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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 Jun 04. 2016

귀 닫은 엘리트리즘에 빠져있는 진보주의자들

권위주의적 진보주의라는 함정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읽다보면,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거나, 기득권에 대한 성토들에 대한 자료를 공유하는 경우를 매우 많이 본다. 내용자체가 너무 자극적으로 써져있어서 눈살을 찌뿌리는 경우도 있고, 너무 슬픈 이야기들을 근거로 가슴을 울리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억울한 사건의 중심에 있는 당사자의 인터뷰를 보면서, 먹먹한 감정을 가져본 경우도 많다. 이런 글들을 라이크하거나, 공유를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꽤 높다.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거나, 권위적 보수주의자들을 대상으로 꽤 거칠게 욕을 하거나, 비판을 하면서 마무리되는 포스팅들이 꽤 많이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회자되는 이야기들이 커뮤니티에 올라가면서, 공유가 많이될 때, 내가 모든 포스트를 읽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의 시선의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무대 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한 쪽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이권들이 얽혀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히 헤드라인만을 가지고 토론할 것이 아니라, 그 히스토리를 거슬러 이런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었던 시스템의 문제를 찾아내고, 그 시스템의 구멍이 왜 여태껏 유지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현실들을 유추해야된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 보통 보수주의자보다는 진보주의자들의 포스팅이 내 타임라인에 많이 올라오는 편이고, 대체로 진보주의자의 목소리가 보수주의자의 목소리보다 더 많다고 느꼈던 것 같다. 가끔씩 나오는 반응 중에 하나는, 보수주의자의 주장을 듣는 것보다 듣는 것조차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진보주의자들은 사회적 정의에 목소리를 더한다는 기분으로 스스로 윤리적 우월감을 가지고 경향이 있다.또한, 소득이 많고 지킬 자산들이 많은 보수주의자들을 그저 '기득권'정도로 표현하고, 보수정권을 지지하는 가난한 지방사람들한테는 분배를 정책의 중심으로 두는 야당을 선택하지 않는 어리석은 군중정도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면서, 그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엘리트주의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보다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사회를 이끌어나간다면 사회는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러면서 비엘리트 혐오증 등등이 생기는 뿔리가 생기기도 한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자유주의와 권위주의는 통계적으로 보수주의적 권위주의자와 진보주의적 자유주의자가 많기 때문에, 연관성이 높아보이지만, 사실상 분리된 개념으로 보아야한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은 윤리적 우월주의와 엘리트리즘에서 벗어나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보수주의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유심히 듣고, 사회 시스템의 변화에 대한 속도조절에 대해서 귀를 열고 타협에 나서야 한다. 


아래 글을 읽고 쓴 글입니다. 

http://newspeppermint.com/2016/06/02/liberalblinds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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