. 자다가 문득 눈을 뜰때면 그가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럼 안심하고 다시 눈을 감는다. 그 시간에 자는 잠은 시간이 흐르는게 아까울 정도로 몹시 달콤하고 포근하다.


 아홉시 쯤이 되면 나도 완전히 눈을 뜬다. 그럼 이미책을 보는 것에 지쳐버린 체리가 날 기다리고 있다.그는 배가 고프다. 그가 아침은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 미역국? 떡국? 비빔밥? 내가 막 자다 깬 눈으로 그 중 하나를 고르거나 아무거나, 라고 대답한다. 체리가 부엌으로 가서 아침을 준비한다. 나는 그동안 핸드폰을 보거나 요리하는 체리를 구경하면서 정신을 마저 차린다.


 오늘의 아침은 무생채비빔밥과 미역떡국이다. 여행 중에 보기 힘든 호사스러운 한식이 치앙마이에서는 매일 밥상에 오른다. 이집트에서도 김치를 담그는  사람으로 유명했던 체리는 태국에 와서도 무생채를 종종 만든다. 이번에 한 무생채는 엊그제 수육을 삶으면서 만들어놓은 것이다. 무생채와 고추장 그리고 반숙으로 익힌 차르르한 계란후라이를 밥위에 올렸다. 어제 만든 미역국은 하루가 지났더니 더욱 진국이 되어 시원하다. 태국 피쉬소스를 한 숟갈 넣어 만든 미역국에서는 아주 깊은 맛이 난다. 전날 해놓은 국에 떡국 떡을 넣어 먹는 건 우리의 주 아침 메뉴 중 하나다.


 설거지를 하는 건 나의 일이다. 나는 원래 설거지보단 요리 하는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요리를 잘하는 체리를 만나서 매일 밥을 얻어먹다보니 저절로 설거지에 더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요리를 하는 것보다 뽀득뽀득 설거지를 하는 것이 더 좋다. 태국 세제는 왜인지 한국 꺼보다 세정력이 덜 한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체리가 음식을 하면서 만든 흔적들을 하나하나 지운다. 아침밥을 든든히 먹은 체리는 이제 더 편안한 얼굴이 되어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식탁과 싱크대의 물기를 싹 닦는다. 이 곳은 조금만 음식물을 방치하면 개미가 꼬이기 때문에 쓰레기봉투도 바로 밖에 있는 쓰레기 수거함에 버리고 온다.


 그럼 우리의 아침 일과가 모두 끝난다. 이제 우리는 마주 앉아 오늘 무엇을 할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페에 가서 글을 쓸 수도, 수영장에 갈 수도, 헬스장에가서 웨이트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 한나절을 놀러 갈수도 있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올수도 있다.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않고 오늘 하루는 집에 누워  태국 맥주 중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LEO'나 종일 마셔도 된다.

 

우리는 지금 가진 자유를 맘껏 누린다. 가끔 그 자유에 짓눌려 막막해지기도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또 가끔은 그 황홀함에 오소소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러면서 계속 성장한다. 자유를 누리는 법을,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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