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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샴스 Sep 18. 2023

너랑 노는 게 제일 좋아

세계여행자 커플

 체리랑 헬스장에서 복근운동을 한다. 오늘은 가벼운 복근운동 후 헬스장 회원은 50밧(한화 1800원)에 이용할 수 있다는 호텔 수영장에 가보기로 했다. 체리랑 순서대로 벤치에 누워 다리를 들어 올린다. 한 명이 다리를 들어 올리면 다른 사람은 배를 찔러 힘이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면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세엣 네엣, 하면서 괜히 엄한 관장님 같은 목소리를 낸다. 운동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기도 하고, 서로 자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조언도 해준다. 운동하면서 찡그려지는 체리의 표정을 보는 게 왠지 야하고 좋아서 난 변태처럼 웃고 있다. 우리는 레그레이즈 4세트와 크런치 4센트를 두 번 반복하고는 수영장으로 향한다.

  

 헬스장 위 층에 있는 수영장은 기대보다 훨씬 크고 쾌적하다. 길이가 50m나 되고 수심도 깊은 곳은 내 발이 닿지 않을 정도다. 옥상 위에 있어 천장이 뻥 뚫려있는 데다 이용하는 사람은 두세 명이 전부다. 헬스장에서 흘린 땀을 풀장 옆에 비치된 샤워기로 닦아내고 비키니로 갈아입는다. 니트처럼 늘어나는 재질에 무지개 색이 들어간 비키니로 발리에서 산 것이다. 발리를 떠나 한 달 만에 비키니를 입은 내 모습이 조금 말라 보인다. 여행을 하면서부터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늘 마른 거 같다. 반대로 체리는 자꾸만 살이 찐다. 나가보니 체리는 이미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그는 물안경 없이도 물속에서 눈을 잘 뜨는데, 그래서 수영장이든 바다에서든 물안경 없이 수영을 한다. "물  차가워?" 내가 묻자 체리는 하나도 차갑지 않다고 대답한다. 발을 살짝 담가보니 정말 미지근해서 나는 물안경을 쓰고 물속으로 한 번에 풍덩 빠진다. 수용성 인간인 나는 단 번에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50m 레인을 한 번에 왔다 갔다 하며 그래도 아직은 수영실력이 녹슬지 않았다고 느낀다.

   

 수영을 하다가 체리가 스테틱 연습을 하자고 한다. 스테틱은 프리다이빙의 한 종목으로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는 것을 말한다. 체리와 나는 초보 실력의 프리다이버이고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몰디브이기 때문이다. 체리가 먼저 준비 호흡을 한 후 물속으로 얼굴을 넣는다. 나는 핸드폰 초시계를 켜고 있다. 나는 체리의 손 위에 내 손을 살짝 올려놓고 더 이상 참기 힘들다 싶을 때 바로 올라오지 말고 나에게 손짓으로 알려달라고 말한다. 1분이 넘어가자 체리가 손을 움찔거린다. 나는 프리다이빙 선생님이 했던 것처럼 물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체리 귀에 속삭인다. "더욱더 몸에 힘을 풀고... 나를 스쳐가는 물결을 느껴보세요... 내 눈앞에 타일을 바라보며..." 내가 말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체리가 팍 하고 고개를 든다. "아, 웃겨서 못하겠잖아!" 우린 눈을 맞추고 깔깔대다가 순서를 바꾼다.


 이번에는 내가 물속에 머리를 박는다. 물속에서 숨을 참을 때는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에 있는 것처럼 온몸, 그리고 뇌의 긴장까지 풀어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둥둥 떠있는 내 몸만이 느껴진다. 눈을 뜨면 체리의 다리가 물결을 따라 내 옆에서 흔들린다. 난 내가 공중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걸 상상해 본다. 나는 고개를 묻고 숨을 참고 있고, 옆에는 체리가 초시계를 보며 내 손 위에 손을 올리고 있다. 초시계는 2분에 가까워진다. 상상의 눈으로 본 우리의 모습이 좀 귀엽고도 우습다.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아이들 같다. 매일 둘이서만 놀면서도 끊임없이 재밌어하는 게 신기하다. 여행을 같이 하면서 우린 24시간 서로와 함께다. 대부분 오직 단 둘 뿐이기도 하다. 둘이 아침을 해 먹고 운동을 가고 카페를 가고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수다를 떤다. 그러면서도 난 가끔 체리를 그리워한다. 같은 침대에 누워 서로 핸드폰을 보다가도 문득 몸을 돌려 체리를 꽉 껴안는 것이다. 매일 24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있는다는 건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그와는 가능하다. 이제 숨을 쉬고 싶다. 체리의 손을 손가락으로 톡 밀어낸다. 고개를 들자 체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와 평생 함께하는 일도 너랑은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전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숨을 가득 들이쉬며 혼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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